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이 남아서 동네에 있는 무인 서점에서 무엇을 읽을까 고민을 하다가 집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제목에 집중하는 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장막 속에서 제목에 끌린다. 너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전화를 받는다. 기다리던 전화가 오기도 한다. 받기 싫은 업무 전화가 오기도 한다. 국제전화로 또는 모르는 번호로 보이스피싱 전화도 온다. 매주 안부를 확인하는 엄마의 전화가 온다. 약속 시간이 다되어 기다리는 나에게 어디인지 묻는 전화가 온다. 다양한 메시지를 가져오는 목소리에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당황한 역력을 드러내기도 하고, 퉁명스럽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전화의 달콤함. 헤어진 사람에게 받는 전화의 쓰라림. 많은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한번쯤은 받아봤다. 그리고 그 끝은 너무 아팠다. 당황함에 감추지 못한 나의 옅은 목소리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사이에 갈피를 잡지 못한 대답은 참으로 나를 초라하게 하거나 볼품없게 했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이런 걸까. 반면에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받는 전화는 또 어떠한가.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오히려 기쁜 마음을 가라앉히며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전화하는 순간에도 나를 가꾸고 목소리를 가다 듬는다. 기억은 파편이 되고 그 파편은 가슴에 박혀 있기도 하고, 도저히 꺼낼 수 없는 틈에 들어가 잊힌다. 그 위로 새살이 돋기도 하고, 청소하다가 틈 속에 숨은 파편에 찔리기도 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식어서 돌아서고, 망부석이 되어 바라볼 것 같던 마음도 다른 이의 시선에 녹아버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참. 그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구나. 너에게 전화가 왔다.
미지의 세계
원태연
내가 언제까지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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