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행] 금호꽃섬, 수성못, 이월드

금요일에 서울 출장을 마치고 바로 대구로 갔다. 확실히 서울에 비해서 날이 포근했다. 얼마만의 대구인가. 그때는 막창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납작만두도 먹었던 거 같다. 이제는 조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구 출신 동기에게 추천받은 생고기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사장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이번 주말에 쉰다는 공지를 해 놓으셨다.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근처에 다른 생고기 집으로 갔다. 평소에 정말 궁금했던 뭉티기를 먹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날 것의 음식을 덜 좋아하게 되었다. 회를 제외하고. 요즘은 생굴도 잘 먹지 않는다. 생고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맥주가 없이는 고기를 넘기기 까다로웠다. 동기는 자기가 추천해 준 집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모텔은 연박으로 예약을 하면 대실 비용을 추가로 받는다. 아마도 주말에 대실장사를 못하기 때문에 그런거 같다. 그래서 점점 호텔을 찾게 된다. 연락 예약 시 눈치 보이지도 않고, 중간에 청소도 해준다. 돈은 쓰고자 하면 점점 많이 쓰게 된다.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데 나이 듦에 따라 생기는 씀씀이의 변화가 조금 걱정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어른들의 말에 틀린 게 없다. 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다. 숙소는 작았지만 아늑하고 좋았다.

밤에 잠이 들기 전이었다.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오늘 서울에서 대구로 왔는데, 다시 서울로 가야할까요. 고모부를 뵌 지는 언제일까요. 20년은 넘었을 거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집안 어르신의 조문이었다. 하지만 가야지. 나에게 귀한 사촌누나와 사촌형들을 위해서. 벌써 잠이 든 짝꿍이 모르게 옷을 입고 외출준비를 했다.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나는 터미널로 갔다.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아직은 불이 꺼져있는 장례식장. 상주가 깰 때까지 기다렸다. 7년 만에 사촌누나를 만났다. 홍콩에서 나를 반겨준 누님을 서울에서 만났다. 이런 자리에서. 오기를 잘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사촌형 1은 어느새 결혼을 하였고, 형수님을 처음 뵀다. 일본분이셔서 말은 통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아는 일본어를 자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일본학생들과 교류프로그램을 하며 배웠던, 여학생들에게 친절한 남자가 되기 위해 자주 써먹었던 '쿠루마가 키데루요'. 장례식장에 웃음이 피었다. 삶에서 배운 것들은 이런 시답잖은 농담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어릴 적 나에게는 공포이기도 했던 사촌형2가 잠에서 깼다. 내가 어른이 될수록 형은 공감이 되고, 안쓰러움을 느끼는 대상이 되었다. 세상을 떠돌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던 형은 발걸음을 멈추고 집의 포근함에 갇혀 지낸다. 내가 좋아하는 누님과 형님들을 보았고, 내가 위로가 되고자 했지만 나는 위로를 얻었다. 혈육이라는 게 대단한 건가 싶다가도, 멀어지려야 멀어질 수 없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대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대구로 내려가야 하는 순간에도 나는 어느 하나 후회하지 않았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것들의 연속이다. 나중에 사촌누나는 주말을 앞두고 떠나시며 사촌들을 다 모아 주신 것이 큰 고모부의 마지막 선물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카페에서 서로 이름은 모르지만 닉네임을 아는 맘카페 회원들이 다녀갔고,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길을 떠나는 가족이 담소를 나누다 떠났고, 노신사가 카페 아르바이트생을 당황시켰다가 갔고, 나는 외국에서 온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대구로 가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곤한 나는 동기가 추천한 콩국을 먹으러 갔다. 이리도 좋은 음식이 왜 대구에만 있단 말인가. 따뜻한 콩물에 쫄깃한 찹쌀빵을 먹으니 행복해졌다. 기운을 내서 꽃 구경을 갔다. 금호꽃섬에는 댑싸리가 멀리 퍼져 눈을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분홍 코스모스와 노란 코스모스가 각자의 구역을 갖고 세를 과시했다. 그 사이로 갈대가 제3 국으로서 중심을 잡고 있다. 하나의 섬 위에 여러 꽃이 영토를 갖고 있으며 걸을 때마다 보이는 새로운 풍경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왜 꽃을 좋아하게 될까. 원초적이면서 무해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세월에 낀 때를 씻는 건 아닐까.

수성못으로 갔다. 예전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다. 1년 뒤에 전해지는 우편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편지는 각자의 집으로 전달되는 식이었다. 연애편지를 부모님께 들킨 첫 사례였다. 아버지가 편지가 왔다면 사진을 찍어서 메일로 주신 것 같다. 굳이 그렇게 해주실 필요는 없었을텐데. 수성못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곧 숨으려고 몸을 숙이는 해가 연못의 물을 찬란하게 비췄다. 버스킹을 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좋아서, 그 노랫말이 좋아서 천 원을 놓아드렸다. 지역별 특산물을 판매하는 행사가 열려있었다. 영호남 통합을 위한 행사였다. 시끄러운 행사를 뒤로하고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물빛을 담은 짝을 바라본다. 나의 피로를 이길 힘이 생긴다. 여행을 하면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한다. 그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상대가 고마움을 느끼고 나는 보람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중에 하나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서문시장으로 갔다. 갈비찜은 아주 오래된 식당에서 팔았고 식기에 그 세월이 보였지만 그게 맛을 더하는 곳이었다. 9시부터 야시장을 시작했다. 어디서 나타난지 모를 가판대가 줄지어 세워졌다. 그리고 불빛이 시장거리를 밝혔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기다렸다. 그중에 줄이 없는 탕후루를 먹었다. 탕후루는 참 정이 가지 않는 음식이다.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하며 사과 탕후루를 먹은 적이 있다. 마치 백설공주가 먹었을 독이 담긴 사과처럼 새빨갰다. 늘 그렇듯 특별한 맛은 없고 내 치아에 죄를 짓는 기분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의 행복한 표정이 아닐까.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다면 우리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혼자 자면 많이 뒤척이지만 옆에 누군가 있으면 푹 잔다. 대신 같이 자는 이의 숙면을 방해한다. 상대에게는 애석하지만 나에게는 행복한 일이다. 피곤했던 나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푹 잤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이월드로 향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으며 가운데 타워가 있어서 특별한 분위기를 냈다. 곳곳에 핼러윈 기분을 낸 호박모양의 장식들이 가득했다. 날은 따뜻했고 바람은 적었다. 놀기에 아주 적절한 날씨였다. 사람은 아주 붐비지 않았고 놀이기구는 20분 이내로 기다렸다. 그리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도 있어서 자주 오고 싶어졌다. 대전에 있는 오월드도 이월드만큼 하면 좋겠다. 이십 년째 같은 놀이기구만 운영하는 오월드가 야속했다. 간식으로 콜팝을 사 먹었는데 늘 아쉬움을 일으키는 메뉴다. 보기에는 이보다 완벽한 음식이 없는데, 사서 먹으면 만족할 수 없는 양과 맛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놀이기구가 많고 놀 것들이 널려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일 출근이 기다리고 있다. 기차시간에 쫓기듯 나왔다. 시간이 날 쫓아냈으니 다음에 또 오기로 결심했다.

대전에 와서 치킨을 먹고 집으로 왔다. 기차를 이렇게 자주, 많이 탄 적이 없다. 그래도 좋았다. 적당히 추웠고, 적당히 피곤했으며, 적당한 여운이 남았다. 모든 것이 뜨겁던 스물셋의 대구는 모든 것이 적당한 서른의 대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