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나들이] APEC나루공원, 영화의 전당, BIFF 2022, 수영강 산책로

APEC나루공원은 신세계 센텀시티 옆에 있다. 수영강을 끼고 길게 늘어선 공원이다. 나는 망각이 빠른 편인데 이 장소에서 세운 추억의 탑이 이미 무너졌나 보다. 머릿속에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들과 제주에 놀러 갔을 때 친구들이 나의 치매를 의심했다. 그런 생각은 늘 했다. 나이 들면 치매가 나를 피해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 안 그랬으면 좋겠다. 날이 시원해서 산책하기 좋았다. 곳곳에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구경하기 좋았다. 길 건너편에 영화의 전당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의 전당은 한껏 영화값이 오른 요즘, 영화를 보기 좋은 곳이다. 상업영화를 비롯하여 독립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상영한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만 피하면 영화보기에 쾌적하다. 특히 영화 전에 광고가 없다. 그게 조금 심심할 때도 있지만 영화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야만 불을 밝혀줘서 영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 주변에 가볍게 먹을만한 식당이 적다는 아쉬움은 있다. 백화점이 가까이 있으니 백화점 식당의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좋은 여가 장소이다. 나는 그곳들을 마음 편하게 가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맞이하여 여러 부스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시키는 걸 하면 상품이냐 기념품을 주는 방식이다. 대다수의 활동이 인스타그램을 써야 했다. 아이디가 없는 나는 그것을 위해 새롭게 만들까 하다가 관뒀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아이디를 만들고 에코백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싶다. 영화는 매진되지 않은 것 중에서 그나마 취향에 맞을 거 같은 영화를 골랐다. 유코의 평형추. 상영시간이 조금 길었고 좌석이 구석이다 보니 눈이 불편했다. 특히나 흔들리는 카메라가 담은 영상이 어지러웠지만, 평형을 맞추려는 저울질을 표현한 거라 생각해서 참고 견뎠다.

영화를 보고 나니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재밌었다. 일본 감독과 배우와 소통하기 위해 통역이 있었고 영화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훨씬 더 영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나는 무엇을 하든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굳이 깊게 알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괜찮다. 질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금방 지나서 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사람이 한 질문이 내가 하려는 것과 조금 유사하여 좋았다. 문득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올해 BIFF 봉사활동을 해보는 것도 좋았을 거 같다. 바빠 보였다.

영화의 전당을 나와서 수영강을 건넜다. 강은 매력 있는 곳이다. 호수는 늘 한결같지만 정체되어 있고 지나치게 세상을 그대로 비춰준다. 바다는 드넓은 수평선이 해방감을 주는 대신 어둠의 공포감을 준다. 강은 세상을 불투명하게 반사하는 청동거울처럼 너무 솔직하지도 너무 거대하지도 않다. 속을 다 보여주지 않으면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로 재미를 준다. 바다를 향해 흐르면서도 바람이 불면 표면의 파동이 바뀌며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더운 여름의 아지랑이를 물에 표현하면 빛을 반사하는 강의 물결이 아닐까. 인공 빛을 산란하는 물이 노래방의 탬버린을 흔들듯 인사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