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대국밥으로 해장을 하고 혼자만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오랜만에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까. 목요일부터 고민을 했던 거 같다.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회를 가볼까 하다가 좀 더 쉬운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피부과 가기와 미술관 가기를 비교했는데, 해장을 하고 나니 이미 시간이 오래되었다. 미술관을 가자. 시립미술관은 입장료가 500원이다. 부담 없이 가볼 수 있다. 특별기획전을 할 때는 입장료를 따로 받는 모양이다. 어쨌든 작품이 자주 바뀌지는 않지만 바뀔 때마다 오기로 마음먹었다.

넥스트코드2022부터 구경했다. 99년부터 시작한 청년작가지원전으로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39세 이하라고 하니 얼추 요즘 많이 언급되는 MZ세대의 창의성이 가득 담긴 것들이다. 그래서 당황스러운 작품도 있었다. 꿈보다 해몽이다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눈길을 사로잡고 마음이 당기는 것들도 있었다. 시간이 잘 갔다. 교양인 행세를 하는 재미도 있다. 그게 뭐 재미가 있겠나 싶지만, 500원으로 누리는 교양이다 싶었다.

일상의 소재를 재가공하여 재맥락화하는 작가도 있고, AI와 기술을 활용해서 영상 설치 작품을 선보인 작가도 있다.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하는데 생각보다 길어서 당황스러우면서, 각각의 시각적 효과와 음향 효과에 집중하며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나는 다 보고 나서도 요점정리에 실패했다. 현대미술은 어렵다. 느낌이 잘 다가오는 작품을 좋아하게 된다. 김소정 작가는 한지에 먹으로 일상을 그렸다. 대상을 묘사한 방식이 참 좋았다. 그리고 작가가 정한 소재도 친근해서 잘 다가왔다. 예술을 모르니 감상을 표현하는 언어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양 있는 척을 하려 해도 자본이 딸린다.

백요섭 작가의 작품은 마음을 사로잡았다. 흔적에 대한 묘사가 주제였다. 지나간 과거를 망각하면서 남긴 흔적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잔뜩 할퀸 마음의 상처가 선명했다. 거칠고 이 모난 표면이 다듬어지려면 얼마나 간 시간이 필요할까 싶었다. 내 마음도 아직까지 이렇게 까끌할까?
김형구 작가의 화풍은 신비로웠다. 마음이 편해지는 그림이었다. 내 집이 생겨서 내가 꾸밀 수 있게 된다면 한 점 걸어두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따뜻한 시선이 좋았다. 내가 일상에서 마주한 것들과 내 눈으로 담은 비슷한 풍경들을 작가는 한껏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마치 꿈속에서 마주하듯 적당히 희미하게 표현함으로써 좋은 느낌만 남긴 기억 같았다. 유명하신 분이라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기 쉽겠다 싶어서 안 찍었는데, 그래도 가장 좋았던 그림 정도는 찍어오지 않아서 아쉽다.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감상을 마무리했다. 종종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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