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바티칸의 타임랩스 영상이 나왔다. 내가 저기를 가봤구나. 머리 깊숙이 숨어 있던 바티칸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돌로 지은 멋진 건물과 다리. 바티칸의 원형 광장에 늘어선 긴 줄. 강렬했던 조각상. 행복했던 순간이 이토록 희미해졌다는 사실이 슬프다. 나의 로마여. 나의 바티칸.
사진도 없으니 꺼져가는 바티칸의 불빛을 되살릴 초가 없다. 내 육신이 바티칸 땅을 밟아봤다는 나의 육성만이 남는다. 허풍과 다르지 않다.
더 나은 연애를 하겠노라고 스무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의 사진을 지운 적이 있다. 뒤적일 기록이 없으니 기억도 사라졌다. 나보다 어린 친구를 본다면 살아온 시간을 남겨두라고 말할 거다. 숨기고 싶은 과거일지언정 그것 또한 나이기에 남겨두라. 지나고 보니 아쉽다.
나의 스무 살을 기억하고 싶다.
나의 바티칸을 돌아보고 싶다.
나의 스무 살은 친구들이 떠드는 말로 작은 조각을 되찾는다.
나의 바티칸은 찾을 수 없다.
로마
2024. 11. 25.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