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1(도원에 피는 의)(나관중 지음, 이문열 평역, 1988)
어릴 적에 삼국지를 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방학 숙제로 삼국지 정사와 연의를 비교하는 짧은 보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요코야마 마쓰테루의 60권짜리 삼국지 만화책도 빌려줘서 집에 두고 여러 번 들여다봤다. 오랜만에 다시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 졌고 회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어른이 되어 읽는 삼국지는 다르게 느껴질까. 어릴 때는 이게 마치 역사서 같았지만 이제 보니 역사소설이다.
혼란한 시대는 때가 되면 다가오기 마련이다. 태평성대를 그리 오래가기 어렵다. 그 혼돈은 곪아터진 내부에서 비롯되기 쉽다. 환관들의 간섭으로 총명했던 황제는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하고 흐릿한 정신으로 살아간다. 남아있는 충신의 조언조차 거슬리는 소음에 불과해진다. 살기 팍팍해진 민중은 미신이 위로한다. 새로운 종교는 사람을 현혹하고 새로운 세력이 되며 반란을 일으킨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어디선가 의로운 사람이 나타나서 극복해 낸다. 그럼 결국 문제는 해결이 되지만 부패한 나라가 바뀌지 못한다. 잠잠해지고, 다시 부패해지고 다시 혼란스러워지며 새로운 세력과 새로운 갈등이 생긴다. 새로운 영웅도 나타난다. 그 영웅들의 전쟁이 이제 곧 시작하려고 한다.
삼국지연의는 민족주의적인 소설이다. 한 나라의 혈통을 가진 유비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유비가 이끄는 촉나라의 팬이 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그 품성을 닮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늘 공손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상대는 어려운 구석을 찾고 매력을 가진 사람. 어른이 되어 다시 봐도 마찬가지다. 마치 더 멀리 보고 있는 것 같고, 깊은 생각을 가진 것 같은 그런 묘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삼국지가 소설적인 면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느낀 점은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려했으나 실패하고 도망치다가 아버지의 지인에게 잠시 의탁하여 하루 쉬려고 한 밤이다. 어르신은 시장에 가서 마실 것을 사 오겠다고 나갔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수배령이 내려진 조조는 어지러운 마음이 든다. 혹여나 이 어른이 나를 밀고하러 간 것은 아닐까. 의로움이 중요하며, 한실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서 이제껏 낙양에 머물던 그였지만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느낄 시점이었다. 마침 밖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린다. '묶어 버릴까? 이 칼이 좋겠지?' 결국 나를 밀고했구나 싶은 조조는 나가서 온 가족을 멸살한다. 하지만 그들은 손님대접을 위해 돼지를 잡으려던 것이다. 진궁과 도망치던 조조는 술을 사서 오는 어르신을 만난다. 그냥 떠나려던 조조는 결국 그 어르신까지 죽여버리고 만다.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지 않은 채로 성공을 추구하던 조조가 본격적으로 난세의 간웅이 되기 위해 탈바꿈을 하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의 본질이 뒤바뀌었구나.
오래전 역사를 다룬 이 소설이 아직도 많은 게임 소재로 활용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이유는 군상의 여러 면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살기 팍팍해진 현실에서 종교가 득세하고 우매한 민중이 종교에 의지하기 시작할 때 그 못난 종교가 설파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2000년이 지난 지금과 다를 바가 있을까. 어쩌면 이런 교훈이 담겨 있기에 여전히 삼국지를 찾는 것은 아닐까.
요행 병이 나으면 자기들의 영험함 덕택이요, 낫지 않으면 믿음이 없거나 죄를 다 씻지 않았다 하여 병자의 탓으로 돌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