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와 여행

[이탈리아 여행] 나폴리 - 신부님의 은총을 받은 성스러운 하루

그난이 2022. 10. 20. 02:07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다. 호스텔의 조식이 맛있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고 싶어 진다. 그러나 그 기쁨을 누리고 숙면의 기쁨까지 누리고 싶어 다시 잤다. 룸메이트들은 이미 떠날 시간이 되었고 오늘은 나만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숙면하고 일어난 기분이 아주 좋았다. 개운했다. 나폴리를 내 마음대로 즐기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10시에 일어나 사과를 하나 먹고 본격적으로 외출을 준비한다. 해는 이미 뜨거웠고 나폴리의 일상 소음은 모든 곳에 가득했다.

호스텔을 빠져나와 높은 곳을 향해 걷다보면 엘모 성이 나온다. 반지의 제왕의 곤도르 성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런 견고함을 지녔다. 거대하고 높은 암석 위에 지어진 이 성을 과연 어느 군대가 뚫을 수 있을까 싶다. 성 꼭대기에 오르면 나폴리의 사방면을 다 구경할 수 있다. 엘모 성이 놀라운 점은 꼭대기에 넓은 평지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군인을 포함하여 200여 명이 이 성에서 생활했는데 직접 채소를 재배하여 안정적으로 식량을 조달했다고 한다. 나폴리로 오는 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최적의 위치였다.

델로보 성

엘모 성을 보고 나니 오늘은 성 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참을 걸어서 누오보 성으로 갔다. 그 모양은 특이했지만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거대한 엘모성을 입장할 때 2.5유로를 받았는데, 이 작은 성을 입장하려는데 6유로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길을 돌렸다. 외관을 봤으니 델로보 성으로 갔다. 이곳은 특이한 가격 체계를 구성했다. 두 가지 선택권이 있는데, 첫 번째는 무료입장이고 두 번째는 10유로를 내면 가이드 투어를 해주는 방식이다. 나는 무료입장을 선택했다.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이 섬은 바다로 다이빙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누오보를 지나서 델로보 성으로 올 때 아주 허기졌다. 이미 3시가 다 된 시간이다. 이탈리아는 신기하게 3시부터 장사를 쉬고 7시에 다 시작하는 식당이 많다. 다소 생소한 문화다. 그래서 식당 문이 열려 있더라도 장사를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브레이크 타임이 아주 길다. 물도 들고 다니지 않아서 아주 목이 말랐고 근처에 식당에 앉았다. 마침 뇨끼를 파는 식당이길래 들어가 봤다. 소렌토 스타일 뇨끼를 시켜서 먹었고 토마토 양념에 새알을 넣은 맛이다. 그리고 빵은 1유로를 받았다. 맛은 좋았다. 다만 우리가 우리나라를 탄수화물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유럽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유럽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는 다른 반찬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은 정말 탄수화물만 먹는다. 가끔은 놀라울 따름이다. 콜라를 제로로 시킨 것을 내 몸이 고마워할 지경이다.

그리고 어디갈지 고민한 끝에 나폴리 대성당을 갔다. 유럽에서 성당 하면 지겨울 정도로 흔하고 많이 봤지만 그래도 도시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성당은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지역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의 문화를 쉽게 종합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폴리 대성당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만 유별나지는 않았다. 나폴리 대성당은 스테인리스를 아주 적게 사용했으며 금색의 치장이 많았다. 항구도시의 느낌을 준다. 그리고 여행객으로서 무료입장 성당의 장점은 보통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리아의 축복인가 싶다. 나는 많이 걷고 많은 매연을 들이마셔서 지쳐있었다. 성당 안에 누워있는 조각상을 보니 부러웠다. 앉아서 쉬었다.

라파엘 신부님

근처에 산 로렌초 마조레 성당이 있다. 이곳은 갈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들어가 봤다. 밖에서 보기에는 상점이 많은 골목 한가운데에 있고 외관을 공사 중이어서 오히려 들어가기 꺼려지는 곳이었다. 만나기로 했던 룸메이트가 시간이 있다고 해서 나만의 시간을 조금 더 갖는 김에 들렀다. 아주 소소한 성당이었다. 천장에는 나무 서까래가 있었고 흔히 성당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은 없었다. 이 낡은 성당은 조심스럽게 둘러보는 와중에 신부님과 눈이 마주쳤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셨다. 내가 조금 무례한 관람 태도를 보였나 싶었다. 그러나 말을 걸어주시며 혼자 여행 중이냐고 물어보셨고, 그렇다 하니 본인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어린양을 굽어 살피는 은총이었다. 신부님이 성당의 역사와 고딕 양식의 조각상이 있는 이유, 바로크 양식의 기둥이 있는 이유 등을 설명해주셨고 성당 옆에 있는 박물관에서는 2000년 전 로마 시대의 마을을 보여주셨다. 지하에 묻혀있던 것이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운영되었다. '안녕하세요'를 할 줄 아시던 신부님은 '감사합니다'를 배우고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셨다. 근사한 경험이다. 오늘 하루 종일 3만 보 가까이 걸으면서 지쳤던 내 몸과 마음이 치유되었다.

룸메이트를 만나서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이탈리아 대학생들을 잠시 만났고 그들은 아직 10대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이탈리어로 열심히 얘기하다가 영어로 얘기하다가 반복하며 나폴리와 시칠리아 중 어디가 더 좋은지 열을 올리며 토론했다. 그리고 귀가할 시간이 되어 떠났다.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덕분에 그라페(Graffe)라는 이탈리아 간식을 경험했다. 우리가 시장에서 먹는 꽈배기 중 그 꼬임이 적고 찰기가 많은 것과 아주 유사하다. 설탕이 기본이고 이 위에 크림이나 누텔라 등을 첨가해서 먹기도 하는 모양이다.

Nap hostel Bar

호스텔로 돌아와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고, 화요일이면 호스텔에서 무료로 주는 파스타도 맛봤다. 이미 배도 불렀고 나는 파스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만들어준 성의에 보답하고자 다 먹었다. 그리고 피자가게에서 맥주를 한 잔 더 마시고 아주 배부르게 샤워를 했다. 누워서 원하는 축구 경기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애썼고 결제하는 순간까지 넘어갔지만 내 모든 카드는 결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위층에서 자는 룸메이트에게 부탁했지만 그의 카드도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뒤척이다 잔다.

나폴리 거리

마요르카 여행의 좋은 벗이 '삼'이라는 영국 형이었다면, 나폴리에서는 '닉'이라는 미국 형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언어를 배우기를 좋아하고 경험의 가치를 높게 여긴다.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의 장점이기도 하다. 본인이 언어 소통에서 겪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여튼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다. 삼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법을 알려줬다면, 닉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알려줬다. 감사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