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와 여행

[여수 여행] 만성리검은모래해변, 유월드루지테마파크, 여수가족바다낚시터

그난이 2023. 8. 20. 23:40

지난 여행기를 써보자. 글이 밀리다 보면 한없이 밀린다. 이렇게 앉아서 집중할 시간이 그만큼 부족하기도 하고, 수많은 잡음과 세상의 유혹에 친절하게 하나하나 응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7월 마지막 주말에 떠난 여수. 뜨거운 햇살이 살을 찔러 서있기도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나는 행복했다.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당분간은 함께하지 못할 친구이기에. 군대를 다닐 때, 조금이라도 휴가를 얻고 싶어서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여 창업대회를 나간 적이 있다. 결국 우수한 등수로 상을 받고 휴가도 많이 타냈다. 그 성과의 99%는 제안한 친구가 해낸 일이다. 나는 그저 머리수를 채워서 참가 자격을 갖추게 해 줬을 뿐이다. 말동무가 되어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나오는 푸념을 잘 들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덕분에 우리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좋은 기억을 남겼다. 이 친구가 떠나기 전에 같이 여행을 갔다.

우리가 처음 만난 19년 9월. 내 생애에 몇 안되게 치열하게 살았던 3개월에 함께했다. 나를 처음 봤을 때 물에 빠졌다가 나온 강아지 같다고 표현한 친구는 유학을 떠났다. 같이 축구를 즐기며 믿고 의지할 수 있던 친구는 아빠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아주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그래도 함께 고생하는 주변인들에게는 친절하고자 했다. 사실 모두가 좋았기에 친절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다툼도 있고, 갈등이 있었다. 나는 늘 그렇듯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놔두면 다 잘 될 일들이다. 힘든 상황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폭력이 없다면 굳이 말릴 것도 없었다. 때로는 다 같이 모여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도 있었다. 나는 그저 침대 위에서 듣고 있었다. 왜 종종 내 방에서 모이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썩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다음날 피곤할 뿐. 그런 식이다. 주장을 하는 이가 있고, 다른 얘기를 하는 이가 있고, 그냥 듣는 이가 있다.

셋이서 여수에 모였다. 장어탕을 먹었다. 감기에 걸린 나는 무척 만족스러운 메뉴였다. 처음 먹어봤지만 입에 잘 맞았다. 얼큰하면서도 장어의 진한 맛이 느껴져서 몸보신이 절로 되는 듯 했다. 그렇게 놀기 위한 에너지를 채웠다.

차는 빌리지 않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만성리 검은 모래 해변으로 갔다. 검은 모래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검지 않았다. 물어 젖었을 때 검게 보이는 것은 어느 해변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오히려 걷기에는 자갈에 가까워서 아팠다. 평소에는 물에 발 담그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샌들을 신고 왔으므로 바닷물에 발을 적셨다. 더워서 해변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주변을 걷다가 통닭을 튀기는 곳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생맥주를 시켰다. 그늘 아래에서 맥주를 마시니 시원했다. 몸이 좋지 않으니 술기운이 빠르게 올라왔다. 얼굴이 빨개졌다. 금방 가라앉았지만 누가 봐도 아픈 사람 티를 냈다.

잠시 쉬고 유월드루지테마파크로 갔다. 루지를 탔다. 무동력으로 가다보니 브레이크 밖에 없다. 추월하고 싶은 마음에 브레이크를 줄이지 않다가 연석을 살짝 밟았다. 결국 나의 속도는 한참 줄었다. 다시는 추월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뭐든 무리하면 안 된다. 테마파크 안에 사격 체험장도 있고 테디베어 박물관도 있고 공룡파크도 있고 콘텐츠가 많았다. 놀이기구도 있다니. 종합선물세트였다. 사격은 금방 끝나서 아쉽다. 그래도 경쟁자 중에서 잘하면 만족하게 된다.

테디베어박물관이 제법 크게 조성되어 있었다. 사진찍기 좋았다. 테디베어의 유래도 알게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별명에서 시작되었다니. 이렇게 사소한 상식을 하나 채웠다. 근데 어느 곳에서도 일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박물관 안에 내용을 채우기 위해 기획자가 고생을 했을 거 같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채워지는 게 세상 아니겠나.

저녁을 먹으러 통닭집에 갔다. 오징어회를 같이 판다. 둘다 맛이 좋았다.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여수에서 해산물은 먹고 싶은데 치킨도 생각난다면, 와볼 만하다. 인기가 많은 식당이었다. 친구들과 볼링을 간단하게 치고 저녁에는 피자를 배달시켜 먹었다. 시간이 금방 갔다. 다음날 일정이 있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낚시를 하러 갔다. 배를 타고 나가면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시설물이 있었다. 좌대낚시인데 바다에서 하는 개념이다. 날이 너무 더웠다. 그늘막이 있기는 하지만 바닷물에 비친 빛과 하늘에서 누르는 열은 초단위로 사람을 지치게 했다. 그래도 한 마리라도 잡고 싶었다. 2시간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결국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세월을 낚는다고 했던가. 세월을 바닷물에 던졌다. 그래도 한번 해봤으니. 됐다. 지렁이를 바늘에 끼워보고 바닥에 닿도록 낚싯줄을 풀었다가 올리기를 반복하는 그 지루한 과정을 해봤으니 됐다. 손맛은 느끼지 못했지만, 인고의 시간을 맛봤다. 너무 더워서 물회를 먹고 여수 여행을 마쳤다.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서 애를 먹었지만, 오랜만에 젊은이의 여행을 한 기분이 났다.

여수도 참 오랜만에 왔다. 20년 1월에 온 이후로 처음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오는 여수다. 그 때 광주에 있던 친구가 와줬다. 사람이 어려울 때 함께한다는 건 참 의미가 크다. 잊지를 않는다. 즐거울 때는 혼자로 충분하지만, 슬플 때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어려울 때 나를 혼자 두지 않았다. 할머니가 계실 때 명절에 모이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는 대전에 살아서 늘 늦게 왔다. 그러면 상은 차려져 있고 대전 식구들이 와서 식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할머니가 잔뜩 준비해 주신 맛있는 음식들, 삼치회, 잡채, 약과, 생선찜, 동치미 등. 그립다. 외갓집에 자주 가지 못한 우리는 설날에만 갔기 때문에 늘 동치미가 잘 익어서 맛이 좋았다. 증조할머니는 100세가 넘게 사셨다. 할머니도 그렇게 사셨으면 하고 바랐다. 내가 군입대를 하기 전 병원에 입원하셔서 재활치료를 받으실 때 찾아뵌 적이 있다. 의사소통은 힘드셨지만 내가 온 것을 아시고 손을 잡아주셨다. 내가 훈련을 마치고 할머니가 더 좋아지셨다는 얘기만 듣고 나는 마음을 놓았다. 조금 더 천천히 찾아봬도 되겠지. 그렇게 할머니는 떠나셨다. 여수로 오던 길에 듣던 ed sheeran의 supermaket flowers 노래가 생각난다.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늦둥이인 나는 찾아뵐 조부모님이 계시지 않다. 출가외인하여 집에 잘 찾아갈 수 없고, 그래서 그리움과 거리가 먼 사람으로 크고 있지만, 종종 이렇게 떠오를 때면 보고싶다. 나에게 사랑을 준 사람들이. 설 연휴 마지막 날이면, 할머니가 싸주신 먹거리를 양손 가득 들고 여수역으로 왔다. 명절이 끝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할머니를 보려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긴 이별을 맞이하는 할머니와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그저 할머니가 싸주신 맛있는 음식을 들고 연휴가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했을 뿐인데. 어른이 되고, 이별을 겪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당연한, 그렇지만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나도 당연하듯, 여수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