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친구들과 출발하는 길에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태평소 국밥을 들렀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당황했다. 그래도 기다릴만한 곳이다. 갈비탕과 소고기뭇국 사이의 어디쯤인데 칼칼함도 있어서 해장에 아주 좋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고 청양으로 떠났다. 햇살을 따뜻했으며 공기는 맑았다. 조수석에 앉아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다 보니 청양에 다다랐다.

알프스마을을 찾아가는데, 가까워질수록 도착 시간은 멀어졌다. 마른 논이 쭉 늘어선 이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본가에 가는 길이 생각나서 마냥 좋았던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알프스마을에 들어가기 위한 차가 1킬로 넘게 줄지어서 거북이처럼 가고 있어서 우리는 차를 중간에 공터에 두고 걸어가기로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는 길에 붕어빵을 사러 포장마차에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붕어빵을 주시기 전에 '드실 거죠?'라고 물어보셨다. 아주 생소한 질문이다. 아마도 포장할지 바로 먹을지를 물어보신 거겠지.


알프스마을에 가니 이보다 시끌벅적한 곳이 있을까 싶었다. 사람이 아주 많았다. 장작더미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철망이 달린 긴 장대에 밤을 넣고 굽고 있었다. 나무 타는 냄새가 정겹고 행복하게 했다. 마치 테마파크에 온 기분이었다. 주제는 눈이 와서 눈썰매를 즐길 수 있는 시골의 마을 잔치. 한쪽에서는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보자마자 즐거워졌다. 이런 낯섦은 설렌다. 하지만 얼음분수축제라는 본질을 지키기 위한 준비를 제법 해뒀다.

입장하니 눈으로 여러 조각상들을 만들어 놓았고, 얼음으로 이글루나 거대한 기둥을 만들어 두었다. 사람이 아주 많았다. 넘치는 콘텐츠 속에서 우선 눈썰매를 타기로 했다. 줄이 아주 길었지만 생각보다 차례는 금방 왔다. 조용한 청양에서 여유를 즐기려 했는데 너무 붐벼서 놀기도 전에 기운이 빠졌지만, 눈썰매를 타고 기분은 180도 바뀌었다. 너무 재밌다. 함박웃음과 함께 어릴 적에 학교 언덕에서 포대자루로 눈썰매를 타던 기억이 새록 떠올랐다.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얼음 봅슬레이라는 이름을 단 썰매도 타고, 짧은 썰매도 탔다. 더 타지 못해서 아쉽다. 한 친구는 이미 지쳐있었다.

매점에 가서 잔치국수와 컵라면을 먹었다. 알프스마을은 신기하다. 굉장히 아날로그적 요소가 가득하면서도 때때로 첨단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다. 천막 속에서 불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번호가 뜨면 찾아간다. 그리고 옆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직접 담아서 먹는다. 이 부조화가 즐겁다. 기꺼이 감내하게 된다.

더 큰 매력은 나의 힘을 쓰는데 돈을 낸다는 점이다. 인절미 만들기 체험을 위해 1만 원을 낸다. 그리고 번거롭게 힘을 주어 떡메를 쳐야 한다. 찹쌀에서 찰진 소리가 날 때까지 치다 보면 금방 떡이 완성된다. 인절미 가루를 묻히고 썰어서 통에 담으면 맛있는 간식이 생긴다. 생밤을 5천 원 내고 사서 뜨거운 장작 더미 옆에 서서 군밤이 든 긴 장대를 계속해서 흔들다 보면 노릇노릇 맛있게 익는다. 장갑을 끼고 뜨거운 걸 참아가며 껍질을 깐다. 이 수고로움을 위해 돈을 내며 즐기게 하는 매력을 가진 곳이다.

칠갑산 아래에 샬레 호텔이라는 곳에서 묵었다.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면서 이런 곳에 숙소가 있나 싶었다. 그리고 멀리서 본 외관은 영업을 하는가 싶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생각보다 근사했다. 방에 들어가니 왜 이렇게 괜찮지 싶었다. 저녁에는 야식도 직접 판매한다. 아무래도 산골짜기에 있어서 배달이 안되다 보니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시는 거 같다. 아침에는 1만 원짜리 조식도 준비해 주신다. 직접 요리하는 한식으로 준비해 주시는데, 오곡밥으로 아주 푸짐하게 먹었다. 숙소의 바닥은 뜨끈뜨끈해서 오랜만에 아주 푹 잤다. 좋은 술을 마시며 윷놀이하며 웃고 떠들다 자서 그랬을까. 행복한 밤이었다.

산의 여명이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날이 참 좋았다. 햇살이 좋아 밖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소화를 시키고 양자강이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여행을 하니 기분이 좋다. 물론 그만큼 소비를 하기도 했다. 자주 갈 수는 없지만, 때로 익숙한 장소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장소에서 반복되는 행동은 지루함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행이 좋은가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자는 뜻에서 정한 청양은 모든 것이 기대 이상이었다. 오늘 맞은 따스한 햇살을 생각해 보니, 이제 봄이 오려나보다. 춥고 시린 나의 겨울도 이만 떠나기를 바라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