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와 여행

[부산 여행] 2023 LoL 월드 챔피언십 8강(T1vsLNG)

그난이 2023. 12. 4. 00:42

이왕 부산을 가는 김에 친구들과 풋살을 했다. 축구 동아리 친구들과 공을 차는 것은 손에 꼽을 만큼 확실한 즐거움을 주는 오락이다. 군대에 가면서 동아리에 나가지 못했고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했다. 안 지도 10년이 되었다. 플랩풋볼을 통해서 혼자 참여할 수도 있고 적은 인원으로도 참여해서 축구를 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시스템이다. 공을 차고 목욕탕에 가서 다 같이 몸을 녹이고 저녁을 먹고 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하루가 참 짧았다. 몰려오는 졸음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함께 했겠지. 아니다.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 일찍 들어가야 하므로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테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각 단계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관계성은 다 다르다. 그게 참 신기하다. 집안의 모든 것을 알고  시골 동네의 불편함을 다 알고 공감하는 초등학교 친구, 어느 하나 불편한 점이 없고 언제 봐도 어색하지 않으며 어떤 이야기도 스스럼없는 중학교 친구,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하면서 진득하게 시간을 나눠서 진한 관계를 가진 고등학교 친구, 성인이 되어 만나서 집 안에 수저가 몇 개인지 알지 못하지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대학교 친구. 모두가 귀하다. 결국 인생을 살다 보면 이제는 줄어드는 경우만 남았지만 나에게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가능한 오래 함께하기를.

전날의 피로를 충분히 풀고 일어났다. 대전에서 하는 LCK Summer 결승을 보고 싶어서 인터파크에 들어갔는데 실패했다. 분한 마음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롤드컵 티켓을 판매하는 것을 보고 홧김에 결제까지 했다. 그리고 친구를 꼬셨다. 사실 꼬실 틈도 없었다.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으니. 하지만 둘다 준비성은 없었다. 경기장 앞에 갔는데 제대로 된 매장이 없었다. 이런저런 기념품이 사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작게 준비했을까.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롯데백화점에서 T1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기 시작 전까지는 2시간이나 남았을까. 일단 모르겠다. 가보자. 지금 아니면 언제 가겠나. 택시를 타고 갔다. 팝업스토어 앞에 가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기가 200명이 넘었다. 경품은 이미 마감이었다. 허탈했지만 그 순간이 즐거웠다. 오늘도 이렇게 멍청비용으로 왕복 택시비를 썼지만 유쾌했다. 이 즐거움도 돈을 썼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경기장에 들어가니 자리가 좋았다. 앞에 자리가 없어서 왕래가 편했다. 그리고 시야도 충분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와서 주위에 사람이 없었지만 이내 사람이 꽉찼다. 좋아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참 어렵지 않다. 시간도 빨리 갔다. 꽉 찬 관중의 열광적인 함성 속에서 선수들이 나오고 경기를 펼쳤다. 웅장한 사운드와 커다란 화면을 보며 다 같이 응원하고 반응하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쾌락이 제법 컸다. 축구 경기를 직관하면 티브이로 보는 것과 그 시야가 다르고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느끼는 만족이 있지만 e스포츠는 직관이 크게 의미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완전히 틀렸다. 정말 즐거웠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가고 싶어졌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전혀 모르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배워서 이제는 나 혼자 찾아다니다니. 이렇게 거금을 써가며. 인생은 참 알 수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가며 마주한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롤드컵이 끝났고, T1은 우승을 했으며 페이커는 네번째 롤드컵 우승을 했다. 거대한 서사가 완성되었다. 그 일부분을 내가 직접 목격했다는 점이 좋다. 경기를 마치고 친구와 치맥을 즐기며 떠들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내일 출근이라는 사실이 기분 나쁘지 않은 일요일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