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뷰

체크아웃이 12시까지 가능하다. 아량 넓은 호스텔이다. 덕분에 조식을 먹고 쉬었다. 가방도 천천히 쌌다. 여유가 있다. 그리고 밤에 찾아가겠다 하고 가방을 호스텔에 맡겼다. 참 좋은 서비스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 그나저나 필리핀 친구에게 사진을 받기 위해 텔레그램을 만들었다. 만들자마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놀랐다. 누군가 가입하면 바로 알림이 온다고 한다. 신기한 시스템이다. 형에게도 연락이 왔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약속이 생겼다. 좋은 일이다.

빠에야 집을 찾았다. 처음 찾아간 집은 열지 않았다. 두 번째로 찾아간 집에 들어갔다. 한국인 커플이 있었다. 구글의 평점이 괜찮고 문 연 곳을 찾아왔는데 유명한 집인가 보다. 우선 샹그리아를 시켰다. 비주얼이 좋고 맛도 좋고 가격은 높다. 만고진리 아니겠는가. 가격이 높고 안 좋은 상품은 종종 있지만 가격이 낮고 좋은 상품은 찾을 수 없다. 결국 좋은 상품을 위해서는 응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빠에야는 만족스러웠다. 짜지 않고 해산물은 부드러웠다. 많이 뜨겁지 않아서 금방 먹을 수 있다. 혼자 먹기에 양이 딱 맞다. 숟가락은 없지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밥 먹고 있는데 아마도 공공기관에서 식당 점검을 나온 거 같았다. 여기저기 살피고 주방도 들어갔다 나왔다. 그 불편한 분위기에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색함이 직원에게서 묻어 나왔다. 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었다.

왕립식물원으로 갔다. 처음에 왔을 때 출구로 와서 결국 들어가지 않은 곳이다. 무료입장이다. 생각보다 크지만 근처에 레티로 공원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사소해 보인다. 다만 식물원답게 울창한 편이다. 곳곳에서 곡괭이나 삽을 가지고 식물원을 가꾸는 직원들이 보였다. 걷다 보니 취기가 올라왔다. 아까 그 정도의 샹그리아라면 몇 시간을 떠들고 앉아 있을 수 있는데, 밥 먹을 때 같이 끝내버렸다. 별로 걷고 싶지 않았다. 앉아 있다가 다시 걸어서 입구로 나왔다. 잠이 온다.

레티로 공원에 왔다. 저번에 미술관에서 봤지만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작품을 다시 보러 왔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제목이 맞았다. 다만 스페인어로 모를 뿐이었다. Manolo Quejido의 El Pozo라는 작품이다. 번역하면 구멍이라는 뜻이다. 미술작품은 어떻게 보는 건지 모른다. 그저 보고 나만의 느낌을 갖고 제목을 본다. 제목과 그 느낌이 일치하면 재미가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어디론가 계속 빠져들어가는 느낌을 갖고 제목을 보니 구멍이라니. 어딘가 우울한 그림이지만, 느낌이 일맥상통하여 기쁘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샌드위치와 아르헨티나식 군만두를 먹었다. 간단히 먹으려고 했는데 두 곳을 지나치지 못했다. 결국 식당에서 먹는 것만큼 나왔다. 나중에 젤리까지 사서 먹었으니 군것질로만 2만 원을 쓴 셈이다. 맛은 다 괜찮았다. 스페인을 떠날 때가 되니 식당에서 메뉴를 스페인식으로 읽게 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다시 간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또 축구 보러 간다. 언제 이렇게 볼 수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다른 일정을 다 포기하고 축구에 집중했다. 사막이나 오로라도 고려했지만 미뤘다. 그 미룬 것을 언제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미룬 것으로 하자. 오로라는 꼭 볼 것이니까. 사막에서는 별이 그렇게 잘 보인다고 한다. 별은 좋아하니 사막도 갈 것이다. 당장 하늘의 별은 볼 수 없으니 나는 축구에서 별들의 잔치로 불리는 챔피언스리그를 보러 또 왔다.

나는 하는 걸 더 좋아한다. 한국에서 축구 모임 소식이 들리면 나도 끼고 싶다.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축구 선수하겠다고 때를 쓸까. 물론 축구를 업으로 삼을 가능성은 내가 명문대를 가지 못한 것처럼 불가능할 거다. 그래도 초록 잔디 위에서 축구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뛰고 싶다. 답답해서 내가 뛰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도 함께하고 싶다. 아쉬운대로 관중석에서 뛰었다. 같이 응원하며 손뼉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행복했다. 돈 쓴 보람 있다.

호스텔에 돌아와서 짐을 찾았다.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랬는지 길을 엉망진창으로 갔다. 그래서 한참을 돌아갔다. 아까 본 건물을 또 보는 그런 바보 같은 행보였다. 뭐라도 먹고 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터미널이 친절하지 않다. 어디서 타는지 물어보지 않았으면 나는 엉뚱한 곳에서 기다릴 뻔했다. 이제 마드리드를 떠난다. 야간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간다. 피곤하다. 도시는 재미없지만 축구가 재미있는 이 도시를 다시 올 거다. 엘 클라시코를 보기 위해.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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