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에 고등학교 동창 결혼식을 다녀왔다. 제법 멋진 행사였다. 흥겨운 결혼식이라서 보기 좋았다. 그 친구를 닮은 시간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늘 유쾌했다. 그런 에너지가 참 좋았다. 오랜만에 반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하다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저녁인데 아직 밝았다. 그래도 외출로 지쳤고 개운하게 씻고 누웠다. 갑자기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올라올래? 일주일 전부터 만나자고 했으면 부담스러워서 피했을 텐데 이런 즉흥적인 제안은 참지 못한다. 마치 가지 않는다고 하면 중요한 승부에서 진 기분마저 든다. 결국 나는 질 수 없었고 짐을 쌌다. 간다. 올라온 길을 내려간다.

밤 11시가 되어 친구를 만났다. 바람이 시원했다. 청바지 위에 입은 긴팔티. 온도에 적합한 옷차림이었다. 약간의 옷이 들어 있어서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백팩도 좋았다. 여의도공원을 지나서 한강공원을 걸었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도 있고, 돗자리를 깔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사람도 많았다. 주황빛 조명이 길을 비춘다. 높은 건물들이 나를 감싸는데 무섭다기보다는 안전하다는 기분이 든다. 낮의 서울과 밤의 서울은 참 다르다. 물길이 많아서 산책하기 좋은 도시다. 63 빌딩을 찍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집 밑에 있는 맥주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고 들어갔다. 그 사이에 이사를 해서 누군가를 재워주기에 적합한 구조를 갖춘 집이었다. 덕분에 쾌적하게 잘 수 있었다. 어느덧 새벽 3시였다. 알람은 끄고 자자.

어릴 적에 식품회사 다니는 친척이 있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집에 맛있는 과자가 많았고 라면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학교에 와서 삼촌이 집에 와서 라면과 과자를 한 박스 씩 주고 갔다는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가 있었다. 명절이 지나면 그 자랑을 지나치는 법이 없었지만, 그 자랑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그런 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생겼고 덕분에 처음 보는 라면으로 해장을 했다. 어디를 갈지 모르지만 일단 나가자.

미국에서 최고의 버거상을 수상한 집이 한국에 들어왔다고 해서 성수로 갔다. Bored&Hungry. 배고플 때 들어갔는데 맛은 지루하지 않았다. 여러 찬사를 낼만한 맛이었다. 누군가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하면 이곳을 꼭 추천할 거다. 새우버거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은 차원이 달랐다. 감자튀김과 옥수수도 맛있어서 떠나기 아쉬웠다. 오래 기억하려고 스티커를 받아서 핸드폰에 붙였다. 핸드폰 뒷면을 차지하는 스티커가 가능한 한 빨리 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성수에는 팝업스토어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짜파게티 팝업, 투게더 팝업, 유쏘풀 팝업, 선양 팝업, 진로 팝업 등 온갖 브랜드 팝업이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주말에 이걸 즐긴다는 건 착오였다. 대기가 300팀이나 되는 곳도 있어서 제대로 즐긴 것은 농협투자증권에서 운영하는 N2, Night이라는 공간이었다. 야외에 누워서 쉴 수 있는 곳을 준비해 뒀고 안으로 들어가면 안락한 공간에서 개인별로 체질검사를 하고 그에 맞는 차와 간식을 제공해 줬다. 과연 이 공간을 통해서 기업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봤지만 모르겠다. 밤에는 경제나 인문학 강의를 주최한다고 하니 또 오고 싶어졌다. 농협이라는 곳이 어른들에게 친숙하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성분들이 열심히 안내하고 서비스를 제공해 주셨다. 저분들은 어디서 섭외할지도 궁금했다.

팝업을 돌다가 지쳤다. 기다려도 오늘 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다른 친구들을 같이 보기 위해 용산으로 넘어갔다. 나는 피로를 풀기 위해 카페인이 필요했고 날씨가 좋으니 루프탑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더할 나위 없었다. 곳곳에 녹색 나무가 생그러 움을 더했고 높은 건물들과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는 현대미를 더했으며 이 넓은 공간을 흐르는 시원한 바람이 모든 것을 완성시켰다. 멀리는 남산타워가 보였다. 여유롭다는 말이 절로 나왔고 마치 휴가로 멀리 온 기분이었다. 어젯밤에 출발해서 이런 여유를 누리고 있자니 색달랐다.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달콤하면서 쫀득한 휘낭시에가 있었으니 아쉬울 게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네 명이 되었다. 나는 내려가는 기차를 구하기 위해 수시로 핸드폰을 켰다. 결국 하나를 구하고 마음 편하게 즐겼다. 약 1년 만에 모였고 술을 마셨다. 셋은 직장을 다니고 하나는 사업 준비를 하다가 취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다 나보다 어리지만 그래서 그런지 유치한 재미가 있다. 높아지는 목소리만큼이나 즐겁지만 또 그만큼 금방 피곤해진다. 능력 있는 친구들이지만 각각이 마주한 삶의 어려움을 함부로 재단할 수도 없다. 좋은 직장에 출근하면서 열심히 일하지만 밤마다 혼자 술을 기울이는 이 청년의 고달픔을 보고 내가 쉽게 충고하기 어렵다. 그의 자유분방함이 어쩌면 삶이 어려워서 잠깐이라도 탈피하고자 욕구는 아닐까. 나와 다른 가치관이 있다고 굳이 거리를 둘 필요도 없다. 이런 관계 속에서 서로의 가치관을 넘나들지 않으면 그만이다.

매일 만나고 어울린다면 근묵자흑을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한때 동고동락하던 사이가 오래간만에 모여 회포를 푼다는데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덕분에 세상의 변화도 체감을 하고 사람들이 사는 얘기도 접한다. 평소에 내가 만나던 사람들만 만나면 터널 안에서 운전하는 것과 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나는 안전하지만, 내가 보는 것은 저 멀리 출구에서 들어오는 작은 빛에 불과하다. 종종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자면 출구가 끝나고 다음 출구 사이에 볼 수 있는 다른 풍경이다. 어차피 나는 내 갈길을 가지만 계속 터널 안에만 있자면 답답하고 내가 어디쯤 왔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혼자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매일같이 어울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내가 왔다고 반갑다고 맞이해 주고 웃고 떠들다 보면 그 자체로 즐거울 뿐이다.

집에 간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고 걷는다. 출근은 싫지만, 즉흥적으로 떠난 주말이 제법 만족스럽다. 4월이 가고 5월이 온다. 올해도 3분의 1이 지났다. 친구가 서울로 이직하라고 자꾸 옆구리를 찔렀지만, 여행으로 가기 딱 좋다. 멀리 가지 않고 이직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산속의 시원한 공기를 맞는다.

부산에 왔다. 부산에 여행 온다는 게 참 이상하기도 하다. 그래도 여행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기로 했다. 익숙한 역사를 빠져나와 친구들이 있는 풋살장으로 택시를 타고 왔다. 기사님한테 충청도 스타일로 독촉했다. "기사님 도착시간이 언제로 나와요?", 친구들은 "쪼매 급한데 빨리 좀 가입시더"라고 해야 된다고 했지만. 대학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말투로 놀림과 관심을 받았다. 신입생 때 대전에서 온 나와, 강원도에서 온 친구는 좋은 타깃이었다. 둘이 동지애를 가지고 친해진 것일까. 비바람을 맞으면서 축구를 해도 즐거웠다. 운동하고 먹는 치킨과 맥주는 또 감탄이 나왔다. 친구 집에 가서 씻고 누워서 축구 다큐를 보면서 떠들다가 잤다. 내일은 돼지국밥을 먹자. 대전에는 소국밥 집만 많아서 돼지국밥이 먹고 싶었다.

토요일은 혼자 자기로 했다. 해운대에 있는 토요코인에 짐을 맡기고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시립미술관을 가보자. 부산에 오래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마침 시립미술관은 공사중이라 전시를 하지 않고, 이우환공간만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들어가면 오디오 안내를 QR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어폰으로 가이드를 따라서 작품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철판과 돌로 여러 작품을 만들어 놓았는데 현대미술이란 참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중간에 이우환 작가 다큐를 다 봤다. 혼자 왔으니 여유가 많았다. 다음 공간으로 가서 회화를 봤다. 천장이 뚫려 있어 자연광이 들어온 공간에 도화지에 찍힌 굵은 점. 작가는 이를 대화라는 제목으로 달았다. 묘했다. 웅장하기도 하고 여리기도 한 것이 나도 이 세상에 한 점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 한 점 흔적을 남기는 존재가 될 수는 있을까. 작품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좌우대칭이 완벽한 그 점이 참 영롱해 보였다. 마치 고양이 눈을 보고 있으면 빠져들 거 같은 깊은 공간감이 도화지 위에 그려진 점을 보면서 느꼈다.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1974, 캔버스에 석채, 194×259㎝

단연 좋았던 것은 선으로부터(1974) 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점과 선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그렸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 선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살면서 점점 희미해지는 그런 것보다, 살면서 점점 채워가는 그런 것. 진한 점이 색을 잃어가며 하강하는 것이 아니라, 미약한 힘이 점차 굵은 점이 되어가며 굳세게 승천하는 그림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느낌이라는 것을 작품을 보며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시간 넘는 관람을 마쳤다. 하늘에는 해가 쨍쨍했고,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혼자 있으니 참 조용하구나.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그림과 오랜 대화를 했나.

숙소가 4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한데, 1시간 정도가 남았다. 해운대에 있는 스누피 플레이스로 갔다. 조금은 색다른 카페에 가고 싶었다. 입구부터 스누피가 있고 안에는 스누피 굿즈와 마들렌과 조형물이 많았다. 스누피 덕후라면 다들 오겠구나 싶었다. 나는 사실 스누피가 어디서 온 강아지인지도 모른다. 그냥 캐릭터이겠거니. 2.5층에 올라가서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문득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떠난 유럽이 생각났다. 그때 참 좋았는데.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추억을 많이 쌓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일상에 치이다 보니 그랬던 시간이 까마득해졌다.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추억을 쌓아도 쉽게 잊히는데 왜 사람 간에 쌓은 기억은 이리도 강한지. 엉킨 실을 풀기 위해 손으로 이리저리 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끊을 가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나 보다.

숙소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달렸다. 30분 동안  6킬로를 달리고 싶었지만 어제 두 시간 동안 축구를 한 탓인지 다리통증이 힘겨웠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훑었다. 동백섬도 지났고, 누리마루APEC하우스도 구경했다. 안에는 달리 볼 게 없는데 1층으로 나오면 있는 해안가가 참 좋았다. 지금까지 동백섬 전망대에서만 내려다봤는데, 밑에서 보니 검은 바위를 치는 파도를 느낄 수 있었다. 이어폰 사이로 들어오는 파도소리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뺐다. 시원하다.

샤워를 하고 친구가 대접하는 오마카세를 먹었다. 예약하기 힘든 곳이라던데 정말이지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좌석 간 공간이 넓어서 좋았고 사장님이 필요한 설명만 해주셔서 좋았다. 1시간 30분 정도의 식사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배도 아주 부르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음식을 자주 먹으려면 얼마나 벌어야 할까. 식사를 대접해 준 친구에게 다시금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같이 아는 선배를 만나서 술을 기울였다. 1시가 넘는 시간. 서로가 하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서야 헤어졌다.

토요코인 호텔은 처음 써봤다. 일본 체인 호텔답게 화장실에서 일본 숙소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공간에 낭비가 없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구성하였다. 샤워호스 길이도 딱 알맞았다. 정갈했다. 조식은 다 먹을 수 있지만 그만큼 사람이 붐볐고 음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도 빵에 잼과 버터를 발라서 커피와 먹었다. 체크아웃이 10시라는 게 참 아쉬웠다. 그래도 잠을 더 자기 위해 돈을 쓰기는 아까웠다.

집들이에 가기까지 시간이 남았고 스파랜드로 갔다. 4시간 이용권을 샀다. 목욕탕도 넓고 찜질방도 넓었다. 누울 곳이 많았고 족욕장도 있었다. 유성온천에서 가볼걸 그랬다. 발이 따뜻해지니 기분이 좋았다. 찜질방의 온도는 참 신기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 미묘한 기온을 잘 유지한다. 사우나는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공간이 넓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많아지자 앉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안마의자로 몸을 풀고 릴랙스룸에 누워서 잠깐의 잠을 청했다. 요가룸에서 영상을 보며 매트필라테스를 즐겼다. 시간이 금방 지났다. 칫솔을 제외하고 씻을 때 필요한 물품을 갖추고 있는 점도 좋았다. 나가기 싫었다. 안마도 받아보고 싶었고 네일도 궁금했다. 혼자 하기에는 좀 궁상맞았고 시간이 없었다. 친구집으로 향했다.

낮술을 즐기다가. 밤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집을 떠나 집으로 왔다. 익숙한 부산을 여행자의 입장에서 즐기고 싶어서 못해본 것들을 해봤다. 이별 노래를 들으며 긴 글을 쓴다. 나는 여행기를 왜 쓸까. 하나를 시작하면 어느 순간 이게 과업이 된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기도 하지만, 한 번 놓치면 완성되지 않는다는 걱정이기도 하다. 나의 부산을 기억하고 싶어서 쓴 여행기였다. 광안리해수욕장, 부산시민공원 등을 다녀와서 적던 나들이 후기가 쌓여서 유럽여행기도 썼고 국내여행기도 많이 남겼다. 나는 참 잘 까먹는다. 근데 가끔 내 글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 내 감정이 궁금해서. 내가 뭘 했는지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이별을 토로하는 시간. 친구들은 놀리기 바빴다. 부산에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또 대전에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늘 생각한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늘 내가 부족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주를 채울 듯한 감정이 모레보다 작아져서 헤어지게 하면서 왜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못할까. 그러면서 왜 또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가. 이사를 가는 것처럼. 예전에 살던 집을 가면 그때의 생활이 감정이 떠오르는 것. 결국 때가 되면 이사를 가야 하지만, 어느 하나 잊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역사이기 때문에. 이우환 작가의 작품 '선으로부터'처럼. 결국 진하고 강한 점은 선이 되며 흐려진다. 그리고 다시 선을 그린다. 또 희미해진다. 영속적인 과정이리라.

출장으로 간 삼척이 좋아서 이번에는 놀러 가기로 했다. 삼척이 고향인 대학교 친구 때문에 내적 친밀감이 있던 곳이라 내심 가서 제대로 관광을 즐기고 싶었다. 다만 금요일에 퇴근하고 출발하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3시간이 넘는 운전으로 녹초가 되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이번 여행기간 동안 날씨가 좋았다는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자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오느라 긴장과 피로가 몰려왔지만 그래도 알찬 주말을 보냈으니 뿌듯했다. 앞길이 희미한 관계에 작은 불씨를 더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추천해 준 막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쏠비치삼척에 있는 마마티라라는 카페를 갔다. 탁 트인 바다풍경이 속을 시원하게 했다. 그리고 동해가 확실히 물이 맑다. 애매랄드 빛 물에서부터 짙은 파랑 물까지 번지는 색감이 아름다웠다. 수평선 위의 하얀빛은 마치 신세계가 있을 듯한 느낌을 줬다.

바다를 봤으니 산으로 가자. 대금굴로 향했다. 환산굴과 같이 있으나 대금굴은 인터넷으로 사전에 예매를 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모노레일을 타고 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굴 안에서 사진촬영은 불가하다. 물굴답게 굴 안에 폭포가 있고 평균 수심 7미터의 호수가 있을 만큼 수량이 풍부했다. 쏟아지는 물의 힘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가이드를 따라서 동굴 안의 지형을 공부하는 재미도 있었다. 처음에는 추울 거라 생각했지만 경사진 굴을 걷다 보면 금세 외투를 벗고 싶어 진다. 제법 체력이 필요한 투어였다. 이 굴은 처음부터 노출된 굴이 아니다. 굴을 찾으려는 많은 노력 끝에 찾아낸 굴이다. 그래서 굴에 들어가기 위해 100미터가량의 인공터널을 만들었고 그 안으로 모노레일이 들어간다. 그 덕에 나는 장엄한 자연의 조각품을 구경했지만 어쩌면 인간의 방해가 아닌가 싶었다. 동굴 속 깊은 호수에는 석회수만 가득해서 플랑크톤이 살지 못하고 물고기도 살지 않지만 동굴 속 곤충을 먹는 도롱뇽이 산다고 한다. 만나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동굴을 보고 나오면 겨울인데도 물이 많이 흐르는 계곡을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삼척활기치유의숲에서 족욕을 하려면 4시까지 가야 했다. 주차장에서부터 10분 정도 걸어야 했다. 혹시나 늦을까 뛰었다. 발에 피로를 주고 족욕을 즐겼다. 인진쑥액, 미용소금, 아로마 오일을 넣어 발을 데우면 몸이 뜨거워진다. 불순물이 빠지며 피로가 풀린다. 어쩌면 뛰어서 극적인 효과를 맛봤는지도 모르겠다. 직원분들이 모두 친절하셨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코스로 즐기고 싶은 곳이었다.

강원종합박물관으로 향했다. 사립 박물관이다. 누가 이런 진귀한 물건들을 이렇게 한데 모았을지 궁금해진다. 건물 외형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곳이라고 느껴서 찾아보니 대순진리회인 대진교육재단에서 설립한 박물관이었다. 고생대 화석부터 귀한 도기, 예술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종교물품도 전시되어 있다. 종유석 터널도 마련되어 있다. 어떤 콘셉트로 이곳에 모여있나 싶은 의문이 든다. 넘쳐나는 유물을 놓을 데가 없어서 다닥다닥 붙여서 전시했다고 느꼈다. 오히려 전시공간을 늘리고 콘셉트를 명확히 하면 좋은 전시공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공룡 AR체험 공간이 있고 공룡 관련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각자 자료조사하고 각자 발표자료를 하나의 파일로 만든 느낌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이 창조되었다. 대금굴이나 환산굴 가면서 들를만하다.

저녁을 먹고 삼척중앙시장을 들렀다. 2일과 7일에 오일장이 서지만 늦은 시간에 가서 문 연 가게가 잘 없었다. 시장 2층에 노브랜드샵이 있었고 이를 둘러싸고 여러 식당들이 자리했다. 처음에는 이게 왜 상생 스토어인가 했지만, 사람들이 노브랜드샵을 찾아오니 그 주변에 식당가를 마련할 수 있도록 배치한 모양이다. 전국에 규모가 조금 있다는 시장에는 있는 청년몰 가운데 합리적으로 짜놓은 공간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번 주 운동 횟수가 부족해서 삼척 해수욕장을 달렸다. 총 6km. 발로 뛰면 생각보다 빠르다. 내가 있던 곳의 가로등이 희미해지고 살짝 번지는 순간은 금방 온다. 뭐든 그렇지 않을까. 힘든 일도 조금만 지나면 아픔의 농도는 옅어지는 법이니까.

삼척을 즐겼으니 대관령으로 가자. 당장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니 눈도 다 녹을 테다. 결국 오늘이 이번 겨울 눈썰매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대관령 눈꽃마을 눈썰매장은 주말에 온라인 예매는 매진세례다. 결국 취소표 하나로는 부족해서 오픈런을 했다. 대관령은 정말 눈이 많이 오는구나. 최고기온이 10도를 넘어가는데 눈이 녹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뭉쳐서 눈사람도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걷는 게 얼마만인지. 눈썰매도 재밌었지만 썰매가 지나가는 경로의 얼음이 녹으면서 속도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재밌었다. 2시간 동안 7번을 탔다.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곤했다. 강원도를 떠나기 전에 기력 보충 차원에서 감자빵과 감자떡을 먹었다. 이만하면 됐다. 집에 가야지.

비가 쏟아지고 차선도 잘 보이지 않았다. 차가 너무 막혀서 졸음이 몰려와 잠시 쉬기도 했다. 그래도 풍부했던 주말을 보내서 좋았다. 자꾸 어지러워지는 마음이 갈피를 못 잡은 건 마찬가지다. 시작 버튼을 누르는 여행도 있는가 하면 끝을 미루기 위한 여행도 있다. 언젠가는 끝을 맺는 여행도 오려나. 내 마음이 동해바다처럼 투명하고 맑은 하늘이면 좋겠다. 화창한 주말이 가고 회색 구름이 나를 가린다.

원래 내일로를 가려고 했다. 10년 전에 같이 내일로 기차여행을 떠났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고생하는 여행을 하자며 꼬셨다. 하지만 최근에 지점을 옮겨서 바빠 휴가를 쓸 수 없다고 했고 서울 근처에서 놀기로 했다.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자체가 좋았다. 1년이 넘게 보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각자의 삶이 바빠서 연락은 하지 않더라도 둘의 사정을 잘 아는 존재.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지만 같이 있는 게 불편하지 않은 사람. 삶의 가치관도 달라서 사는 방식도 달라졌지만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살아가다가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주말을 보냈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서울에서 후배와 함께 셋이서 고기를 먹었다. 용산에서 유명한 고깃집을 가려고 했는데 대기가 너무 길이서 옆에 있는 식당으로 옮겼다. 이마저도 딱 한자리 밖에 없었다. 그동안 못 들었던 각자의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자리를 옮겨서 이태원에서 나에게 과한 술을 마시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새벽 3시가 넘었을까. 이제는 피곤하다. 자러 가자.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날이 맑았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시덥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다 보면 을왕리에 금방 도착했다. 어디 가서 늦은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유명한 곳을 가니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답만 들었다. 결국 계획에 없던 쌈밥을 먹었다. 먹다가 을왕리에 있는 아주 유명한 쌈밥집의 분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만족도가 높아졌다. 제대로 한 끼를 채웠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라는 게 이리도 약한 존재일까 싶었다. 나의 미각은 그저 식당의 유명세에 좌우되는 갈대에 불과하다니. 내 마음도 그러하니 내 모든 감각이 그러한 것일까.

근처에 큰 카페가 있어서 찾아갔다. 높은 곳에 자리해서 테라스에서 뻥 뚫린 경치를 볼 수 있었지만 건물 때문에 바다가 온전히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높은 곳에 카페를 지어서 그런지 커피가 하나에 7,500원이나 했다. 빵도 맛에 비해 비쌌다. 아무래도 카페까지 재료를 가지고 오는 운반비에서 많은 돈을 지출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건물을 비싸게 지어서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음식값이 비싸야만 하겠지. 그래도 자리가 좋았다. 큰 통창이 주는 개방감 값인가 보다. 친구가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나와 이성에 대한 취향은 참 달랐다. 친구 사이에는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흔하게  쓰이는 소재가 우리 사이에는 없었다.

숙소로 가서 누웠다. 어젯밤에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몸이 지쳐있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숙소가 해수욕장과 멀어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길이 어렵다며 구시렁구시렁 하셨다. 처음에 우리를 찾아오실 때부터 가는 길까지 그러셨다. 마치 승객이 잘못했다는 듯이 가스라이팅을 해서 기분이 언짢았다. 내가 건넨 친절이 불평으로 돌아올 때 사람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인사는 그래도 다정하게 하고 내렸다. 내 모토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친절하자. 날씨는 친절하지 않았다. 바람이 살을 스치는 종이처럼 따가웠다. 해수욕장 모레 위를 얇은 모포 같은 것으로 덮고 있었다. 모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모래가 날리지 않아서 그나마 덜 따가웠다. 해수욕장 위에서는 폭죽을 터트리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게 많다. 지켜지지 않는 법규. 폭죽은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는 불법이고, 을왕리 해수욕장도 불법이지만 많은 가게에서 폭죽을 팔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폭죽에 불을 붙이고 그 튀는 불꽃 파편에 웃고 떠들었다. 행복하자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지켜지지 않을 규칙을 만들어 놓은 게 잘못일까. 그렇다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찰 수 있는 도덕적인 시민인가. 도덕적인 시민만이 타인의 잘못에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적어도 그래야 설득력을 가지긴 할 테다.

많은 식당의 종업원이 앞으로 나와 손님을 끌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으셨고, 나와 친구를 "아들~ 아들~" 하고 부르셨다. 호객 행위에 느끼는 묘한 불편함은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괜히 가고 싶어지지 않다. 그렇다고 해수욕장 앞의 횟집에서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 곳이 없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더 좋은 방향을 두고도 내가 안 하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에 나도 같은 게임에 빠지고 만다. 더 큰 목소리로 외치고, 더 재치 있는 말을 꺼내며 사람을 부른다. 결국 유명한 트로트 가수를 닮았다는 말을 들으며 가게 들어갔다. 이 식당에 방문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싶었다. 각자의 주량에 따라 술을 마시고 뜨거운 매운탕에 혀를 데고 나오니 조금 추위가 가셨다. 지나가다 사격장에서 사격을 겨루고 숙소에서 먹을 간식을 사들고 소화를 시키며 걸었다. 무슨 이렇게 먼 곳에 숙소를 잡았냐는 푸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는 걸었다. 그 잔소리가 오히려 나를 즐겁게 했다.

밤에 잠에 들지 않았다.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가 되지 않았다. 소화가 될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이제는 잡념에 사로잡혔다. 새벽 6시가 되었을까.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나를 괴롭혔는지 모르겠다. 유익한 생각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스쳐간 모든 인연들이 생각나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난밤의 진한 술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 미래가 걱정되고 나의 인생을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지금의 나를 나는 만족하는가. 내가 원하는 변화는 무엇인가. 진짜 이루고 싶은 게 있기는 할까. 어느 하나 소화하지 못하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단순히 숙취라고 할 수는 없다. 어지러워진 생각을 한 데 묶어 던지고 싶었지만 달리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씩 잊어가다 보니 잠에 들었다. 고단함 밤이었다.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다. 그렇게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50분가량 기다려야 했다. 근처에 카페가 있어서 찾아갔다. 밖은 성당 같이 생겼는데 안에는 정말 영험한 곳이었다. 최근에 가본 장소 중에 단연 압도적이었다. 물론 사람이 많고 북적였지만 이 공간이 주는 느낌은 참 좋았다. 스테인글라스 빛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올라가는 계단을 둘러싼 거울이 빛을 더 화려하게 만들었다. 다음에 을왕리를 온다면 여기를 와야겠다. 뒤편에는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지만 카페를 이용해야 입장할 수 있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고 막국수를 먹었다. 서해에서 먹는 동해막국수. 동해 공기를 마시고 자란 친구가 맛집으로 인정했으니 맛집이 맞다. 배부르다. 집에 가자.

취향은 하나도 맞지 않은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를 들으며 인천을 빠져나왔다. 파란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라갔다. 일요일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지난 주말이 얼마나 행복했나. 피곤을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을 흔쾌히 동의한 친구가 고맙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즐거움도 있었지만 나를 번뇌에 빠지게 했다는 점에서 불행한 여행이기도 하다. 고민거리는 여행을 마치고 누운 일요일 밤에도 끊이지 않았고, 월요일 아침의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내다 보니 기운이 다시 났고 나의 고민거리를 머리에 담아둘 여유가 없어졌다. 다행스러웠다. 다른 회사 면접을 보고 온 동기와 오랜만에 술 없이 떠들었다. 수면 시간은 한참 부족했지만 새벽 6시 전에 일어나서 출근한 아침의 기분이 좋았다. 참. 굴곡진 감정이다. 해수욕장에서 본 폭죽처럼 한 순간의 폭발음과 함께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건 불법이니까. 해수욕장의 모래를 건드는 파도처럼 그저 때가 되면 오고 때가 되면 사라진다. 그게 자연이니까. 을왕리에서 나는 만조였고, 나는 다시 간조가 되었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놀러 간다는 건 직장인에게 축복이다. 평일에 버틸 명분을 주고 설렘을 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회식으로 두통으로 가득 찬 하루가 지나가고 급하게 짐을 싸서 출발했다. 워낙 급하게 준비한다고 뭘 빠뜨렸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지만 내가 말한 시간보다 늦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빨리 떠나야 했다. 호텔 체크인이 10시까지만 가능했다. 서두른 덕분에 중간에 기름도 넣었고 체크인도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카드키를 갖고 문을 열려고 했는데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카운터에 가서 말씀드리니 그럴 일 없을 거라고 같이 올라오셨는데 내 말이 틀리지 않아서 위층으로 방을 옮겨주셨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 누웠다. 내일 해돋이를 보러 가자.

막상 눈을 뜨니 가기 싫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에는 맑고 오후에는 흐렸다. 해넘이를 보지 못할 수 있으니 해돋이는 꼭 보러 가야겠구나. 20분을 가서 계화조류지로 갔다. 계화교로 찍고 가면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있다. 역시 정보가 중요하다. 중간에 멈춰서 봤으면 아쉬울 뻔했다.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충분히 떠서 물에 비쳐 두 개의 해가 될 때까지 40여분 서 있었다. 날이 추워도 괜찮았다. 풍경이 아름다우니 쉽사리 떠날 수 없었다. 머리 위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철새가 지나갔다. 종종 비행기도 지나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저 멀리 포클레인이 주말 아침부터 공사를 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경이로웠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며, 땀 흘려 일하는 인간의 부지런함이며, 모퉁이에 앉아있는 낚시꾼의 고독함이며, 그 순간에 느끼는 행복함까지. 오기를 잘했구나.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짧은 소원을 빌었다.

아침을 먹기 전에 격포항에 잠시 들렀다. 작은 어선이 항을 떠나고 있었다. 격포항은 방파제가 만을 감싸고 있어서 작은 문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파도가 없고 잔잔했다. 만선하시기를 바라며 근처에 영상테마파크에 갔는데 내부 공사 때문에 휴무였다. 변산명인바지락죽에 가서 아침으로 바지락죽과 바지락회무침을 먹었다. 정말 맛이 훌륭했다. 죽이 아주 진했고, 회무침도 새콤달콤한게 적당했다. 누가 변산 가서 뭐 먹어야 하냐고 물어보면 이곳을 말하리라. 여러 식당에서 백합정식을 팔고 있었지만 이 식당을 이길 수 없다고 확신한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하지만, 여기는 그만큼 맛이 좋았다.

식당 근처에 고사포야영장이 있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 야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마도 방풍림 사이에 이런 야영장을 꾸민듯 했다.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좋은 추억을 만들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방풍림을 지나서 해수욕장으로 가면 바람이 드세게 불었다. 찬 바람이 옷깃을 넘어 몸속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방풍림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분명 여길 넘어오기 전에는 추워 보이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해돋이를 본다고 부지런을 떨어서 낮잠을 자고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갔다. 늦은 시간에 출발해서 직소폭포도 가지 못했지만 국립공원답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걷기 좋았고 물이 맑았다. 상수원으로 쓰이는 내변산의 물은 겨울임에도 수량이 풍부했다. 굽이 치는 물살을 보러 여름에 온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해가 뉘엿뉘엿 지니 그늘이 졌고 갑자기 추워져서 이만 산 오르기를 포기했다. 내변산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그런지 기세를 뿜으며 높게 솟은 돌이 많았고 풍채 좋은 장군이 선 듯했다.

봄해언니네 카페에 가서 개성주악을 맛봤다. 아주 흡족했다. 쫄깃하고 달콤하면서 고려시대 임금이 먹었다는 스토리까지 완벽했다. 간척미를 써서 만들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것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기가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당을 채우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까만 돌로 이어진 해안이었다. 산을 바라볼 때는 검은 대리석을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절벽이 길게 늘어섰다. 세월이라 하기에도 긴 시간 동안 물과 돌이 부딪히며 만든 모양이겠지. 그곳에 많은 시선을 두기에는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온전한 원형을 볼 수 없었지만 해가 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보였다. 구름이 작은 틈을 허락했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같은 날에 보겠다는 우리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 하늘이 배려한 작은 선물이었다.

한 동안 서서, 한 동안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들었다. 내가 해안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파도 소리 듣는게 참 좋았다. 귀를 씻겨주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더 큰 파도가 밀려와 철썩하고 내 귀를 때렸으면 하고 바랐다. 채석강은 충분했다. 짙은 바닷물이 검은 돌을 치며 하얀 물방울을 만들었다.

내일이 출근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지난 하루가 행복했고 오늘 하루도 행복할테니. 숙소를 나와 가다가 내소사 팻말이 보여서 행선지를 바꿨다. 바람이 너무 차고 눈이 흩날려서 괜한 선택이었나 싶었지만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전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 추위가 가셨다. 내소사는 600년대에 지어졌다가 전소되어 1600년대에 다시 지어진 역사가 깊은 절이다. 절 중앙에는 10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7.5m의 폭을 자랑하며 서있다. 절 뒤에는 높은 암산이 절을 털끝이라도 건드렸다가는 벌을 주겠다는 위엄으로 서있다. 백미는 내소사의 대웅전 단청의 색이 바래 나무의 빛깔만 보이는 것이었다. 수수하면서도 단아한 매력이 좋았다.

슬지제빵소를 들르고 바로 옆에 곰소염전을 봤다. 겨울이라 그런지 염전이 검은 판으로 덮여 있었다. 알아보고 오지 않은 탓에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인터넷에서 보는 멋진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직사각형의 염전이 넓게 늘어선 모습만 볼 수 있었다. 그마저도 오래 볼 수 없었다. 이런 날씨에는 따뜻하게 안에 있는 게 좋았다. 대전으로 출발하기 전에 카페에 들러 한참 낮잠을 잤다. 여행을 마치기 전에 여독을 풀었다. 해넘이와 해돋이를 한 곳에서 해결한 변산이었다.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었다. 그 행복이 크든 작든 감사하며 겸손하기를 바란다. 퇴근하기 전에 부장님께 보고하러 들어갔는데 부장님께서 연말에 평가를 잘 줬음에 작은 생색을 내시며 올해도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를 해주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들어와서 받은 첫 평가를 우수하게 받았으니. 한동안 내 좌우명으로 삼던 말을 꺼내보자.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

요즘 대전역 뒤편에 있는 소제동에 멋진 식당과 카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갔다. 날이 춥고 우중충했지만 아무렴 데이트이기 때문에 괜찮았다. 식당도 좋고 카페도 좋았지만 추위를 피해 들어간 대전전통나래관의 콘텐츠에 감탄을 하며 나왔다.

1층에는 아이들을 위한 거지만, 어른들은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놀이들이 있었다. 대형 윷이 있어서 윷놀이를 즐길 수 있다. 옆에는 우산 꾸미기를 할 수 있고, 딱지 만들어서 딱지치기도 하고, 땅따먹기 게임을 할 수 있는 바닥도 준비되어 있으며 제기를 만들어서 제기차기도 할 수 있다. 한 가지씩 하고 있자니 동심으로 돌아간 거 같으면서 역시 철없이 노는 게 제일 재밌구나라는 걸 또 느꼈다.

3층 기획전시실에 가니 우리 동네에 신이 산다는 제목으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토속신앙 전시관이라고 봐도 된다. 예로부터 마을에서 모시던 신의 종류이며 그 특징을 설명해 준다. 이제는 소멸하고 있는 의식과 행사를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계셨고 관심이 줄어드는 만큼 이런 전시가 의미 있었다. 무엇보다도 전시를 소개하는 글이며 마치는 글의 문구가 참 마음을 건드렸다. 초입에는 "그 옛날 신들이 살았던 동네의 이야기 안에서 당신 곁에 가까이 있는 신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이 쓰여있다. 말미에는 "우리 조상들의 생에도 그러했듯이 당신의 삶에도 늘 신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신이란 뭘까. 어디에나 있지만 어느 곳에도 없다. 세계 각지에 다른 신이 있으며 그 모양이며 성격도 다르다. 존재함을 증명할 수 없기에 믿는 사람이 많고, 증명할 수 없기에 믿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어떤 신이든 우리는 한 번쯤 빌어봤다. 떠오르는 해를 보고 빌든, 하늘에 떠있는 달을 향해 빌든, 십자가를 향해 빌든, 불상을 바라보며 빌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빌든.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소원을 빌었다. 안녕과 평안을 빌었으며, 사랑을 빌었고 건강을 빌었다. 때로는 사람이 신이 되기도 한다. 내 인생을 바칠 듯 사랑하는 연인이 있기도 하고 부모가 되면 아이가 곧 신이 되기도 하는 거 같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고 한들 인생의 앞날을 알 수는 없다. 사주로 내 미래를 점치더라도 그게 정확할리 없다. 그래서 신을 찾는다. 내 인생이 이랬으면 해서. 저랬으면 해서. 로또 1등이 당첨됐으면 해서. 어쩌면 한 없이 여린 인간의 마음 때문에 생긴게 신이기도 하다. 굳세고 의심이 없었다면 무엇을 위해 신에게 의지할까. 어쩌면 한 없이 착한 인간의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바라고 바라는 마음이 이뤄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내 자녀가 건강하고 바르게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 내 부모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 내 주변을 향한 사랑이 신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녀 간에 믿는 신이 다를 수 있다. 부부 간에도 다를 수 있다. 친구 간에도 다를 수 있다. 사람 간에 다른 신을 모시고 살겠지만, 결국 우리는 내 주변의 안녕을 바라고 산다는 것은 다 똑같다. 종교로 다투고 전쟁도 하고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신의 가르침과는 멀어진 인간이 다시 한번 신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의 안녕을 비는 인간은 어쩌면 같은 신을 모시고 사는 건 아닐까. "어디에나 있고 어느 곳에도 없는."

일요일 밤이 되면 금요일 밤을 기다린다. 주말이 언제 오나. 결국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금요일 오후 퇴근시간이 되었다. 5시에 나와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용산에 내려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식당 예약시간이 제법 남았다. 일단 씻자. 금요일 밤이니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호텔 근처에 있는 분위기 좋은 양식집 카토를 골랐다. 이름석자가 적힌 테이블 옆 창문에 비친 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보리색 빛이 방을 감싸고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음식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그 공간에서 마주 보며 얘기를 나누는 순간이 따뜻했다. 겨울이 왔구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구나. 요즘은 미국에서 메리크리스마스 대신에 해피홀리데이라는 말을 더 쓴다고 한다. 유색 인종이 많아지고 종교가 다양해져서 포괄적인 용어를 쓴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크리스마스이기에 쉬는 건데 그 의미마저 퇴색시키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차츰 그 정체성을 잃어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게 뭐 중요한가. 결국 쉬는 게 중요한 거지.라고 넘기기에는 그 본질적인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나다운 것을 잃으면 나는 매력 없는 사람이 되듯이 무엇이든 본질적인 그 가치를 잃어버리면 평범 그 이상의 것을 내기 어려운 게 아닐까. 나이를 먹어가며 보수화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 세상의 많은 부조리를 깨고 이 사회를 바르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내가 그것들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는 모르겠다. 나 하나 사람구실을 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인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결국 나 하나 행실을 바르게 하자는 주의로 바뀐다. 그러다 보면 사회의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에 무덤덤해지고 번거롭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화려한 식당이 자리한 건물의 지하에 뿌리서점이라는 작은 헌책방이 있었다. 처음에는 저 커튼을 쳐도 되는 건지 궁금했다. 커튼을 치고 보이는 풍경을 두고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책이 가득한 헌책방이었다. 고급식당의 라이브 공연 소리가 바닥을 뚫고 두둥두둥 들려왔다. 마치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한 기분이었다. 아쉽게도 마음에 드는 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 가게가 오래도록 남아있으면 좋겠다. 높은 마천루와 화려한 조명이 나를 옥죄어 올 때, 피신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호텔에서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호텔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한다. 괜히 뿌듯하다. 적당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거리로 나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그 카페에 남자 손님은 나와 다른 테이블의 한분 밖에 없었다.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많은 카페였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더현대 서울로 갔다. 재밌는 가게들이 많아 구경거리로 가득했다. 그 가운데 제일은 크리스마스빌리지였다. 웨이팅이 아주 길었고 낮에 걸어둔 웨이팅을 저녁 먹고 들어갔다. 백화점 한가운데에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꾸며둔 것이 아이디어가 좋았다. 다만 하나의 사진명소에 불과해서 아쉬웠다. 작은 상점이 여럿 있었지만 사람들은 오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갔고 각각이 좋은 사진 건지기에 바빴다. 상점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시각적으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욕구를 충족했다. 유럽에서 갔던 여러 크리스마스 마켓이 떠올랐다. 언젠가 또 가야겠다. 자연스러운 장터가 주는 매력은 어마어마했다. 생동감이 있었으며 크리스마스를 오감으로 느끼는 장소였다. 여러 음식이 즐비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며 찬 공기와 함께 고소한 향기가 코로 들어왔다.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옷과 목도리로 온몸을 감싸고 늘어선 빨간 천막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게 곧 크리스마스다. 그렇게 따지고 나니 이곳도 성공적이구나. 잘 꾸며낸 공간이구나. 메리크리스마스.

한참을 기다려서 파이브가이즈 햄버거를 먹었다. 모든 야채와 소스를 넣는 것은 과했다. 양이 아주 많아서 감자튀김을 즐기기 어려웠다. 시그니쳐인 땅콩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마드리드에서 혼자 여행할 때 먹은 파이브가이즈의 그 충격으로 기대하며 왔는데 아쉬웠다. 인간은 참 희소성에 약하다. 파이브가이즈가 여러 곳에 있는 마드리드에서는 사림아 아무도 없는 지점도 있었다. 그 평범한 것이 한국에 들어오니 문전성시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특별한 것으로 대접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햄버거 체인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인간은 이렇게도 새로운 것에 약하다. 익숙한 것에 무관심하다. 결국 맛보고 나면 뭐 특별할 거 없네. 하고 지나치기 마련이지만. 그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래 만난 연인을 떠나는 것이나, 오래된 친구에게 소홀해지는 것이나, 늘 함께한 가족에게 무관심한 것들도 새로 마주하는 것들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아끼고 지켜야 하는 게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결국 잃어버린다. 반대로 지키기에만 급급해서 결국 곪아버리는 관계도 있고 수많은 상처로 뒤덮이기도 하니 정답은 모르겠다. 파이브가이즈에 간다면 에브리씽 말고 올더웨이를 선택하는 건 정답이다.

호텔로 돌아왔다. 피곤했다. 뭐가 아쉬웠는지 모르겠지만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당신의 눈물을 보았다. 내가 서운하게 하였구나. 참고 참아온 당신이 털어놓은 속상함에 나는 등을 토닥였다. 내가 더 신경 쓰고 잘하겠다는 말로 눈물을 담았다. 밤하늘에 별은 빛나고 있었겠지만, 어두운 방 안에서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물방울만 뺨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연인 간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안다. 무엇보다 긴 시간 동안 무던히 삭혀왔던 그 마음이 안타까웠다. 참 착한 그대에게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 굳세게 닫혀 있는 문을 열어주고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준 그대에게 내가 조금은 차가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같이 맞이하는 겨울이기에 더 따뜻하겠노라 다짐한다.

마지막 날에는 안국으로 갔다. 피자가게에 웨이팅을 걸고 런던베이글뮤지엄에 웨이팅을 걸어두고 점심을 먹었다. 웨이팅이 없는 것이 어느 하나도 없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것을 해보려면 감내해야겠지. 계동 배렴 가옥을 들렀다. 'ㅁ'자형 한옥은 수묵화가 배렴 선생이 거쳐간 공간으로서 배렴선생의 작품을 책자로나마 구경할 수 있었다. 지금은 미술인의 작업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서울교육박물관을 들렀다. 독립운동가 김호선생의 특별전이 마련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천도복숭아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 백만장자가 된 김호선생의 일대기를 알 수 있었다. 지나가다가 작은 갤러리도 구경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서울에 사는 것도 참 매력 있겠구나 싶었다. 볼거리가 많고 문화생활의 폭이 넓다. 지방에 살면서 서울에 있는 여러 콘텐츠를 누리려면 숙소부터 구하니 비용이 상승하는데 서울에 살면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서울에 집을 구해서 살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블루보틀에서 커피를 마셨다. 자리가 많지 않았지만 큰 창 너머를 바라보는 좋은 자리였다. 커피도 괜찮았다. 떠들었다. 시간이 금방이었다. 서울에 와서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떠날 시간이었다. 이렇게 주말도 끝나갔다. 차츰차츰 기울어지는 해가 아쉬웠다. 238분의 대기 끝에 런던베이글뮤지엄에 들어갔다. 배가 불러서 포장으로 바꿨다. 핫하다고 해서 구매해 봤는데 특별한 것은 모르겠다. 내가 베이글을 제대로 먹어본 게 처음이라 비교군이 없다. 다른 베이글을 먹고는 다시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것을 경험해 봤다는 만족감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서 짐을 찾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다. 풍성했던 주말이 지나갔다. 우리 다음에는 어디 갈까.

이왕 부산을 가는 김에 친구들과 풋살을 했다. 축구 동아리 친구들과 공을 차는 것은 손에 꼽을 만큼 확실한 즐거움을 주는 오락이다. 군대에 가면서 동아리에 나가지 못했고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했다. 안 지도 10년이 되었다. 플랩풋볼을 통해서 혼자 참여할 수도 있고 적은 인원으로도 참여해서 축구를 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시스템이다. 공을 차고 목욕탕에 가서 다 같이 몸을 녹이고 저녁을 먹고 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하루가 참 짧았다. 몰려오는 졸음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함께 했겠지. 아니다.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 일찍 들어가야 하므로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테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각 단계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관계성은 다 다르다. 그게 참 신기하다. 집안의 모든 것을 알고  시골 동네의 불편함을 다 알고 공감하는 초등학교 친구, 어느 하나 불편한 점이 없고 언제 봐도 어색하지 않으며 어떤 이야기도 스스럼없는 중학교 친구,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하면서 진득하게 시간을 나눠서 진한 관계를 가진 고등학교 친구, 성인이 되어 만나서 집 안에 수저가 몇 개인지 알지 못하지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대학교 친구. 모두가 귀하다. 결국 인생을 살다 보면 이제는 줄어드는 경우만 남았지만 나에게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가능한 오래 함께하기를.

전날의 피로를 충분히 풀고 일어났다. 대전에서 하는 LCK Summer 결승을 보고 싶어서 인터파크에 들어갔는데 실패했다. 분한 마음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롤드컵 티켓을 판매하는 것을 보고 홧김에 결제까지 했다. 그리고 친구를 꼬셨다. 사실 꼬실 틈도 없었다.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으니. 하지만 둘다 준비성은 없었다. 경기장 앞에 갔는데 제대로 된 매장이 없었다. 이런저런 기념품이 사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작게 준비했을까.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롯데백화점에서 T1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기 시작 전까지는 2시간이나 남았을까. 일단 모르겠다. 가보자. 지금 아니면 언제 가겠나. 택시를 타고 갔다. 팝업스토어 앞에 가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기가 200명이 넘었다. 경품은 이미 마감이었다. 허탈했지만 그 순간이 즐거웠다. 오늘도 이렇게 멍청비용으로 왕복 택시비를 썼지만 유쾌했다. 이 즐거움도 돈을 썼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경기장에 들어가니 자리가 좋았다. 앞에 자리가 없어서 왕래가 편했다. 그리고 시야도 충분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와서 주위에 사람이 없었지만 이내 사람이 꽉찼다. 좋아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참 어렵지 않다. 시간도 빨리 갔다. 꽉 찬 관중의 열광적인 함성 속에서 선수들이 나오고 경기를 펼쳤다. 웅장한 사운드와 커다란 화면을 보며 다 같이 응원하고 반응하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쾌락이 제법 컸다. 축구 경기를 직관하면 티브이로 보는 것과 그 시야가 다르고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느끼는 만족이 있지만 e스포츠는 직관이 크게 의미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완전히 틀렸다. 정말 즐거웠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가고 싶어졌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전혀 모르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배워서 이제는 나 혼자 찾아다니다니. 이렇게 거금을 써가며. 인생은 참 알 수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가며 마주한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롤드컵이 끝났고, T1은 우승을 했으며 페이커는 네번째 롤드컵 우승을 했다. 거대한 서사가 완성되었다. 그 일부분을 내가 직접 목격했다는 점이 좋다. 경기를 마치고 친구와 치맥을 즐기며 떠들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내일 출근이라는 사실이 기분 나쁘지 않은 일요일 밤이었다.

올해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면 K리그 직관이다. 이번 경기를 기준으로 다섯 경기 정도 본 것 같다. 개막전부터 시작해서 회사 동기 중에 직관을 좋아하는 형이 있어서 같이 다니나 보니 원정까지 가게 되었다. 이전에 부산에서 한두 번 정도 본 기억이 있고, 유럽 여행을 하며 여러 경기를 봤는데 대전에 와서 내 고향의 팀을 응원하니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K리그의 인기가 높아져서 대전의 경우 평균 관중이 1만 명이 넘어서 그런지 분위기도 좋다. 주말에 스트레스 풀기에 알맞은 취미가 되었다. 좌석 가격도 영화보다 싸니 2시간 동안 늘 새로운 영화를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응원한다.

경기는 2대0으로 질듯 하다가 막판에 2대 2로 비기며 대전 팬으로서 열광의 도가니였다. 수원의 자극적인 응원 문구에 대전 팬들이 응수하였고 경기가 더 흥미진진해졌다. 그 찰나에 따라가는 골을 넣으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고 결국 동점까지 이르렀을 때는 마치 대회 우승이라도 하듯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수원은 축구의 역사가 제법 깊은 곳이다. 박지성 선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는 축구 박물관이 있어서 이런저런 구경거리가 있고 아이들을 위한 체험관도 있어서 후회 없는 원정이었다.

오가는 기차 안에서 책을 읽고, 경기장을 오갈 때는 수다를 떨고, 경기장에서는 소리를 지른다. 하루가 가득 찬 기분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챗바퀴같은 일상 속에서 나만의 기쁨을 찾는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변수라는 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직장에서 축구 동호회에서 몸을 움직이고, 주말에는 동기들과 축구를 보러 다니며 무료할 수 있는 일주일에 변주를 주고 있다.

금요일에 서울 출장을 마치고 바로 대구로 갔다. 확실히 서울에 비해서 날이 포근했다. 얼마만의 대구인가. 그때는 막창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납작만두도 먹었던 거 같다. 이제는 조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구 출신 동기에게 추천받은 생고기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사장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이번 주말에 쉰다는 공지를 해 놓으셨다.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근처에 다른 생고기 집으로 갔다. 평소에 정말 궁금했던 뭉티기를 먹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날 것의 음식을 덜 좋아하게 되었다. 회를 제외하고. 요즘은 생굴도 잘 먹지 않는다. 생고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맥주가 없이는 고기를 넘기기 까다로웠다. 동기는 자기가 추천해 준 집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모텔은 연박으로 예약을 하면 대실 비용을 추가로 받는다. 아마도 주말에 대실장사를 못하기 때문에 그런거 같다. 그래서 점점 호텔을 찾게 된다. 연락 예약 시 눈치 보이지도 않고, 중간에 청소도 해준다. 돈은 쓰고자 하면 점점 많이 쓰게 된다.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데 나이 듦에 따라 생기는 씀씀이의 변화가 조금 걱정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어른들의 말에 틀린 게 없다. 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다. 숙소는 작았지만 아늑하고 좋았다.

밤에 잠이 들기 전이었다.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오늘 서울에서 대구로 왔는데, 다시 서울로 가야할까요. 고모부를 뵌 지는 언제일까요. 20년은 넘었을 거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집안 어르신의 조문이었다. 하지만 가야지. 나에게 귀한 사촌누나와 사촌형들을 위해서. 벌써 잠이 든 짝꿍이 모르게 옷을 입고 외출준비를 했다.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나는 터미널로 갔다.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아직은 불이 꺼져있는 장례식장. 상주가 깰 때까지 기다렸다. 7년 만에 사촌누나를 만났다. 홍콩에서 나를 반겨준 누님을 서울에서 만났다. 이런 자리에서. 오기를 잘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사촌형 1은 어느새 결혼을 하였고, 형수님을 처음 뵀다. 일본분이셔서 말은 통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아는 일본어를 자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일본학생들과 교류프로그램을 하며 배웠던, 여학생들에게 친절한 남자가 되기 위해 자주 써먹었던 '쿠루마가 키데루요'. 장례식장에 웃음이 피었다. 삶에서 배운 것들은 이런 시답잖은 농담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어릴 적 나에게는 공포이기도 했던 사촌형2가 잠에서 깼다. 내가 어른이 될수록 형은 공감이 되고, 안쓰러움을 느끼는 대상이 되었다. 세상을 떠돌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던 형은 발걸음을 멈추고 집의 포근함에 갇혀 지낸다. 내가 좋아하는 누님과 형님들을 보았고, 내가 위로가 되고자 했지만 나는 위로를 얻었다. 혈육이라는 게 대단한 건가 싶다가도, 멀어지려야 멀어질 수 없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대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대구로 내려가야 하는 순간에도 나는 어느 하나 후회하지 않았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것들의 연속이다. 나중에 사촌누나는 주말을 앞두고 떠나시며 사촌들을 다 모아 주신 것이 큰 고모부의 마지막 선물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카페에서 서로 이름은 모르지만 닉네임을 아는 맘카페 회원들이 다녀갔고,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길을 떠나는 가족이 담소를 나누다 떠났고, 노신사가 카페 아르바이트생을 당황시켰다가 갔고, 나는 외국에서 온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대구로 가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곤한 나는 동기가 추천한 콩국을 먹으러 갔다. 이리도 좋은 음식이 왜 대구에만 있단 말인가. 따뜻한 콩물에 쫄깃한 찹쌀빵을 먹으니 행복해졌다. 기운을 내서 꽃 구경을 갔다. 금호꽃섬에는 댑싸리가 멀리 퍼져 눈을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분홍 코스모스와 노란 코스모스가 각자의 구역을 갖고 세를 과시했다. 그 사이로 갈대가 제3 국으로서 중심을 잡고 있다. 하나의 섬 위에 여러 꽃이 영토를 갖고 있으며 걸을 때마다 보이는 새로운 풍경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왜 꽃을 좋아하게 될까. 원초적이면서 무해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세월에 낀 때를 씻는 건 아닐까.

수성못으로 갔다. 예전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다. 1년 뒤에 전해지는 우편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편지는 각자의 집으로 전달되는 식이었다. 연애편지를 부모님께 들킨 첫 사례였다. 아버지가 편지가 왔다면 사진을 찍어서 메일로 주신 것 같다. 굳이 그렇게 해주실 필요는 없었을텐데. 수성못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곧 숨으려고 몸을 숙이는 해가 연못의 물을 찬란하게 비췄다. 버스킹을 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좋아서, 그 노랫말이 좋아서 천 원을 놓아드렸다. 지역별 특산물을 판매하는 행사가 열려있었다. 영호남 통합을 위한 행사였다. 시끄러운 행사를 뒤로하고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물빛을 담은 짝을 바라본다. 나의 피로를 이길 힘이 생긴다. 여행을 하면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한다. 그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상대가 고마움을 느끼고 나는 보람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중에 하나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서문시장으로 갔다. 갈비찜은 아주 오래된 식당에서 팔았고 식기에 그 세월이 보였지만 그게 맛을 더하는 곳이었다. 9시부터 야시장을 시작했다. 어디서 나타난지 모를 가판대가 줄지어 세워졌다. 그리고 불빛이 시장거리를 밝혔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기다렸다. 그중에 줄이 없는 탕후루를 먹었다. 탕후루는 참 정이 가지 않는 음식이다.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하며 사과 탕후루를 먹은 적이 있다. 마치 백설공주가 먹었을 독이 담긴 사과처럼 새빨갰다. 늘 그렇듯 특별한 맛은 없고 내 치아에 죄를 짓는 기분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의 행복한 표정이 아닐까.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다면 우리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혼자 자면 많이 뒤척이지만 옆에 누군가 있으면 푹 잔다. 대신 같이 자는 이의 숙면을 방해한다. 상대에게는 애석하지만 나에게는 행복한 일이다. 피곤했던 나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푹 잤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이월드로 향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으며 가운데 타워가 있어서 특별한 분위기를 냈다. 곳곳에 핼러윈 기분을 낸 호박모양의 장식들이 가득했다. 날은 따뜻했고 바람은 적었다. 놀기에 아주 적절한 날씨였다. 사람은 아주 붐비지 않았고 놀이기구는 20분 이내로 기다렸다. 그리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도 있어서 자주 오고 싶어졌다. 대전에 있는 오월드도 이월드만큼 하면 좋겠다. 이십 년째 같은 놀이기구만 운영하는 오월드가 야속했다. 간식으로 콜팝을 사 먹었는데 늘 아쉬움을 일으키는 메뉴다. 보기에는 이보다 완벽한 음식이 없는데, 사서 먹으면 만족할 수 없는 양과 맛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놀이기구가 많고 놀 것들이 널려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일 출근이 기다리고 있다. 기차시간에 쫓기듯 나왔다. 시간이 날 쫓아냈으니 다음에 또 오기로 결심했다.

대전에 와서 치킨을 먹고 집으로 왔다. 기차를 이렇게 자주, 많이 탄 적이 없다. 그래도 좋았다. 적당히 추웠고, 적당히 피곤했으며, 적당한 여운이 남았다. 모든 것이 뜨겁던 스물셋의 대구는 모든 것이 적당한 서른의 대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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