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여행] 공주, 보령

떠나자 둘이서. 멀리는 아니더라도. 바람 쐬러 가자는 마음으로 비 오는 아침에 떠났다.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다 보니 계획도 세우고, 좋은 곳을 알아보게 된다. 그 또한 재미가 되는 시기가 있으니, 그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오랜만에 운전을 했더니 네비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30분이나 돌아갔다. 이 또한 하나의 에피소드로 여기고 웃고 넘겼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으니 그래도 괜찮았다. 그리고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오히려 식당 오픈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했다. 소중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부질없어지고, 가치 있던 물건도 시간이 지나면 쓸모가 없어지기도 하고, 하찮게 여겨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를 지니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무슨 일이든 훌훌 털고 뭐 어때하다 보면 좋은 일이 온다. 이번 여행처럼.

피탕김탕에 12시에 도착했는데 이미 대기하고 계신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20분이 지나서 들어갔다. 여기가 김피탕 명칭의 원조는 맞지만, 레시피의 원조는 대전에 있는 마시내탕수육이라는 얘기를 접했다. 원조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다음에는 마시내탕수육을 가보고 싶어졌다. 음식은 먹을만했다. 재미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김치가 시다. 주방은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포장하는 손님이 많았다. 이 근처에 살았다면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산책을 하기는 어려웠고 카페를 찾아갔다. 원래 가려던 카페에 주차장이 꽉차서 프린세스 피크닉카페로 갔다. 논이 펼쳐진 시골길을 지났다. 흙탕물을 지나니 차가 지저분해졌다. 내일의 비가 씻겨주리라. 카페가 참 예쁘고 아름다웠다. 텐트를 가져와서 노는 가족들도 있었다. 곳곳에 좋은 자리가 많았고, 텐트 자리도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차를 마시고 누웠다. 요즘은 이런 공간이 넓은 카페가 인기가 많다. 평일의 고단함을 충분히 내려놓고 내가 지금 여유롭다는 것을 증명할 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풍경이 필요하다. 경치 좋은 곳에서 차를 마시며 '아이 좋다'라는 말을 내뱉는 게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나 역시도 그 유행에 편승했다.

국립공주박물관을 들렀다. 입장료는 없었다. 가족단위 관광객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참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특히나 좋은 전시품이 많은 박물관인데 무료라니. 다만 모든 박물관이 그렇듯 기억에 남는 것은 몇개 없다. 여기서는 '진묘수'만 뇌리에 박혔다. 무덤을 수호하기 위해 무덤 속에 놓아두는 신상으로서 돼지 같이 생기기도 했으면서 제법 귀여웠다. 기념품을 파는 곳에서 진묘수 인형을 팔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칼이 사고 싶었지만 나는 그걸 가지고 놀기에는 창피한 나이가 되었으므로 지나쳤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목검을 다시 손에 쥘 수 있다면. 아마도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다 버렸겠지. 그때 그 선물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있었다. 임종하실 때는 집안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한 방에서 기다리게 하셨다. 우리는 어두운 방에서 그저 기다렸다. 분위기가 어둡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면서. 숨을 거두신 할아버지의 살결을 만지며 한 마디씩 했다. 나는 뭐라고 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할아버지를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조문객이 물밀듯 오셨고 나는 와주신 분들께 음식을 대접하느라 바빴다. 안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쪽잠을 잤다. 누군지 모르는 어르신들께 상주의 막내아들이라고 인사를 드리며 이쁨을 받기도 하고 음식을 마련해 드렸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보고 싶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대학생이었고 겨울방학이었다. 내가 집에 머물었던 마지막 겨울이다. 할머니가 앓는 소리를 내셨다. 보건소 소장님도 들렀다 가셨다. 나는 평소처럼 할머니를 대했다. 며칠 뒤 대외활동을 참가하기 위해 떠났다. 그 동안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말고 내 맡은 바를 다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밤에 혼자 울었다. 내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오면 할머니 방문을 열고 할머니 나 왔어요 하고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언젠가는 주말 낮에 할머니와 단둘이 얘기할 시간이 있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공부를 제법 잘하셨었다. 하지만 남자형제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만 졸업하시고 더 공부할 수 없으셨다. 그게 아직도 한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모들은 대학을 보내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했다. 많은 얘기를 해주셨는데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의 발톱을 종종 깎아드렸다. 발톱과 손톱이 아주 두꺼워서 깎기 어려웠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과 발을 잡고 깎아드리면서도 혹시나 살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엄마에게는 모지셨기에 엄마 아들로서 조금 미우면서도, 나에게는 한없이 자상하셨기에 나의 할머니가 보고 싶다. 내가 있던 집과 그 시간이 그립다. 두 분의 묘지에 진묘수라도 놓아드릴까.

박물관 근처에 공주한옥마을이 있다. 걸어가도 괜찮지만 한옥마을에 주차장이 따로 있어서 차로 움직였다. 산책하기 좋았다. 땅따먹기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선이 그어져 있었다. 숙박시설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안에는 카페도 있고 식당도 있어서 놀러오기 좋았다. 놀이터도 있고 족욕장이 있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족욕도 즐겼다.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생긴다는 건 이런 건가보다. 내가 내키지 않아도 그 사람이 원하면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된다. 또 하다 보니 즐거워진다. 비가 그친 듯하다. 놀이터에 큰 미끄럼틀이 있다. 살짝 물이 묻은 미끄럼틀 위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사소한 장난들. 사소한 체험들. 그게 하루를 풍족하게 한다.

이번 여행의 대부분은 형이 지난 세월동안 여행을 다니며 축적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채워졌다. 대표적인 추천 장소인 연미산자연미술공원으로 갔다. 이곳은 5천 원의 입장료가 있으나, 충분히 받아 마땅한 곳이다. 곳곳에 예술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날씨 좋을 때 1시간 30분 정도 들여서 구경하면 좋을 듯하다. 마감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비온 탓에 길이 미끄러워서 모든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 의문도 든다. 자연과 더불어 가는 삶을 꿈꾸면서 만든 작품이 여러 가지인데 이 자연 속에 설치하는 것은 과연 자연을 위한 선택인가.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작품이 있을까. 예술은 알듯 하다가도 모르겠다. 이 성난 곰 안에 들어가 밖에 있는 작은 사람을 보고 있자니 연약해 보였다. 문명이 없는 인간의 본체는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먼 과거에 인간이 곰을 숭배할 때 곰의 시선이 그랬을까. 이게 작품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그런 작품이라고 하자.

저녁을 먹으러 곰골식당으로 갔다. 생선구이와 석쇠구이는 맛이 좋았지만, 반찬은 한참 아쉬웠다. 국물을 일회용 그릇에 담아 먹는 것도 좋지 않았다. 내가 직전에 자연미술공원을 다녀오지 않았던가. 얼마전 친구를 만나서 카페를 갔는데 바다 동물들을 위해서 빨대를 쓰지 말자는 친구의 제안이 퍽 반가웠다. 나는 쉽게 실천하지 않는 이 노력을 자연스럽게 권하는 친구가 멋스럽게 보였다. 내가 그린피스에 기부하는 것은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그저 벌을 피하기 위한 보석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밤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고 밤파이도 포장을 했다. 몸은 공산성으로 갔다. 밤에 공산성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정문 위 누각에서는 음악공연이 이뤄지고 있었다. 매 주말마다 문화행사를 한다. 함께 즐기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가 이미 피곤했다. 산성을 따라 걷다 보니 공주가 한눈에 들어온다. 참 가파른 산 위에 산성을 지었다. 성을 거닐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성은 얼마나 함락시키기 어려웠을까 하는 상상이다. 이 성을 쌓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을까. 이렇게 보면 나는 상상이 풍부한 편일까. 밤의 공산성은 참 좋았다. 체력이 더 남아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주는 이만하도록 하자. 하루면 충분히 돌아보기 좋은 도시였다.

이튿날 거센 비를 뚫고 보령으로 갔다. 게장을 먹었다. 짜지 않고 살이 꽉차서 먹기 좋았다. 오히려 밥 없이도 먹을 만큼 간이 약해서 많이 먹을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금방 배가 찼다. 숭늉도 리필되고, 막걸리도 리필이 된다. 운전을 하지만 않았다면 막걸리 맛을 봤을 텐데 아쉽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기다리는 팀이 많았다. 그러면 또 괜히 맛집을 왔다 갔구나 하는 만족감을 더한다.

다음으로 리리스카페에 갔다. 단순히 카페를 가는 줄 알았는데 개화예술공원 안에 있어서 입장료가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예술공원을 둘러보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금방이라도 양말이 젖을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빗방울이 약해지기를 차 안에서 기다렸다. 신발이 비를 지켜줄 정도가 되었을 때 카페로 갔다. 온통 꽃으로 가득했다. 향기가 좋았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공간마다 콘셉트가 달랐다. 문을 하나 지나면 새로운 세상이었다. 실제로 꽃도 팔았다. 음료는 비쌌지만, 잔은 더 아쉬웠지만, 공간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괜찮다. 들어오자마자 느낀 점은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미 와 보셨을지도 모르겠다.

카페 옆에는 허브랜드가 있다. 큰 하우스 두개를 연결해서 안에 작은 생태계를 구축해 놨다. 다양한 식물이 있고 칠갑상어도 있다. 인면어도 있다는데 찾지 못했다. 공원을 지나고 나면 안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분도 계셨고 작은 식당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화원도 있다. 이 다양한 콘텐츠에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볼거리에 놀라웠다.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질과 양이었다. 거리가 멀어도 찾아오게 하는 힘은 거기에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이 날씨에도 주차장은 꽉 찼다.

보령문화의전당으로 향했다. 여러 볼거리가 있었는데 갯벌생태과학관은 작아서 아이들 놀이터에 가까웠다. 보령박물관을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체험할 것들이 많고 옛 교복을 입고 옛 보령의 경치를 재현해 둔 공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흡사 테마파크에 가까웠다. 소소하게 놀기 좋았다. 관광객을 위한 차원도 있겠지만, 보령이라는 곳을 기억하기 위해 좋은 장소였다. 아이들이 밀려오기 전에 잽싸게 교복도 입어보고 지게체험도 하고 즐길 건 다 해보고 나왔다. 그런 긴박함마저 즐거웠다. 그래서 더 즐거웠던가.

저녁은 대천항 수산시장에서 회를 포장해서 먹었다. 수산시장에 들어가면 어디에서 사야 할지 참 어렵다. 해산물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여러 기준이 있다. 가까운 곳,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 곳, 사장님 인상이 좋은 곳, 사람이 많은 곳 등등. 비과학적인 여러 근거를 바탕으로 가게를 고른다. 위 네 개 조건 중 두 가지를 충족하는 곳으로 갔다. 인상이 좋고 사람이 많은 돌고래수산에서 회를 샀는데 사장님이 유튜브를 운영하고 계셨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싼 가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있게 먹었다. 여행할 때는 가격을 덜 고려하게 된다. 그게 여행의 행복이기도 하다. 금전적 고민을 하지 않고 소비를 계속한다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마지막날은 잘 마무리하라는 의미인지 비가 그쳤다. 점심으로 키조개삼합을 먹으러 갔다.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을 같이 먹었을 때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성공에 가깝다. 그렇다고 예상을 벗어나는 맛은 아니다. 조개를 굽다가 삼겹살 기름이 튀면서 손목을 데었다. 내 몸에 대한 변화는 직감할 수 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화장실에 급히 가서 열을 잠시 식히고 오니 사장님이 차가운 소주병과 얼음을 주셨다. 열심히 열을 뺐다. 흉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모든 상처가 그렇듯 고통은 아무렇지 않아 졌다. 그런데 오늘 점심에는 손가락을 데었다. 또 며칠간 아프겠지. 그러다 아물겠지. 이 지루한 과정은 죽을 때까지 반복하겠지.

해수욕장 뒤편에 대천조개구이한마당과 보령AMF 모터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었다. 천 원을 내고 방향제 만드는 체험을 했다. 집에 갖다 두니 이게 향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만드는 것이 재밌었다. 얼마 전에 향수 만들기를 해보니 체험이 주는 재미가 크다. 모터 페스티벌에 가서 여러 차를 구경하는데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차를 꾸며놓았다. 실제 도로를 달리는 차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사람은 각자의 세계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볼 때는 이상하지만 차주에게는 자랑이 되는 것일 테니.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타인의 취향과 생각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내가 꾸미지 않고 촌스럽게 보인다고 욕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드디어 대천해수욕장을 구경하러 왔다. 바다가 보인다. 서해바다는 참 오랜만이다. 어릴 적 조개 캐기를 하러 온 이후로 기억에 없다. 길고 넓은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글씨도 쓰고, 파도를 두고 치킨게임을 벌이기도 했다. 모래성을 쌓는 아이를 구경하고, 물놀이 하는 아이를 구경한다. 나는 물을 왜 피할까. 수영을 배운 적도 있는데, 물놀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동네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피부질환을 앓은 적이 있다. 상류에 축사가 있었다. 다만 물놀이를 즐기지 않는 것은 그냥 한지 오래돼서 그런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해볼 때가 된 듯하다. 다음 기회로 넘기고 코랄커피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제 대천 바다를 떠날 때가 되었으니 그전에 카페인을 충전했다.

'그해 우리는' 드라마에 나온 청보리밭으로 갔다. 시골 교회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 찍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청보리밭 위에 건물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 음료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보리가 황보리밭이 되었지만, 그래도 사진 찍기에는 참 좋았다. 드라마에서 장소 선정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곳을 어떻게 찾을까. 인터넷으로 찾아볼까. 아니면 직접 다니면서 찾아볼까. 장소 찾는 것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을까. 내가 하는 것보다 남이 하는 것이 나으면 돈을 내는 세상이라 그것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차로 조금 이동해서 우유창고에 갔다. 우유창고 체험장에서는 아이들이 체험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우유 공장이 있고, 목장도 있었다. 소들의 주거 환경이 좋아 보였다. 넓은 들판을 돌아가면서 이용하는 듯했다. 우유창고로 들어가서 아이스크림과 빵을 먹었다. 바깥 풍경이 좋았다. 이번 여행이 끝나간다. 이제 대전으로 돌아가려면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하니 잠시 쉬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조수석에 앉은 이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운전이 재밌었다. 나름대로 목표를 이룬 것 같았다. 하루하루에 작은 목표를 이뤄가는 재미로 살아가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물론 정작 자기계발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인생에 큰 변화는 없겠지.

3월 말에 군산을 가고 두 달만에 떠난 여행. 10년 가까이 부산에 있으면서 경험할 수 없었던 충남의 아름다운 장소를 많이 구경했다. 갈 곳이 생각보다 많다. 여러 장소를 알려준 형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함께한 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 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도, 비가 쏟아져서 젖어도,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도 그저 함께라서 좋다고 하는 이가 있어서. 그런 생각도 든다. 이 돈을 내고 차를 빌리는 거를 생각하면 차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다고 살 생각은 아직 없으므로 이런 고민도 던져버리자. 여름이 시작되기 전, 비를 맞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언젠가는 희미해지더라도, 또 하나의 이야기를 남겼으니 좋지 아니한가. 대전으로 돌아오니 파란 하늘이 보인다. 집에 가자. 공주 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