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먹은 밤에는 잠을 못 잔다.

알코올이 뒤집은 내장은
소화를 미뤄 속이 혼탁하다.
술기운이 뒤적인 과거에
정신마저 혼미해져 뒤척인다.

내 인생에 남은 숙취는 지나간
사랑 같은 뭐 그런 건가.
어지러운 머리인가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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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거야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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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크게 다투셨다. 큰 이모와 큰 이모부가 밤에 오셨고 엄마가 떠났다. 엄마는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슬펐지만 마음속으로는 떠나는 엄마를 응원했다. 힘이 약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며 방에 웅크리고 있는데 아버지는 문을 벌컥 여시고 따라갈 거냐고 물어보셨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은 흉측한 마귀 같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공포의 존재가 되었다.

차츰차츰 두 분이 다시 같이 살기로 마음먹으시면서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 갔다. 마당이 넓고 집 뒤에는 산이 있어 활동 반경이 넓었던 시골과는 달리 아파트에서는 11층 우리 집이 나의 놀이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를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친해진 것일까. 아니면 그간에 소원해진 가족관계를 돌려보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인지 모르겠다. 요즘 생각하면 나름 노력을 하신 거 같다.

아버지가 무서웠지만 나는 아버지와 노는 시간이 좋은 어린이기도 했다. 한 번은 같이 서점을 갔다. 책을 골라보라고 하셨고 나는 그리스로마신화 만화 1권을 골랐다. 아프로디테가 아름답게 등장하는 신이 눈에 선명하다. 아버지와 함께 서점을 간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리스로마신화 2권을 사달라 하지 못했고 1권만 계속 돌려봤다. 내가 조금은 더 컸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새벽예배를 가시는데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사순절에 아버지를 따라 새벽예배를 갔다. 한 번은 새벽 예배를 마치고 나와서 교회 근처에 있는 콩나물해장국 집에서 밥을 먹었다. 아버지와 단 둘이 한 처음이자 마지막 외식이다. 내가 조금은 더 컸을까. 주말 낮에  아파트 앞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로 야구 글러브와 테니스 공을 들고 갔다. 아버지와 캐치볼을 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던지는 공이 번번이 아버지가 잡기 어려운 곳으로 날라 갔지만 싫은 티를 내지 않으셨다. 날씨도 좋았다.

그렇게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시간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시골로 들어갔고 고등학생이 되어 아버지 방에서 혼날 때가 아니면 둘만의 시간은 없었다. 취업을 하고 집에서 내 짐을 가지고 나오며 단둘이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제는 좋은 말로 헤어질까 싶었다. 어김없이 상처만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시를 써서 장관상을 받기도 했고 중학교에 진학하여 전교 1등을 하며 내가 모두의 기대를 받던 때가 있었다. 나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는 컸나 보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밤에 공부하다가 자꾸 내려와서 냉장고를 뒤적이는 내 모습을 보며 의구심을 품으셨다. 결국 원하는 수준의 대학도 아니었거니와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하지도 않았고 한없이 꿈이 작아진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집에서 짐을 찾아가는 나에게 그때 작은 행동들에서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나를 잘못 봤다고 하셨다. 그렇다. 어릴 적 기대와 달리 나는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릇이 작은 실망스러운 아들이 되었다.

20대 초반까지 있던 아버지와의 유대감은 점차 사라져서 이제는 정말 정서적으로 독립한 것은 아닐까 싶다. 이게 당신의 목표이셨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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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걸었다. 썰물이 되어 펼쳐진 단단한 바닥 위에 의미 없는 글을 써봤다.
'고래는 어디로 갈까.'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은 내 눈높이보다 높았다. 내가 잠긴 듯했다.
동기들의 축하를 받으며 케이크의 초를 불었다. 서른 번째 날숨이다.
어제는 다른 이가 날숨을 내쉬었고. 내일은 다른 이가 내쉬겠지.
정이 많아서 그 정을 떼는 게 너무 힘겹다. 사람에게 많은 정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가족한테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삶에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축구선수를, 경찰관을, 경영인을, 천문학자를, 대통령을, 사무관을, 사랑을 꿈꾸던 하루가 쌓여 서른이 되었다.
나에게 꿈이란 무엇일까. 조금 나은 회사를 간다고 꿈이 이뤄지는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 무지개가 검다고 하면 검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살다 보니 무지개는 결코 검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일곱 가지 색이 선명하지 않으면 시시하다.
쌍무지개도 있고, 흩날리는 물방울에 맺히는 무지개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랗고 투명한 배경에 작은 구름이 뭉개 뭉개 떠있는 하늘을 가르는 무지개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마르고 딱딱한 바닥을 밀물처럼 밀려 적시는 것.
모래사장에 만들어 놓은 모래성과 새겨진 글씨를 파도로 지우는 것.
선명하던 무지개가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보이게 하는 독.
서른 번째 생일이다. 낭만은 없고, 세상에 권태와 불만만 늘어가는 한숨으로 초를 끄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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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가고 있다.
사랑했었다.
보고 싶다.
그립다.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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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만족할 줄 모르는 습성은 어디서 왔는지
먼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을 반추하는 나
문득 떠나고 싶어 비행기표를 알아보지만
비싼 가격을 무턱대고 낼 결심이 서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행동거지에 늘 어색한 구석이 있다.
남을 의식해서 그런가
나를 의심해서 그런가

피부과에서 돈을 쓰면 부자가 된 기분이다.
소비가 가져온 만족은 밑 빠진 독을 채우지 못한다.
나는 사람으로 행복을 얻는 부류인데,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워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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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안녕하신가요.
나는 안녕히 지내요.

추억하자면 끝도 없지만
미워하자면 끝이 있네요.

그대만 알고 살던 때가
종종 그리워져요.

그대가 그리운 것인지
그때가 그리운 것인지

부디 안녕하길 바라요.
우리는 돌이킬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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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인가 하여
내려앉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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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만큼 나를 위하는 사람이 있을지
그녀만큼 예쁜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그녀만큼 인성이 좋은 사람이 있을지

그녀만큼 내가 그녀를 위한 사람인지
그녀만큼 내가 외모가 뛰어난 사람인지
그녀만큼 내가 인성이 좋은 사람인지

어느 하나 균형을 이루지 못한 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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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기에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툼을 회피해도 아픔은 피할 수 없다.
심장 한쪽이 비어버린 듯이 공허하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우리 더 좋은 사랑을 했을 텐데.
네가 덜 힘든 이별을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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