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
길버트 그레이프(1993)
그난이
2022. 10. 5. 01:40
무슨 영화였나 한참을 생각했다. 비루한 가족을 버텨내는 청년 가장의 애달픈 인생을 그린 걸까. 기구한 운명을 가진 가족의 서글픈 삶을 담은 걸까. 젊은 남녀의 불타오른 사랑을 보인 걸까. 따가운 시선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의 불편함을 내민 걸까. 연기력으로 모든 걸 녹여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족쇄가 되기도 하고 내 속의 굳은 심지가 되기도 한다. 벗어버릴 수 없지만 벗고 싶지 않은 그 소속감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러니 끊임없이 나를 찾아가야 한다. 무엇이 되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위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버지도 그랬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모든 끝난 인연은 아주 짧은 숨결과 같다. 함께 하고 있을 때는 유구하고 의미 있는 역사지만, 떠나버린 그 모든 것은 바람에 번져 사라지는 작은 숨결에 불과하다. 나의 가족도, 나의 친구도, 나의 연인도, 내가 만난 모든 세상의 숨결을 가진 존재가 나를 떠난 뒤에는 한 점 먼지와 같이 잡을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 그걸 알면서도 쉽사리 날숨을 쉬지 못하는 것은 덧없어지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홀로 선다는 것, 어른이 되어 고립된다는 것, 역사가 작은 숨에 사라진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무서워서 나는 이리도 주저한다. 가족, 추억, 그 어느 것도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성냥에 불 붙일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