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와 여행

[충북 여행] 단양

그난이 2023. 6. 25. 20:00

아스트랄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코지한 곳을 찾는 이 친구의 수요를 어떻게 맞출까. 고민을 하다가 단양의 패러글라이딩을 찾았다. 그러면 떠나자. 단양으로. 서울에서 내려가니 3시간 가까이 걸렸다. 멀구나. 단양에 가까워지자 경치가 달라졌다. 산세가 높아지고 가팔라졌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과거에 이 땅을 공격하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제 강점기에 이 지역에 숨어 살았다면 발견할 수 있었을까. 코지한 곳.

단양으로 정해지자 친구가 계획을 다 짜왔다. 나는 군말 없이 따라다니기를 잘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 유형이다. 그래서 아무런 불만 없이 1박 2일을 함께 했다. 첫 식사는 돌집식당에서 마늘정식을 먹었다. 흑마늘정식을 주문하니 여러 마늘 반찬이 나오고 육회를 비롯하여 육류와 찌개가 나온다. 같이 나온 솥밥은 아주 훌륭했다. 그런데 왜 마늘만 맛이 없는 것인가. 마늘은 구색 맞추기에 가까웠고 실질적인 반찬은 다른 것들이었다. 그래도 만족스러웠으니 됐다. 흑마늘을 먹으니 보약을 먹은 듯했다. 그 정도로 참고 먹어야 하는 시큼함이었다. 음식을 가져다주시던 종업원의 팔뚝에 깊은 화상이 있었다. 솥밥을 옮기다가 다치셨다고 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 나는 지난 여행에서 작게 입은 화상도 그렇게 번거로웠는데.

단양 구경시장에서 새우강정을 사고 맥주를 사서 숙소를 찾아왔다. 솟대네집이라는 곳인데 두음리의 천을 따라 자리한 펜션이었다. 별채로 있는 작은 숙소인데 아늑하고 좋았다. 친구가 영국 여행가서 배워왔다는 아이리시 카밤이라는 폭탄주를 제조했다.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고진감래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도수는 더 세고 목 넘김은 부드러웠다. 두 잔을 마시고 나니 오늘과 작별하기로 결심했다.

새벽에 깼다. 술 때문인지, 옆집에서 들리는 닭 울음 때문인지. 슬리퍼를 신고 걸었다. 여름이었다. 새벽 공기가 따듯했다. 냇가로 가서 물소리를 들었다. 졸졸졸. 고전 음악 같았다. 음의 높낮이는 크지 않고 긴 호흡으로 만들어낸 음율. 한참을 듣다가 더 걷기로 했다. 천을 따라 밭이 이어져 있었다. 새벽 5시. 한 어르신은 경운기로 밭을 갈고 계셨다. 한량처럼 걸어 다니는 이방인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의 살던 집이 생각났다. 산 속에 자리한 내 고향 집에서 밤에 누워 있으면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가면 있는 작은 기차역을 지나는 소리였다. 귀뚜라미 소리, 개구리 소리, 산을 휘어가는 바람 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기차의 쇳소리는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상상했다. 이 늦은 시간에 저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무얼 하는 사람들인가. 나도 그 기차를 타고 떠나고 싶었다. 나의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이 가득한 집이면서 두려운 사람이 있는 집. 그래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만나고 싶지는 않은 집. 많은 형제의 막내였지만, 바로 위 형이 집을 떠난 이후로 나는 외동아들 같았다. 친구가 가까이 없던 그 시절 집은 고요했다. 그래서 종종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잤다. 눈이 쏟아지던 날 충동적으로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땅 위에 쌓인 높은 눈을 밟으며 집으로 갔다. 중학생 때는 무식하게 추운 데서 자면 입이 돌아가는지 궁금하여 한겨울에 친구와 데크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기도 했다. 입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감기를 걸릴 뿐이었다. 형들이 오고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이 좋았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오는 고요함은 늘 낯설었다. 그래서 나는 북적이는 집을 좋아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느낀 북적임이 좋아서. 내가 느낀 고요함이 싫어서.

시장에서 만두를 샀다. 어제 밤에 먹으려 했지만 문을 일찍 닫아서 먹을 수 없었다. 따뜻한 만두는 언제나 맛있다. 패러글라이딩 할 에너지를 충전했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현장에서 추가로 돈을 냈다. '패러에 반하다'라는 곳이 인터넷에서 평이 좋아서 골랐는데 강사가 친절하고 데스크도 친절했다. 사진도 찍어주시는 게 수준급이었다. 확실한 건 나보다 열 배는 잘 찍는다. 옷을 갈아입고 강사의 안내를 따라 장비를 메고 출발을 했다. 마치 소파에 앉은 듯이 안락했다. 바람을 타고 단양을 바라봤다. 내려 보이는 산과 강은 아름다웠다. 평안함을 느낄 때쯤 강사님이 곡예비행을 잠시 해주셨다. 천연의 웃음이 나왔다. 6분이 조금 넘는 시간. 하늘을 날았다. 아스트랄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코지했다.

바로 점심을 먹기에는 소화가 덜됐다. 도담삼봉을 보러 갔다. 입장료 3천원을 받는다. 안에는 유람선을 탈 수도 있고 모터보트를 탈 수도 있다. 여러 식당도 있고 카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더웠다. 몸이 녹아내릴 듯했다. 그래서 잠깐 구경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단양은 조선의 건국 공신인 정도전의 고향이다. 정도전은 도담삼봉을 보고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었다고 한다. 나는 호를 삼박골이라고 지어야 할까. 감상도 날씨가 좋아야 가능하다. 쓰러질듯한 날씨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냉천막국수로 갔다. 대기가 7팀인가 있었다. 그 중에는 19명이 들어가는 단체손님도 있었다. 그래도 기다렸다. 이미 다른 곳을 가기에는 힘이 없었고 이 날씨에 막국수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었다. 기다려서 들어가서 먹은 음식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음에 단양을 온다면 이 음식은 또 먹어야겠다 다짐했다.

카페인을 충전하러 카페 인 단양으로 갔다. 마늘 모양 커피가 올라간 음료를 시켰다. 단양을 와서 느낀 점은 도시가 관광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마늘에 이 정도로 미치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수가 없다. 마늘로 만든 콘텐츠와 음식이 풍부하다. 그리고 버스터미널은 군의 중앙에 있으며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행정과 관광 자원이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어딜 가나 마늘을 활용한 음식이 있으며 누구에게나 내가 단양에 왔음을 보여줄 만큼 티 나게 한다. 뭘 하려면 이 정도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패러글라이딩 강사가 추천해준 헌책방으로 갔다. 새한서점이다. 시골 산자락 안에 자리 잡았다. 연로한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데 서점이라기보다 관광지로서 자리 잡았다. 책을 사고 싶지만 이미 많이 삭아서 책으로서 기능하기 어려웠다. 그저 사장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 많은 책을 어찌하여 이곳으로 가져오셔서 책방을 운영하게 되셨는지. 책굴이나 책미로라고 표현할 만큼 많은 책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나름대로 분류하여 보관하고 계셨지만 습기와 먼지에 노출되어 아쉬웠다. 독립서점으로서 출판한 책들도 있고 단양 굿즈도 있었지만 그 진열상태가 아쉬워서 선뜻 구매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이 자리를 지켜주심에 감사해야 했다. 그리고 집에 계신 연로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만약 아버지가 중간에 책을 처분하지 않으셨다면 새한서점처럼 쌓인 책이 한가득 이었겠지. 그렇게 대규모로 처분했음에도 얼마 전에 간 집에는 책이 다시 쌓여가고 있었다. 본능과도 같은 것인가.

운전하는 친구에게 카페인을 제공하며 나는 단양에서 돌아왔다. 함께 떠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소중하다. 나는 그간 친구에게 소홀했고, 우정을 두텁게 하고 때로는 잊힌 우정을 다시 만나는 과정이 즐겁다. 얼마전 고등학교 동창회를 갔다. 10년 만에 만나 반가웠고, 오랜만에 만났지만 즐거웠다. 어찌 다들 그리도 변하지 않았을까. 만나기 전에는 어색할까 봐 걱정했다. 그러다가 만남이 가까워오자 설렜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자 고등학생 때처럼 한없이 웃었다. 사람에게 사람이란 무엇일까. 나이가 들수록 친구라는 존재는 희미해진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하다. 곧 미국으로 떠날 친구도 한 번만 만나면 당분간 보기 힘들겠지. 동창들도 1년에 한 번 보면 많이 보는 거겠지. 부산 사는 친구가 보내온 취업 소식은 얼마나 반가운지. 나에게는 모두가 감사하다. 이 미천하고 부족한 내 곁에서 때론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머무는 모두가. 나 역시 그들에게 위성처럼이나마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혜성처럼 잠깐 스치고 떠나도 충분한 존재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