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고레에다 히로카즈, 2017)

그난이 2024. 3. 25. 23:20

한 가족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왜일까. 인생은 왜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그럭저럭 살만한 삶이 비루하게 보이기도 하고, 내가 이루고자 했던 꿈이 어린 시절의 낭만에 불과하다 여기기도 한다. 젊고 시간이 많을 것 같은 나는 어느덧 신체적으로 노쇠하기 시작했으며 부모님은 에너지가 부족해져 걷기 불편해지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대에 태풍이 불어 국민이 다 같이 쓰러지기도 하고, 가족에 가혹한 태풍이 불어 불우한 가정을 꾸리고 한 개인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다. 때로는 그 태풍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굳힌 응어리를 깨끗하게 씻기도 한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때 묵은 응어리가 반짝반짝해졌을 뿐. 가족이란 그런 것인가. 가까워지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이별할 수 없는 사이다. 그리고 책임감이란 무엇일까. 불꽃 튀는 사랑도 무책임 앞에서는 환멸로 변질될 뿐이다. 어쩌면 나의 과거는 무책임 속에서 끝내온 관계의 연속은 아닐까. 어릴 적 내가 생각한 미래의 우리 가족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기대한 나의 서른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료카는 전처 교코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아들 신고도 소중하다. 그러나 사랑을 지키기에는 부족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부모는 그래도 나를 사랑한다. 어느덧 엄마 도시코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세월이 뭐 이런식일까. 아무리 과거를 후회한다고 한들 떠나간 교코를 잡을 수 없다. 교코도 안다. 료카와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그 시절 둘의 행복은 진실되었음을. 그렇다고 어린 신고를 책임지지 못하는 료카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같이 대화하는 게 즐겁고 웃음이 절로 나오는 관계는 아니지만, 물질적 여유를 가져다줄 수 있는 후쿠즈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모든 그렇다. 눈앞에 있을 때, 내 손에 있을 때 저거 해야 하는 법이다. 놓치고 나서 후회해 봤자. 저거 할 뿐이다.

한 번이라도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은, 더 이상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