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여행] 계화조류지, 변산반도국립공원, 채석강, 내소사

금요일에 퇴근하고 놀러 간다는 건 직장인에게 축복이다. 평일에 버틸 명분을 주고 설렘을 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회식으로 두통으로 가득 찬 하루가 지나가고 급하게 짐을 싸서 출발했다. 워낙 급하게 준비한다고 뭘 빠뜨렸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지만 내가 말한 시간보다 늦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빨리 떠나야 했다. 호텔 체크인이 10시까지만 가능했다. 서두른 덕분에 중간에 기름도 넣었고 체크인도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카드키를 갖고 문을 열려고 했는데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카운터에 가서 말씀드리니 그럴 일 없을 거라고 같이 올라오셨는데 내 말이 틀리지 않아서 위층으로 방을 옮겨주셨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 누웠다. 내일 해돋이를 보러 가자.

막상 눈을 뜨니 가기 싫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에는 맑고 오후에는 흐렸다. 해넘이를 보지 못할 수 있으니 해돋이는 꼭 보러 가야겠구나. 20분을 가서 계화조류지로 갔다. 계화교로 찍고 가면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있다. 역시 정보가 중요하다. 중간에 멈춰서 봤으면 아쉬울 뻔했다.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충분히 떠서 물에 비쳐 두 개의 해가 될 때까지 40여분 서 있었다. 날이 추워도 괜찮았다. 풍경이 아름다우니 쉽사리 떠날 수 없었다. 머리 위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철새가 지나갔다. 종종 비행기도 지나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저 멀리 포클레인이 주말 아침부터 공사를 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경이로웠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며, 땀 흘려 일하는 인간의 부지런함이며, 모퉁이에 앉아있는 낚시꾼의 고독함이며, 그 순간에 느끼는 행복함까지. 오기를 잘했구나.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짧은 소원을 빌었다.

아침을 먹기 전에 격포항에 잠시 들렀다. 작은 어선이 항을 떠나고 있었다. 격포항은 방파제가 만을 감싸고 있어서 작은 문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파도가 없고 잔잔했다. 만선하시기를 바라며 근처에 영상테마파크에 갔는데 내부 공사 때문에 휴무였다. 변산명인바지락죽에 가서 아침으로 바지락죽과 바지락회무침을 먹었다. 정말 맛이 훌륭했다. 죽이 아주 진했고, 회무침도 새콤달콤한게 적당했다. 누가 변산 가서 뭐 먹어야 하냐고 물어보면 이곳을 말하리라. 여러 식당에서 백합정식을 팔고 있었지만 이 식당을 이길 수 없다고 확신한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하지만, 여기는 그만큼 맛이 좋았다.

식당 근처에 고사포야영장이 있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 야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마도 방풍림 사이에 이런 야영장을 꾸민듯 했다.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좋은 추억을 만들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방풍림을 지나서 해수욕장으로 가면 바람이 드세게 불었다. 찬 바람이 옷깃을 넘어 몸속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방풍림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분명 여길 넘어오기 전에는 추워 보이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해돋이를 본다고 부지런을 떨어서 낮잠을 자고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갔다. 늦은 시간에 출발해서 직소폭포도 가지 못했지만 국립공원답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걷기 좋았고 물이 맑았다. 상수원으로 쓰이는 내변산의 물은 겨울임에도 수량이 풍부했다. 굽이 치는 물살을 보러 여름에 온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해가 뉘엿뉘엿 지니 그늘이 졌고 갑자기 추워져서 이만 산 오르기를 포기했다. 내변산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그런지 기세를 뿜으며 높게 솟은 돌이 많았고 풍채 좋은 장군이 선 듯했다.

봄해언니네 카페에 가서 개성주악을 맛봤다. 아주 흡족했다. 쫄깃하고 달콤하면서 고려시대 임금이 먹었다는 스토리까지 완벽했다. 간척미를 써서 만들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것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기가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당을 채우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까만 돌로 이어진 해안이었다. 산을 바라볼 때는 검은 대리석을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절벽이 길게 늘어섰다. 세월이라 하기에도 긴 시간 동안 물과 돌이 부딪히며 만든 모양이겠지. 그곳에 많은 시선을 두기에는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온전한 원형을 볼 수 없었지만 해가 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보였다. 구름이 작은 틈을 허락했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같은 날에 보겠다는 우리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 하늘이 배려한 작은 선물이었다.

한 동안 서서, 한 동안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들었다. 내가 해안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파도 소리 듣는게 참 좋았다. 귀를 씻겨주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더 큰 파도가 밀려와 철썩하고 내 귀를 때렸으면 하고 바랐다. 채석강은 충분했다. 짙은 바닷물이 검은 돌을 치며 하얀 물방울을 만들었다.

내일이 출근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지난 하루가 행복했고 오늘 하루도 행복할테니. 숙소를 나와 가다가 내소사 팻말이 보여서 행선지를 바꿨다. 바람이 너무 차고 눈이 흩날려서 괜한 선택이었나 싶었지만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전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 추위가 가셨다. 내소사는 600년대에 지어졌다가 전소되어 1600년대에 다시 지어진 역사가 깊은 절이다. 절 중앙에는 10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7.5m의 폭을 자랑하며 서있다. 절 뒤에는 높은 암산이 절을 털끝이라도 건드렸다가는 벌을 주겠다는 위엄으로 서있다. 백미는 내소사의 대웅전 단청의 색이 바래 나무의 빛깔만 보이는 것이었다. 수수하면서도 단아한 매력이 좋았다.

슬지제빵소를 들르고 바로 옆에 곰소염전을 봤다. 겨울이라 그런지 염전이 검은 판으로 덮여 있었다. 알아보고 오지 않은 탓에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인터넷에서 보는 멋진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직사각형의 염전이 넓게 늘어선 모습만 볼 수 있었다. 그마저도 오래 볼 수 없었다. 이런 날씨에는 따뜻하게 안에 있는 게 좋았다. 대전으로 출발하기 전에 카페에 들러 한참 낮잠을 잤다. 여행을 마치기 전에 여독을 풀었다. 해넘이와 해돋이를 한 곳에서 해결한 변산이었다.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었다. 그 행복이 크든 작든 감사하며 겸손하기를 바란다. 퇴근하기 전에 부장님께 보고하러 들어갔는데 부장님께서 연말에 평가를 잘 줬음에 작은 생색을 내시며 올해도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를 해주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들어와서 받은 첫 평가를 우수하게 받았으니. 한동안 내 좌우명으로 삼던 말을 꺼내보자.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