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주의 숙취가 몸을 지배했다. 한참을 자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분명히 계획은 개장시간에 맞춰가서 사파리부터 즐기는 거였는데, 도착하니 2시가 다되어갔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날씨가 맑기도 했다. 얼마만의 놀이공원과 동물원인가.  중학생 때 이후로 오월드는 처음이다. 어찌 그 모습이 그대로일까 싶었다. 입구에서부터 내부 건축물까지 낡았다는 느낌을 줬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논다는 자체가 신났다.

자이언트드롭을 타려고 왔다. 줄이 길었다. 왜 하나만 운영하고 다른 방향은 덮어뒀을까 의문이었지만 기다렸다. 다른 놀이기구는 줄이 더 길었다. 어릴 적에는 이 놀이기구를 탄다는 자체가 어른스러움이었고 겁 없는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내 앞에 선 초등학생들을 보며 느꼈다. 그 나이대에 보이는 모습은 똑같구나. 어린 친구들 네 명은 이 무서움을 극복하고 나서 친구들의 영웅이 되었다. 무척이나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그런 나이가 있다. 솔직함이 부끄러운 나이. 솔직의 무게를 견딜 때가 어쩌면 어른이 되는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애늙은이였고, 어른애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른이 되지 못했던거 같다. 이제는 무서움에 솔직해졌다. 자유낙하의 공포에 소리를 질러서 목이 아팠다.

범퍼카를 타기 위해 또 기다렸다. 120센치미터라는 기준을 넘지 못한 어린이가 풀이 죽은 체로 돌아섰다. 그 풀 처진 어깨가 어찌나 안타까운지. 몇 달만 뒤에 왔다면 훌쩍 넘겼을텐데. 그 아이가 맛본 좌절의 깊이는 어떠할까. 앞으로 더 많은 좌절을 맛보며 어른이 되겠지. 범퍼카는 사고를 조장한다. 요리조리 다른 차를 피하다보면 오히려 내가 그들 사이에 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부딪힌다. 노래가 더 시끄럽고 흥이 넘치면 좋겠다.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동물 구경으로 테마를 바꿨다. 사파리는 포기했다. 줄이 너무 길다. 오월드의 동물들은 생기가 넘쳤다. 퍼포먼스가 좋아서 관람하는 재미가 있었다. 운이 좋게도 동물 먹이주는 시간과 잘 맞았다. 물개가 신나서 밥을 먹었다. 하루에 10키로를 먹는다고 한다. 특히나 오징어를 좋아하는지 사육사가 오징어를 던지면 치열해진다. 물개에게도 취향은 있겠지. 어린 물개는 아직 엄마의 젖을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여유롭게 햇빛을 쬐며 잠을 청했다. 세상 부러운 자태다.

늑대 사파리에서 먹이주기가 이어졌다. 늑대가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어느 규모가 되든 이 존재들에게 충분한 영토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뛰어 놀 수 있는 크기였다. 결국 이들의 여건마저 상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내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 소득은 얼마인가라는 그 절대성을 떠나서 내가 누구보다 많이 받고 누구보다 적게 받는가에 따라 만족감이 달라진다. 끝없는 서열 매기기에서 언제쯤 자유로워질까. 이 자체로서 만족할 수 없을까. 어쩌면 그 만족은 사랑에 의해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다. 무의미한 논쟁이다. 내가 만약 일과 직장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최선이고 사회적으로 더 가치있다고 인정되는 것도 크게 의미있지 않다. 나에게는 축구라는 운동이 그런거 같다. 더 좋은 운동이라 할 수 없지만 골프나 테니스처럼 사회활동에 도움되는 운동 등을 추천받지만 나에게는 무가치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게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평생 상대적으로 판단되겠구나.

동물 구경을 마치고 바이킹을 탔다. 시시한 바이킹이었다. 약간의 오금저림을 느끼고 금방 끝났다. 그리고 이제는 추워서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오월드는 동물원이 본체다. 즉 자유이용권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동절기 할인까지 있어서 비싸지 않게 즐겼지만, 놀이공원보다는 동물 구경과 꽃 구경하러 오기에 알맞은 곳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호들갑 떠는 걸로 충분했다. 대전도 알고보면 컨텐츠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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