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같이 살았던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파트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무서운 존재이지만, 할아버지가 무섭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실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지 않다. 할아버지의 이름 석자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역임하셨다는 것만 안다. 할아버지의 삶이 어땠는지, 어떤 고민을 하며 사셨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나에게 목검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정작 제대로 써본 적도 없지만 아직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멋있는 목검이 생각난다.

대전광역시 세동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릴 적에 조금 튼튼한 나뭇가지를 붙잡고 칼싸움하는 게 주된 놀이였다. 삼국지를 좋아했고 나는 꼭 촉나라의 장군 중에 한 명이었다.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로 구성된 오호대장군 중에 한 명을 자처했다. 때로는 나와 같이 칼을 맞대는 형이나 친구가 있었지만 주로 혼자였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를 공사하기 전에는 물이 넘치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공사해서 튼튼하고 높은 다리가 나에게는 장판파 다리였다. 그 다리를 지나 시작되는 오르막길 옆에는 연필보다 얇은 잡초들이 높게 자리했다. 계란프라이 같이 생긴 개망초가 많았다. 무수히 많은 개망초는 장비가 물리친 수많은 적군이었으며, 수많은 잡초길로 들어서며 나무칼을 휘두르는 나는 유비의 어린 아들을 구하는 상산 조자룡이 되었다. 늘 길가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적을 상대하던 나에게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고 사포질로 부드럽게 만든 뭉툭한 목검을 만들어주셨다. 관우에게 청룡언월도가 있다면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주신 목검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아까워서 몇 번 들지 못했다. 지금도 귀한 물건이 생기면 아끼고 건들지 못하는 성격은 여전하다. 목검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파트에 사는 4년 동안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따스했던 할아버지가 차가워지신 걸 느꼈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셨는데 그날을 어떻게 아는지 온 가족이 집에 모였다. 성인이 된 형들을 제외한 손자들은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서 할아버지와 작별을 기다렸다. 언제쯤이었을까. 어떤 준비가 끝난 것일까. 어린 나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는 방에 가서 할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했다. 뒤섞이는 울음소리 속에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의 코와 귀를 막고 장례식장으로 모셨다. 장례식장에서는 정말 바빴다. 많은 조문객이 오셨고 밤늦게까지 머물다 가셨다. 오시는 분들께 음식을 내놓느라 쉼 없이 움직였다. 나는 모르는 집안 어르신이 "네가 오형제 막내구나" 하시면 꾸벅 인사를 했다. 침울하게 시작한 장례는 시끌벅적한 낮과 밤을 보내고 눈물 가득한 발인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나를 떠났다.

하지만 나에게는 목검이 남아 있었다. 시골집에 가면 목검이 있을 테고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을 오래오래 간직해야지. 아파트 생활을 마치고 다시 시골로 들어갔다. 그 사이 집은 공사를 했고 어린 나이에 나에게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이 생겼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목검은 찾을 수 없었다. 공사를 하며 치워버린 것이다. 더 이상 잡초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며 성취감을 느끼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그 목검이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눈물이 날 만큼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어딘가 허했다.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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