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푸념

그난이 2023. 8. 30. 20:07

성에 차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 면접을 봤다. 감사하게도 합격해서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지만 더 좋은 곳이 없을지 물색한다.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하다. 직장을 구할 때 내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세금 떼고 300을 넘겨라. 이 조건만 충족하면 되는 줄 알았다. 달성하고 나니 나는 더 능력이 있는데 여기 있는 게 아쉬운 선택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한다. 어쩌면 내가 갈 수 있는 회사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일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오르지 못할 나무더라도 올라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지금의 나무가 나에게 딱 맞았구나 깨달을 수 있으니까.
나는 옳고 그른지 직접 해봐야 아는 사람이다. 회사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잘 다녔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내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지 테스트하고 싶다. 이런 와중에 경영진과의 식사 자리에서 앞으로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는 호언장담을 들었다. 젊은 직원들은 앞으로 많이 좋아질 거라는 소식. 내가 다른 곳을 기웃거리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같이 신입교육을 듣던 동기가 아주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했다. 능력이 있으면 좋은 곳으로 가는구나.
회사 생활을 엉망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들어온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상을 받게 되었다. 사실 내가 잘한 건 없고 인복이 좋을 따름이지만, 그래도 평가가 나쁘지 않다는 게 감사하다. 어릴 적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했을까. 지금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모르겠다. 다시 태어나면 축구선수 해야지 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만 한다. 퇴근하고 공부를 하는 게 어렵다. 아침에 전화영어를 하는데 모닝콜로 쓴다. 알람이라는 게 때로는 놓치기도 하니 딱 알맞다.
오늘은 퇴근하면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 택배를 찾고, 운동하고 씻으면 잘 시간이 되겠지. 비가 많이 온다. 날이 시원해졌다. 무더운 여름이 지났다. 내가 참 볼품없던 작년 여름으로부터 1년이 지났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가던 날로부터 1년이 된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둘러싼 환경은 모든 게 바뀌었다. 나는 집에 와서 좋은 걸까. 아니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오히려 남들처럼 위로 올라가고 싶은 걸까. 이정표 없이 살아간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사람이었다. 남이  정해주는 길을 따라 사는 걸 행복으로 여기던 사람.
나의 길은 내가 정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가고자 하는 길이 있는 야망 있는 소년이고 싶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이렇고 말고, 저런 말을 들으면 저렇고 말고, 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삶이 나의 꿈이던가. 결국 사람이 되는 게 꿈이구나. 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