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2019, 김영하)

그난이 2022. 10. 8. 16:53

내 첫 여행은 부산이었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부산 여행을 왔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모든 일정을 계획하여 보고했다. 더운 여름에 여행을 왔고 그 기억이 좋았는지 부산으로 대학을 왔다. 그렇게 이곳은 여행지에서 일상의 터전이 되어 10년 가까이 살게 되었다. 그때 본 태종대는 아직 잊지 못한다. 아찔한 바위 아래에 부서지는 파도의 하이얀 물가루.

아마도 오늘이 부산에서 여유가 넘치는 마지막 하루가 될 거 같아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음식을 먼저 정했다. 특별하지 않지만 그리울만한 음식으로 골랐다. 그러고 나서 할 것을 정하다 보니 주변에 할 건 없고 커피를 마시며 미뤄둔 책을 읽었다. 여행을 앞두고 나는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여행의 의미는 일상으로 복귀해서 다가온다는 작가의 말을 따라 나도 미리 찾지 않기로 했다. 어제에 대한 후회와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오늘의 나에 집중하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도 작은 여행이었다.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