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
정리되지 않은 글을 써보자. 다듬다 보면 나의 생각과 감정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듬지 않고 내뱉은 말이 나에게 날카로운 화살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래서 나는 농담을 삼가는 편이다. 분위기를 깨거나 유쾌함보다는 불쾌함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보니 오히려 미움받을 짓을 하지 말자는 주의가 되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렵다. 내가 나중에 그런 가족관계를 형성할까봐 두렵다. 나의 정신적 미숙함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언제까지고 막내로 살고 싶다. 그게 밉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안정된 삶 속에서 나는 자꾸 다른 걸 생각한다. 전문성을 띠는 자격증을 따야 할까. 더 나은 직장을 찾아야 할까.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하지 않는다. 실은 그 누구보다 이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늘 그렇듯 나는 내가 속한 집단에 애착심을 갖는다. 이 회사도 사실은 아주 만족스럽다. 나를 둘러싼 동료가 모두 좋고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도 만났으니 더할 나위 없다. 더 좋은 직장과 상황을 생각하는 건 나이 먹어서도 버리지 못한 허세에 가깝다. 어차피 하지도 않을, 하지도 못할 망상이다. 요즘 날씨가 참 좋다. 연둣빛을 내는 잔디밭을 보고 있으면 출근길에 힘을 받는다. 촌놈 기질은 버릴 수 없다. 채용박람회에서 상담을 해드렸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건 재밌는 요소가 도처에 깔려있는 행위이지만, 금방 목이 아팠다. 말로 먹고 살기에는 어려울 거다. 작년에 해외여행을 오래가서 그런가 해외여행이 당기지 않는다. 아니 사실 가고 싶은데 그렇게 큰돈을 한꺼번에 쓸 용기가 줄었다. 이제는 큰돈을 들여서 사야 할 것들이 생기는 나이가 되니 소득이 늘어도 오히려 함부로 돈 쓰기가 무섭다. 상처는 참 짙고 질다. 나의 과거를 반성한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게 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유튜브로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래서 오늘은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시간도 무의미하긴 하다. 아버지의 메일에 보름이 넘게 미루던 답장을 쓰고 나니 감상에 젖었나 보다.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한다. 올해 아직 한 번도 휴가를 안 썼다. 휴가 쓰고 할 게 없으니 안 쓰게 된다. 모아서 좋을 것도 없는데 괜히 놀면 안 될 거 같은 의식은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내로남불만 아니면 꼰대가 아니지 않을까. 어릴 때는 마당개를 키웠었다. 몇 마리를 키웠는데 어릴 적에 키운 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집을 다시 짓고 들어가서 키운 개들의 이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었다. 나는 그 개들을 별로 이뻐하지 않았다. 그저 집에 가는 길에 이름을 불러줄 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개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 마당에서 맨발로 공을 많이 찼다. 집을 새로 지으면서 마당에는 잔디가 깔렸고, 내가 어린 마음에 큰돈을 주고 마련한 농구골대는 퍼지는 잔디와 함께 무용지물이 되어 축구골대 모서리 역할을 했다. 누가 보면 대궐 같은 집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 짐을 고쳐서 짓기 전에 공사는 늦어지고 아파트 전세는 끝나고 허름한 집을 빌려 한두달 지낸 적이 있다. 그 때 수험생이던 형은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얹혀 지냈다. 쓰러질 듯한 기둥과 얼룩진 벽지가 기억난다. 만약 공사 중인 집을 보지 않고 바로 임시 거주지의 허름함을 맛봤다면 나는 절망에 빠졌겠지. 그 낡은 집에서 지낸 기억이 나쁘지 않은 걸 봐서는 희망이란게 참 중요하다. 내가 나고 자란 집의 마당에는 종종 뱀이 나타났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마당에 나타난 뱀을 쫓아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형이 어린 나이에 물려서 생사를 다툰 적이 있어서 엄마는 아직도 뱀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도 그 산 속 시골집에 명절이면 사촌들이 다 모였고 바비큐 파티를 했다. 주말이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고기를 굽고 같이 밤새 놀며 수다를 떨었다. 나에게 집은 두려움과 행복한 기억이 공존하는 곳이다. 내 짐을 빼고 나니 서운하다. 체리가 먹고 싶다. 망고도 좋다. 형들을 만나 술을 마실 때 말린 망고를 사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걸 사 왔냐고 했는데, 그때 먹은 이후부터 안 사 오면 아쉬워한다. 그래서 말린 망고는 내 최애 술안주이자 나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축구를 잘하고 싶다. 그렇다고 너무 경쟁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내 삶이 그렇다. 막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랬던 순간이 인생에 몇 번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거 같다. 물론 저번 주말에도 출근했고, 이번 주말에도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이런 자잘한 부지런함 말고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서 큰 것을 이뤄내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달력은 아직도 4월이네. 오늘 운동은 별로 열심히 안 했나. 근육통이 없네. 자야 되는데 왜 잠이 오지 않지. 곤란하다. 여행 간 이이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면 잊었던 내 모습을 되찾는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 나는 이런 사람이지. 술 없이 개 짖는 소리를 낼 수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