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가 산에 있어서 그런가, 자연을 늘 함께 해서 그런가, 등산을 한 지 오래됐다. 계룡산을 가보자. 국립공원이니까 관리도 잘 되어 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형들과 같이 텐트를 치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는 형들과 사촌들과 등산을 오기도 했다. 부모님과 놀러 온 기억은 사진으로 보면 더 분명하게 난다.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한다고 바쁘셨다. 그리고 텐트에서 어머니가 싸주신 음식을 먹었다. 늘 불고기가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까. 온갖 이상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다시는 그런 기억을 만들 수 없으니, 추억이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교가에 계룡산이 들어있다. 대학생이 되기 전 20년을 산자락에 살고, 10년을 부산에서 살았지만 학교는 산자락에 자리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산으로 왔다. 산을 벗하며 살 운명인가.

오랜만이니 천천히 걷자. 발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며 걷자. 동학사에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하면 등산 초입까지 거리가 제법 된다. 가는 길에 왼쪽에 음식점이 줄지어 있고 호객 행위를 열심히 한다. 다들 계곡을 끼고 장사를 하신다. 그 정취가 제법 괜찮을 거 같다. 나는 이미 점심을 먹고 왔으므로 직진을 했다.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물이 참 맑았다. 어릴 적 집 옆 시냇가에서 가재를 잡고 놀던 기억이 난다. 명절이면 가재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이제는 전설 속 이야기처럼 되었다. 어릴 때는 물에 젖어가며 노는 것이 즐겁고 시원하다고 느끼며 좋았는데, 이제는 찝찝하다는 생각이 먼저 난다. 사람은 참 잘 변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변하는 변덕쟁이다.

580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허벅지가 아파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을 이겨내고 걷다 보면 은선폭포가 나온다. 비 온 뒤 얼마 되지 않아서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오르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흔들렸다.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등산에는 쥐약이다. 발을 딛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준다. 그러다가 다시 힘을 풀고 몇 걸음을 의지와 상관없이 걷는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온 내 몸뚱이처럼.

예당호로 왔다. 마침 수변무대 개설 행사를 한다고 사람이 많았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가 오기로 한 모양이다. 관심 밖이므로 걸었다. 전망대에서 예당호를 바라본다. 탁한 물이 하늘을 비춘다. 물은 물이구나. 400미터에 달하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다리가 커서 너무 안전한 느낌이 드는 출렁다리였지만, 그래도 걷다 보니 멀미가 났다. 곳곳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서 해가 지고 오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호수에서는 좌대낚시를 즐기는 분이 많았다. 빈 좌대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어서 놀랐다. 무엇을 낚으실까.

저녁을 먹으러 요즘 유명한 예산시장으로 왔다. 자리 예약은 따로 하고 음식점에서 음식 구매는 따로 하는 방식이다. 많은 분들은 불판과 버너를 빌리고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구워드셨다. 다만 너무 붐비는 공간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간단히 먹고 나가기로 했다. 국수를 먹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포장했다. 음식이 비싸지 않은 점이 좋았다.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지만 두통이 이미 나를 사로잡아서 오래 있기 힘들었다. 다만,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자리도 바로바로 치워주시고 화장실도 잘 마련해 놨으며 음식도 다양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리를 지켜야 하는 방식이라서 많은 사람이 같이 오면 더 즐기기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시장 안에 있는 커피숍의 커피가 맛이 좋다.

푹 쉬고 하루를 시작했다. 혼자 자면 바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중간에 깨는 경우가 많은데 같이 자면 푹 자는 경향이 있다. 혼자 살 운명은 아닌 거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창 밖으로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며 바글바글 소리를 내다가 떨어진다. 그 위로 햇빛이 내린다. 고요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밀린 일기를 쓰고, 일주일이 지난 여행기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 나는 평화로움을 느낀다. 이번 명절에는 어디 가지 않는다. 긴 휴일 동안 나는 홀로 있는다. 어머니를 만나 밥을 먹기도 했지만, 형을 만나 밥도 먹을 거지만, 서울에서 할 예정이었던 형제 모임이 취소되었다. 어쩌면 내가 바라던 바다. 공부도 해야 했고 지난달이 바빠서 쉬고 싶기도 했다. 밀린 일기도 쓸 시간이 필요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어느덧 나의 과업이 되었다. 그러다 보면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혼자 살 운명인가.

예산의 테마파크인 내포보부상촌을 갔다. 안에 탈 것도 있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음식도 팔고 박물관도 있고 승마체험장도 있고 온갖 놀거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만 13세 이하에 가까웠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에 가까웠다. 편견을 깨고 더 재밌게 놀았다. 썰매를 타고, 4D 체험관도 즐기고 미끄럼틀도 타고 배경 좋은 곳에서 사진도 찍었다. 전통놀이 체험장도 있어서 고개를 돌리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박물관 안에도 체험장이 많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좋은 곳이다. 같이 어린이가 되어 에너지를 썼다. 나올 때 중앙에서 박 터트리기 행사를 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어쩔 때 보면 어른들이 더 신나 보였다. 아이는 핑계고.

바람이 시원해졌다. 차창 너머로 날아가는 나뭇잎이 바람을 맞고 있다. 단풍이 올 때 또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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