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와 여행

[스페인 여행] 바르셀로나 - 캄 노우에서 축구를 즐기다.

그난이 2022. 10. 22. 02:56

호스텔의 아침이 너무 깜깜하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고 커튼 때문에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 일어나야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가 주섬주섬 세면도구를 챙겨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호스텔에 몽골 출신이면서 독일에서 유학하는 친구를 만났다. 잠시 얘기를 하고 같이 마트(리들)에 가서 아침거리를 사 왔다. 독일에서 온 친구라 그런지 리들이 싸서 좋다고 조금 멀지만 그리로 갔다. 독일 마트에서 풍기는 특유의 빵 냄새가 반가웠다.

배를 채우고 카탈루냐 광장을 들렀다. 비둘기 밭이다. 너무 많은 비둘기가 무서울 지경이다. 하지만 팔에 올리며 친해지려는 사람이 많고, 바닥을 가득 메운 비둘기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자신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 모이는 건가 싶다. 람블라 거리를 지났다. 곳곳에 기념품과 젤라토를 파는 노점상으로 사람이 붐빈다. 젤라토 가격을 보고 놀랐다. 마요르카에서는 한 가지 맛에 2.5유로이고, 이탈리아에서는 두 가지 맛에 2.5유로인데, 바르셀로나에서는 한 가지 맛에 3.3유로다. 물가는 부동산의 가격과 밀접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보케리아 시장으로 들어갔다. 활기가 넘친다. 상점별로 파는 품목이 다양하고 사람들로 넘친다. 형형색색의 과일과 과일주스가 눈을 사로잡고 젤리와 초콜릿 과자가 천국인 것처럼 펼쳐져 있다. 간식 코너를 지나면 식사를 판다. 자리를 잡고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도 있고 부리또나 여러 음식을 포장해서 먹을 수도 있다. 그 외에 하몽을 팔기도 하고 한국 라면을 변형한 것과 만두를 파는 곳도 있어서 반가웠다. 그러다가 사람이 많은 상점에 들러 하몽이 들어간 또르띠야와 소고기 스테이크를 샀다. 대실패다. 그 가게에서 11유로를 썼는데 이렇게 실패할 줄은 몰랐다. 스테이크는 질겨서 절반을 버려야 했다. 그래도 예전에 보케리아 시장에서 먹은 파인애플 주스만큼은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한참을 찾았다. 파인애플만 들어간 주스를 결국 찾아냈고 2유로를 냈다. 이것도 실패였다. 보케리아 시장에 대한 좋은 기억이 퇴색되었다. 그렇게 돈은 쓰고 배는 채우지 못한 점심이 지났다.

시간이 빈다. 그래서 이발을 하러 가기로 했다. 스페인에서 이발소는 가보고 싶었다. 길을 걷다가 가격이 괜찮고 바로 이발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서로 잘 못하는 영어로 얘기를 주고받다가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고 그냥 맡기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스타일로 부탁을 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머리를 기르려고 애썼는데 순식간에 단정해졌다. 이걸 원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즐기기로 했다. 이미 지나간 일 아니겠는가. 호스텔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발을 했다.

몬주익 마법의 분수로 갔다. 지하철을 내려서 걷다가 노란색 표지판이 있었지만 읽지 않았다. 도착해서 알게 되었다. 보수 중으로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경치가 좋았다. 개보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애석한 일이 있나. 분수대 끝에는 카탈루냐 박물관이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니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이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캄 노우 근처로 갔다.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경기장으로 갔다. 서로 사진 찍어주고 위험한 길을 함께할 한국 사람들을 카페에서 찾았고 동행하였다. 경기장 앞에는 로봇 골키퍼를 상대로 골을 넣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3번 차는데 6유로를 낸다.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었지만 동행의 권유에 결국 티켓을 샀다. 뭔가 권유에 못 이겨했다기에는 너무 열심히 즐겼다. 나는 그런 식이다.

동행한 사람 중에 한 분은 스페인에서 유학도 하고 바르셀로나의 오랜 팬이었다. 그분을 따라 캄 노우 투어를 하며 경기 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이드가 잘 어울리는 분이셨다. 좌석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멋있었다. 골이 많이 나와서 경기가 흥미롭긴 했지만 스포츠를 관람하면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없다는 건 재미를 반감시킨다. 수준 높은 축구를 멋진 경기장에서 봤다는데 의의를 뒀다. 언제 캄 노우에 와보겠는가. 9만 9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거대한 건축물에서 관람한 자체가 즐거웠다.

경기를 마치고 동행한 분들과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스페인에 있는 체인점인 The Good Burger는 목요일과 일요일에 햄버거를 1+1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햄버거 자체도 맛이 좋았다. 음료는 무한리필이 가능한데 콜라와 환타 제로가 있어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니 즐거웠다. 축구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니 대화 소재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야간 버스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지난 유럽 여행에 다녀간 곳은 다시 오지 않으려 했지만 '축구'를 여행의 테마로 설정하니 바르셀로나는 거쳐가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나폴리에서 스페인으로 돌아올 때 비행기 값이 저렴한 편에 속하기도 한다. 즐거웠으면 됐다. 다만 그 도시에 온 목표를 오자마자 성취해버리면 고민이 시작된다. 내일 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