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말라가 - 광안리가 생각나는 도시와 바다

아침은 어제 못 전한 선물을 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에 포르투갈 에그타르트 집에서 포장해서 먹었다. 계피 가루가 들어간 에그타르트가 맛이 좋았다. 그리고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숙소가 침대만 빼면 괜찮다. 버스 터미널이 걸어서 7분이었다. 안내판은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떨결에 말라가행 버스가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버스 번호도 알 수 없고 전광판에 안내된 것도 없어서 긴가민가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영어를 할 줄 몰랐으니 본인의 표와 대조해보고 맞다고 확인해줬다. 그렇게 오늘의 동행이 생겼다.
배낭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탔다. 나를 도와준 사람은 내 옆자리였다. 이번 여행은 뭐가 있나. 인복이 좋다. 모로코 친구가 생겼다. 친구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고 시작하면 끝도 없지만, 그냥 사람 대신 친구라는 말이 더 부르기 좋다. 우리는 번역기를 써가며 대화를 했다. 나는 영어 외에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다. 그 친구는 아랍어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지만 영어를 할 줄 모른다. 결국 어려운 의사소통이 시작되었다. 버스에 타서 조금 알아가다가 잠을 청했다. 침대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불편했다.

말라가는 아주 뜨거웠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그 친구의 호스텔도 같은 방향이어서 같이 걷다가 식당을 찾았다. 가격이 비싸지 않은 할랄 음식점을 결국 찾아냈다. 몇 번의 실패가 있었다. 결국 '술탄'을 시켰다.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밥과 감자튀김이 같이 있는 조합이 신기하지만 고기 양을 생각하면 적절한 구성이다. 배부르게 먹고 고마운 그에게 사진을 선물했다. 마침 가방을 다 들고 있으므로 바로 줄 수 있었다.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간단한 손빨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성당은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말라가 대성당의 외관을 보아하니 원기둥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첨탑은 없다. 타워 구경하면 입장권에 돈이 추가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외관을 보고 지나갔다. 나만의 여행 기준이 생기는 거 같다.

그리고 피카소 박물관으로 갔다. 돈을 내려고 하니 공짜입장이라고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다.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혼자 다니다 보니 재미가 있다. 오디오 가이드는 1유로를 내야 하고 영어가 있긴 하지만 들어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거 같아서 구매하지 않았다. 설명문을 읽고 그림을 보고 제목을 읽어가며 그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저 느끼려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피카소는 여자를 많이 그렸다. 실제로 많은 여성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굉장히 기괴한 구성으로 그린 그림이 많다. 물론 여성뿐 아니라 모든 대상을 입체적으로 자기가 구상하고 싶은 대로 조합한 거 같다. 하지만 본인의 자식만큼은 그렇게 사랑스럽게 그릴 수 없다. 내가 본 아기를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자기 자식만큼은 초상화에 진심이었구나 싶었다. 다른 그림으로는 'The siesta'가 좋았다. 평화로운 오후에 잔디밭에 누워 온 몸의 근육을 풀고 수면을 만끽하는 게 느껴진다.

예전에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반 고흐 미술관을 갔다. 아주 재미없었던 경험이다. 다리만 아프고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네덜란드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그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오늘 피카소 박물관을 가서 느낀 것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잔잔한 오락이다. 그에 반해 연애는 시시각각 재미가 솟아나는 즉각적이고 쾌락의 강도가 높은 오락이다. 사랑이 불타는 시기의 커플이 와서 잔잔한 오락인 박물관을 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반 고흐 미술관이 다시 가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애초에 그런 시기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재미를 찾으려 했던 것이 현명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어떤 오락이 연애만큼 즐겁고 뜨겁겠는가.

미술관을 나와서 다시 모로코 친구를 만났다. 같이 힐브랄파로 성을 향해 걸었다. 등산이었다. 경치가 좋았다. 말라가 뒷산을 오르는 마음이었다. 바다를 품은 말라가가 한눈에 보였다. 해는 강하게 내리쬐었으며, 땀이 조금 났다. 불쾌하지 않았다. 성에 오르면 더 높은 곳에서 말라가를 내려다볼 수 있지만 돈을 굳이 내지 않았다. 이미 높이 올라왔다. 충분하다.

해변으로 갔다. 말라가에 왔는데 해변은 봐야지 싶었다. 내가 걷는 속도가 빠른지,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걷는데 자신이 생겼는지 자꾸 빨라졌다. 속도를 맞추려고 했다. 해변은 늘 그렇듯 보기 좋다. 그러나 말라가는 신기하게 도심 속에 해변이 있는 느낌이다. 광안리 느낌이 난다. 주변의 건물들이 높고, 차도 많다. 근처에 쇼핑몰도 크게 있으며 바로 길을 건너면 항구가 나온다. 천연의 자연을 만끽하는 곳이라기보다 번화한 도심 속에서 즐기는 해수욕이 더 맞다. 그저 왔음에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하루에 사람을 만나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는 거 같았다. 오늘은 모로코 친구와 충분히 함께 했더니 더 이상 밤에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 내일 또 빨리 일어나야 하므로 빨리 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말라가 호스텔에 들어와서 처음 인사한 호주 친구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무 살의 젊음과 영민함이 보기 좋았다. 그러다 네덜란드 친구는 얘기하다가 야간 버스를 타러 갔고 아르헨티나 아저씨도 잠시 얘기를 하셨다.

저녁은 호스텔에서 준비한 칠리 콩카네를 먹었다. 3유로로 제법 괜찮게 저녁을 해결해서 좋았다. 옥상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나와 맞지 않았다. 나의 취향에 맞게 대화를 했다. 번역기만 가지고 대화를 했던 낮의 시간도, 유창한 영어 속에서 쫓아가려 애쓰는 밤의 대화도, 모르는 말을 이어가시는 아저씨와 눈을 맞추며 듣는 순간도 나의 하루를 채우는 소중한 속이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기를 넘어서 즐거웠으므로 감사하게 눈을 감는다. 다시 생각해도 저녁이 은은하게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