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오늘의 계획은 무엇인가. 조식을 먹는 것이다. 어제 받은 조식 쿠폰을 써야 한다. 그래서 일어났다. 그리고 옥상으로 가서 조식을 먹었다. 두 접시. 5 유로면 두 접시는 먹어야 만족한다. 7유로는 세 접시. 어제는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다른 것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한국 동행을 구했다. 유명한 식당을 간다고 해서 함께 해보기로 했다. 식사 동행을 인터넷에서 구한 것은 처음이다. 새로운 만남에 앞서서는 긴장이 되기 마련이다. 어떤 시간이 될지 알 수 없다.

조식을 먹고 방에 와서 쉬었다. 저녁 만남은 정했지만 다른 계획은 없다. 일단 씻고 라운지에 앉았다. 티켓 관련한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점심으로 파이브 가이즈를 가는 것도 정했다. 자 그럼 언제 움직일까. 그러던 중 필리핀 친구가 생겼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형이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봐서 한국 문화에 친숙했다. 오히려 나보다 더 많이 알았다. 그나저나 이번 여행에서 아무도 BTS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의외다. 출국하기 전에 BTS 공부를 하고 가야 할까 고민했는데. 안 하기를 잘했다. 결국 오후를 같이 보내기로 하고 점심은 내가 먹고 싶은 파이브 가이즈에서 먹었다. 맛은 좋다. 다만 가격이 수제버거보다 비싸다. 대신 땅콩을 무한으로 먹을 수 있다. 집에서 엄마가 삶아주던 땅콩 생각이 나서 계속 집어먹었다.

다음으로 어디를 갈까. 나는 원래 레티로 공원을 가고 싶었지만 점심으로 내가 원하는 걸 먹었으니 장소는 양보했다. 마드리드 왕궁으로 갔다.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줄도 길고 입장료도 있다. 밖에서 구경하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같이 오면 좋은 점은 남이 찍어주는 내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네이버 카페에서 동행을 구하나 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건물의 처마 밑에 숨기 전에 왕궁을 찍으려 했다. 보안요원도 비를 피하러 왔다.

레티로 공원으로 걸었다. 비가 더 온다. raining cats and dogs를 배웠다. 그런 표현이 나올 정도면 계속 걸을 수 없다. 우산도 없었다. 유명한 추로스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줄이 아주 길었다. 그런데 앉아서 드시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빨리 앉는 팁을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아주 친절하시면서도 유쾌하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좀 더 자세히 여쭤보니 '너네 여행 정말 못한다'하시며 일어나서 같이 가주셨다. 결국 우리는 주문하고 금방 앉을 수 있었다. 초코 라테가 세비야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진하다. 그렇다고 쓴 맛이 나는 것은 아니고 입 속을 코팅하는 느낌이 난다. 추로스와 뽀라스 모두 맛은 좋다. 다만 배가 부르다. 그리고 먹다 보면 설탕 뿌려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시간이 되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나는 이미 배가 불렀다. 그래도 버섯구이는 아주 맛있었다. 샹그리아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함께 식사하는 분들이 좋았다. 친절했고 착했다. 불편한 요소가 없었다. 그래서 늦게까지 함께 했나 보다. 식당은 한국 사람이 많았다. 나는 이런 곳을 알아보지 않고 다녀서 실패할 확률도 높은 만큼 재미가 있다. 다만 이런 곳에 오면 실패가 적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 많은 식당은 피하고 싶은 이상한 그 기분은 뭘까. 이런 걸 두고 홍대병이라고 부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를 터놓는 시간이 존재한다. 이름이 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요즘은 빠지지 않고 MBTI가 등장한다.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음식이 없고 다음 장소로 옮기게 된다. 와인에 문어 구이가 두 번째다. 둘 다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예전에 몰랐던 올리브의 매력을 느끼고 있다. 올리브 절임이 아주 괜찮은 반찬이자 안주다. 와인은 한 잔이면 충분하다. 각자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르고, 배운 것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자기의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듣다 보면 새로운 삶을 배운다. 외국 사람과 얘기하는 것과의 차이는 공감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정확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다 먹고 종업원이 접시를 치우면 떠나야 함을 인식한다.

또 식당으로 가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러워질 때가 되었다. 슈퍼에서 맥주와 과자를 산다. 그리고 마드리드 왕궁의 공원으로 가서 앉는다. 비가 와서 조금 젖은 바닥이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목성이 밝게 빛나고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 마치 비행기처럼 보이는 밤하늘을 이불 삼아 이야기는 깊어간다.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밤을 보내는 이의 아쉬움이며, 타지에 와서 교환학생을 하는 이의 외로움이며, 퇴사하고 여유를 즐기러 온 이의 즐거움에 나의 감정까지. 많은 것들을 나누다 보면 새벽 1시가 된다. 밤하늘의 이불을 걷어차고 각자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니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이제는 솜이불이 필요하다.

1시가 넘은 시간. 룸메이트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아무도 없다. 내가 제일 바른 청년이 되었다. 다만 낮에 사려고 계획한 칫솔과 치약을 사 오지 않아서 다시 나갔다. 마트에서 2개 사면 할인해주는 칫솔을 고르면서 같은 제품의 다른 버전으로 2개 골랐다. 할인되지 않았다. 교차할인은 안 되나 보다. 그냥 샀다. 짐이 늘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사람이 좋은 마드리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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