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생일
그난이
2024. 4. 23. 23:00
안면도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걸었다. 썰물이 되어 펼쳐진 단단한 바닥 위에 의미 없는 글을 써봤다.
'고래는 어디로 갈까.'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은 내 눈높이보다 높았다. 내가 잠긴 듯했다.
동기들의 축하를 받으며 케이크의 초를 불었다. 서른 번째 날숨이다.
어제는 다른 이가 날숨을 내쉬었고. 내일은 다른 이가 내쉬겠지.
정이 많아서 그 정을 떼는 게 너무 힘겹다. 사람에게 많은 정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가족한테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삶에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축구선수를, 경찰관을, 경영인을, 천문학자를, 대통령을, 사무관을, 사랑을 꿈꾸던 하루가 쌓여 서른이 되었다.
나에게 꿈이란 무엇일까. 조금 나은 회사를 간다고 꿈이 이뤄지는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 무지개가 검다고 하면 검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살다 보니 무지개는 결코 검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일곱 가지 색이 선명하지 않으면 시시하다.
쌍무지개도 있고, 흩날리는 물방울에 맺히는 무지개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랗고 투명한 배경에 작은 구름이 뭉개 뭉개 떠있는 하늘을 가르는 무지개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마르고 딱딱한 바닥을 밀물처럼 밀려 적시는 것.
모래사장에 만들어 놓은 모래성과 새겨진 글씨를 파도로 지우는 것.
선명하던 무지개가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보이게 하는 독.
서른 번째 생일이다. 낭만은 없고, 세상에 권태와 불만만 늘어가는 한숨으로 초를 끄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