6유로를 주고 먹는 조식은 음식의 종류가 많았다. 물론 싼 가격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지불할 가치가 있다. 오전에는 향후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 동안 경비 지출 내역을 보니 돈을 아낄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호스텔을 미리 정하고 교통비도 오르기 전에 미리 준비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무일푼이 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금방 채워지겠지만 그래도 빈 곳간이 주는 황량함을 굳이 느끼고 싶지 않다.

어제 먹다 만 하몽 샌드위치를 마저 먹고 외출했다. 지도를 보니 마드리드 왕립식물원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입구로 가지 않고 출구를 찾아 갔다. 다시 입구로 가려고 하니 다른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잘한 선택이었다. 레티로 공원에 입성했다. 공원이 거대하다. 나무도 많다. 단풍이 내린 공원의 공기가 여행의 피로를 위로하였다. 공원 내에 다양한 역사 유물도 있다.

도시 한 가운데에 이런 유서 깊은 공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오늘은 월요일인데, 다들 일 안하고 여기서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었으면 모두가 월요병을 앓아가며 회사에서 고통받고 있을 월요일 오후에 왜 이 사람들은 여유로운가? 공원 안에 레티로 호수가 있다. 알폰소 12세 동상이 호수의 한쪽 면을 차지하여 호수에 멋을 더한다. 노를 저으며 배 위에서 호수를 즐기기도 한다. 지나가는 행인을 즐겁게 하며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도 있으며, 알폰소 보다 본인이 더 동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녹색 분을 칠하고 연기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의 웃음을 이끌며 더운 탈을 쓰고 땀을 흘리는 사람이며,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공원에 아름다운 소리를 더하는 악단이나, 이 모든 것을 구경하며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Palacio de Cristal

공원 안에 벨라스케스 궁전이 있다. 현재는 현대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에서 유료인 것은 카페의 음료 밖에 없다. 입장할 때 어디서 왔는지 확인한다. 종종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을 수 있으니 공원 걷는 김에 들어가는 것도 좋다. 분명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어서 사진은 찍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 난다. 작가만 안다. 제목을 모르는데 아는 체 할 수 없으니 나 혼자만 간직해야겠다. 궁전 옆에는 현대 미술 작품이 전시된 온실이 하나 있다. 인스타그램에 적합한 장소이다.

솔 광장으로 돌아왔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같이 경기를 즐겼던 홍콩 친구를 다시 만났다. 같이 커피를 마시고 다시 공원을 산책하러 갔다. 우연의 일치가 많은 인연이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그 많은 독일의 도시 가운데 만하임을 경험한 사람이라니. 물론 그 우연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이기에 특별하다. 산책이 지칠 때 골목에 있는 바에 앉았다. 샹그리아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한참을 떠들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나는 아주 배불렀고 조금 취했다. 호스텔로 돌아와서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지만, 라운지에서 잠만 잤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방으로 올라와서 누웠다. 그리고 눈을 붙였다. 나에게 알코올이란.

조금 지나니 아르헨티나 친구가 조카를 위한 쇼핑을 마치고 왔다. 그가 정리를 마칠 동안 쉬다가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또 한참을 걸었다. 하루 종일 2만 8천보 넘게 걸었다. 이러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있나. 저녁은 고민을 하다가 오늘도 로컬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돼지고기 안심구이를 시켰다. 4.5유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무엇보다도 입에 잘 맞았다. 빵도 먹고 후식으로 Flan까지 먹어서 배가 당길 정도로 과식을 했다. 아르헨티나 친구도 오늘 보면 또 언제 볼지 모르니 많은 대화를 나누며 오늘도 11시가 넘어서 호스텔로 돌아갔다.

내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특히 여행 중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인성검사를 할 때 여러 공통적인 질문에 대해 혼재된 답변을 한 거 같다. 아마 측정불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여행은 내가 외향적인 사람인지, 내향적인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나를 다른 세상에 놓는 시간이다. 스무 살에 혼자 떠났고, 20대의 마지막에 떠난 혼자하는 여행. 감사 인사라도 해야할까? 혼자가 되는 것은 지독히도 힘들지만, 그 덕에 나는 나를 만나고 있으니. 아무리 그래도 감사 인사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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