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집에서 일어나니 전날의 막걸리가 머리를 채운 기분이었다. 어지럽거나 아프지 않지만 몸이 굼뜬 느낌이다. 어머님께서 콩나물국을 끓여놓고 가셨다. 덕분에 완벽한 해장을 했다. 천천히 씻고 외출 준비를 했다. 집은 안락했다. 베란다에 곶감이 걸려있었다. 다 익으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겠지만 나에게는 기분 좋은 풍습이다. 내가 곶감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집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집은 어떤 곳일까. 나에게는 낯선 고향집. 나만의 집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신촌에 케리어를 맡겨 두고 안곡으로 갔다. 5년 만에 만나는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결같다.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어도 변함없이 있어줘서 고마웠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며 그런 생각이 든다. 다들 그대로 있구나. 우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천하보쌈을 들어가서 보쌈 정식을 시켰는데 김치와 보쌈의 조합이 완벽했다. 2시가 다 되어갔는데도 어르신들로 식당은 가득했다.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말을 거시며 오늘 경기를 2대 1로 이길 거라고 예상하고 계셨다. 아쉽게 되었다.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공기가 맑지 않았지만 온도와 바람이 딱 좋았다. 파워 J인 동생을 따라다녔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는 만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니 좋았다. 종로구 휘겸재에 열린 발베니 메이커스 전시에 갔다. 만드는 과정과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좋았고 안에 전시된 작품들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휘겸재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마음을 녹였다. 따스한 해가 들이치는 한옥은 아름다웠다. 덕분에 발베니라는 위스키를 배웠다.

나와서 걸었다. 창덕궁이 잘 보이는 카페인 회화나무에 갔다. 같은 건물에 2층과 3층이 다른 카페이다. 그래서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원두를 고를 수 있으며 핸드드립 커피를 제공한다. 맛이 집에서 먹는 것과 유사해서 좋았다. 직원분들이 친절했으며, 작은 쿠키를 같이 주니 입가심에 적절했다. 뷰도 좋다. 역사가 담긴 고궁을 보며 우리의 과거를 떠올렸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던가. 그때 어디를 갔던가.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그때 만난 사람들은 잘 지내는가.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산책하며 광화문을 지났다. 오늘 밤에는 우리나라와 우루과이의 월드컵 경기가 있다. 거리응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격려하기 위함인지 총리가 나왔다. 가까이서 실물을 봤다. 겨울에 하는 월드컵이라 거리응원하기에 조금 춥겠지만 그래도 열정만큼은 뜨겁겠구나 싶었다. 밤에 응원하러 나온다는 동생은 유심히 관찰했다. 경기가 재밌었으니 즐거웠으리라.

덕수궁으로 갔다. 입장료는 천 원이다. 사람이 많지 않고 아늑하다. 건물마다 분위기가 다른 매력이 있다. 오디오 가이드도 있는데 우리말은 배우 유인나 씨가 내레이션을 한다. 배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간다. 가이드를 듣고 걸으면 지루해진다. 각자 추측을 하며 걸으면 상상력이 자극받는다. 정확한 역사를 안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둘 다 모르니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신촌으로 넘어왔다. 10년 지기 친구와 감자탕을 먹었다. 술을 마셨다. 참 신기한 것은 이 친구를 만나면 감자탕 집을 자주 갔다.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싶다. 각자 사는 얘기를 한다. 늘 느끼지만 회사생활을 참 잘하는구나 싶다.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선배도 많고 인간관계를 잘 맺고 다니는 친구가 신기했다. 나는 나만의 방식을 택했다. 많지 않은 사람들과 개별적으로 관계 맺기를 좋아한다. 아무리 많아도 5명을 넘어가면 공기가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관계 맺기를 잘 못한다고 느꼈다. 나의 특성을 알고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가 숙소를 예약했다. 먹을 것을 사 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월드컵 경기를 봤다. 기대 이상의 경기력으로 재밌게 봤다. 경기를 마치고 빨간 얼굴과 부른 배를 천천히 뉘었다. 친구는 내일 출근을 한다. 더 붙잡고 놀 수 없다. 이미 놀만큼 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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