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와 여행

[영국 여행] 요크 - 비 오는 거리를 보며 에프터눈 티를 맛보다.

그난이 2022. 11. 6. 15:00

눈이 빨리 떠졌다. 이런 날은 바로 일어날지 말지 고민이 된다. 일단 일어나서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빵을 커피와 함께 먹었다. 라운지에 가니 여자 럭비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다음은 크리켓 경기로 이어졌다. 나는 면접 준비를 했다. 잠이 와서 다시 잤다. 이제는 움직여볼까. 밖은 비가 와서 늦장을 부렸는데 마침 비가 갰다. 날씨도 춥지 않았다. 걷기 너무 좋았다. 그래서 강가를 걷기로 했다.

산책로가 잘 되어 있다.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축축한 공기가 비에 씻겨 미세먼지 없이 맑게 느껴져서 시원하게 들이켰다. 떨어진 낙엽이 비에 젖어 사각거리지 않았다. 강을 따라 걸으며 요크를 느꼈다. 여행을 하며 사람을 만나면 두 부류가 있다. 자기가 사는 곳을 홍보하는 사람과 좋지 않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요크를 추천해서 오게 한 친구는 아주 추천했다. 그래서 왔고, 와서 보니 그럴 가치가 있다. 아직 영국의 다른 도시는 가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 없지만 와볼 만한 도시다.

평지가 드러났다. 잔디가 깔려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 위를 달리고 싶었다. 나 대신 강아지들이 뛰어놀았다. 나중에 한 강아지가 너무 멀리 떠나서 주인이 애타게 불렀다. 제니였나. 결국 주인에게 잘 돌아갔을까. 산책하며 노래를 듣기 아주 좋았다. 주말이었다. 나에게도 여행인 동시에 주말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여유로웠다. 내일 요크를 떠나니 최대한 이 도시를 느끼고 싶었다.

오늘이 주말이라는 생각. 나는 일요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친구가 영국의 전통적인 음식 sunday roast를 추천했다. 특히나 요크가 잘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제 대화를 내가 다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일요일 아침에 요크를 떠난다고 하니 친구가 이 음식을 못 먹고 가서 아쉽다고 했는데, 그건 기억 못 하고 sunday roast를 추천한 것만 기억이 났다. 그래서 주변에 이 메뉴로 유명한 식당을 찾았고 들어가서 주문을 하려는데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오늘이 토요일이구나. 식당을 나왔다.

요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새가 있다. 올라가려면 10파운드를 내야 한다. 사진 한 번 찍자고 돈을 내기에는 비쌌다. 그래서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먼 길을 돌아왔다. 오는 길에 Aldi를 들렀다. 클렌징 폼이 떨어져 갔다. 지금껏 어느 상점을 찾아도 사이즈가 100ml 이하로 없었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제 귀국행 비행기만 남았구나. 위탁 수화물로 붙이면 액체류의 용량이 상관이 없구나. 그것도 모르고 며칠을 작은 사이즈로 사겠다고 찾아다녔다. 나의 이 짧은 생각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덕분에 있는 클렌징 폼을 아끼고 아끼며 살았다. 나름의 위안을 찾았다.

성벽 위를 걸었다. 요크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다행히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도시들이 있었지만 남아있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성벽에 올라 도시를 돌아보니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 특히나 경관이 좋다. 교통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다른 성문으로 가기에 빠른 방법이다. 나는 식당을 찾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했는데 좋은 결정이었다. 북문에서 서문으로 성벽 위를 걸으며 이동했다.

요크에는 중국사람이 많다. 그래서 중국음식이 괜찮지 않을까 기대했다. 가는 길에 타이 음식점이 보였다. 평점도 높았다. 중국음식점이 열지 않으면 이곳으로 와야겠다.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니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나왔다. 괜찮아. 나는 다른 대안을 준비해 뒀으니까. 타이 음식점으로 갔다. 불은 켜져 있지만 영업을 하지 않았다. 대안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왕 계획이 틀어졌으니 영국을 제대로 경험하고 가자는 결심을 했다. 에프터눈 티를 먹으러 갔다. 요크에 유명한 곳이 있지만 예약 없이는 불가능하고 근처에 평점 높은 곳을 찾아갔다. 커피를 추가해서 4만 원 돈을 주고 먹었다. 보는 재미, 하나씩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직원은 아주 친절했으며 분위기도 좋았다. 다만 나는 빵을 이렇게 많이 먹지 못한다. 기본으로 주는 커피로는 부족하여 커피를 추가했으며 케이크는 남겼다. 샌드위치와 스콘은 아주 맛있었다. 케이크가 레몬크림이어서 아쉬웠다. 여하튼 제대로 경험했다. 접시와 컵이 아름다웠다. 이제는 이런 것도 보인다. 창 밖의 비 오는 거리를 보며 에프터눈 티를 즐겼다.

비가 왔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걸을만했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박물관 공원을 걸었다. 옛 건물과 박물관 그리고 큰 나무들이 잘 어울렸다. 청설모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구경하기 좋은 거리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비 오는 요크 거리는 노래 맛집이다. 아. 중국음식점에 갔을 때 중국인 사장님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중국어를 했다. 중국 사람처럼 보였나. 아니면 당연히 중국 사람만 온다고 생각했나. 모르겠다.

비가 제법 내렸지만 지도를 보니 철도 박물관이 있었다. 어제 친구가 추천해줬으니 그래도 가봐야지 싶었다. 입장료는 무료다. 생각보다 아주 규모가 크고 잘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재밌는 점은 철도역에서 음식을 팔듯이 박물관 안의 철로 옆에 카페가 있고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괜찮은 방식이었다. 열차를 구경하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문과라면 여왕들이 쓰던 열차 칸을 구경하는 재미, 역사를 눈으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과라면 과거의 거대한 기계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재미를 느낄 것 같았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이다. 여행을 하며 만난 한국 사람들이 나의 전공을 예상할 때 모두 이과일 것 같다고 했다. 왜일까.

배는 불렀지만, 그래도 저녁에 뭐라도 먹어야 하니 마트에서 즉석식품을 사 왔다. 에프터눈 티를 다 먹어갈 때쯤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었다. 마트에 신라면을 보고 느낀 유혹은 거대했다. 하지만 한식은 참으리라. 결국 매콤한 다른 대안을 찾았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이번 여행 중에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번거롭고 창의력이 필요하다. 고민하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충실하게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쪽에 가까운가.

오늘 요크는 불꽃놀이를 한다. 하지만 나는 하루를 마쳤다. 이미 씻었으며 내일 일찍 출발하기 위해 가방도 다 싸 뒀다. 요크에서의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사회적 활동을 했으니 오늘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밥 먹고 바로 누웠지만 잔소리할 사람 어디 없다. 이건 자유의지인가 나태인가. 피곤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