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부모

그난이 2023. 9. 24. 21:23

70대 중반이 된 아버지의 메일을 받고 여전히 숨이 턱 막히는 30대 아들이다. 우리 부자의 관계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버지의 일생을 보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좋은 대학을 나와 부모의 자랑이셨고, 번듯한 직장에서 부모의 노후와 빚을 책임졌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자녀의 양육도 부족하지 않게 신경 썼다. 그러면서 본인과 아내의 노후까지 준비했다. 늘 성실했고, 치열하게 살았으니 뼈가 삭는 삶이라 했다. 30년 넘는 직장 생활을 하며 걸어 다니거나 버스를 타고 도시락을 싸다니며 식비를 아꼈다. 10년이 넘게 정장은 사지 않으며, 사치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면서 일하지 않고 번 돈은 부끄럽게 여겼다. 주변만 신경 쓰고 살다 보니 본인에게 남은 것은 시골에 자리한 주택 하나와 40년을 함께한 아내뿐이다. 갈등을 반복하다가도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면, 아버지가 본인의 집과 본인의 아내를 지키려고 하는 것, 이를 넘어서는 집착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인생만 있지는 않다.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보자. 얼마나 고된 삶이었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그 시절 여성으로서 서울 유학을 하며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되었다. 아주 즐겁다고 여기던 교단을 떠나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 와서 시부모를 모시고, 부족한 살림에  자식들을 낳아 길렀다. 오리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듯 버스를 타고 아들들을 데리고 시장을 다니고 장을 봤다. 대학 친구들은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좋은 곳을 다니며 살아갈 동안, 본인은 시골에 갇혀 뒷바라지나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목표는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자식만큼은 번듯하게 키우겠노라. 이 무시와 설움을 이겨내겠다고. 그 목표를 달성하셨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본인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아도, 어릴 때 부모로 받은 한 없는 사랑으로 방파제가 높이 쌓여있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시골에 있는 집에서 꽃도 가꾸고 작물을 키우며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고 계신다.

두 분의 삶에 비하면, 편했고 배불렀던 나의 삶이다. 아버지와 하게 되는 설전의 본질은 두 분의 삶이 아니지만, 이렇게 삶을 들여다보면 자식된 도리가 무엇인가 싶다. 그저 감사하고 수긍하는 게 답인가. 회사에서 관계로 받는 스트레스는 없는데, 가족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관계뿐이라니. 참.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