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데,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행복했던 주말이 가고 출근해서 자료를 읽고 공부한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활자를 보고 있자니 졸음이 온다. 사색에 잠기고 싶은데 어째서일까 마땅히 쓰고 싶은 글감이 없다.
나는 언어에 소질이 없다. 영어도 잘하지 못한다. 중국어도 배웠지만 기억나는 건 고등학교 중국어 시간에 배운 몇 마디뿐이다. 홍콩에 교환학생 가서 들은 중국어 수업은 나에게 단 하나의 언어적인 배움을 남기지 못했다. 한국어는 자격증 시험에서 1등을 해봤으니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마저도 2년이 지나서 이제는 무효다.
나는 잘하는 게 뭘까. 일을 하면 그래도 곧잘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정작 나는 특기가 없다.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실실 웃어넘기는 게 재주라면 나도 재주가 있긴 하다.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중학교 때 친구가 심술궂게 시비를 건 적이 있다. 내가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으니 화를 낼 때까지 옆에서 툭툭 쳤다. 언젠가. 화를 냈다. 지금 생각났다. 초등학생 이후로 친구에게 진심으로 화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이름과 얼굴마저 생각난다. 교실에서 나는 짜증을 냈고 결국 그 친구는 소원을 풀었다. 잘 지내고 있을까.
연애할 때는 왜 짜증을 낼까. 이제는 지나가는 많은 것들이 20대의 연애에서는 걸림돌이 되었다. 열린 마음으로 들었더라면, 나의 줏대가 있었더라면, 어른스러움을 지닌 성인이었더라면 어땠을까. 20대는 30대의 연애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내가 어리숙한 성인이었다는 방증이다. 그 어리숙함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몇 가지 숫자가 있다. 기념일은 시계에서 마주하면서 더 잊지 못한다. 집 비밀번호, 학번과 군번. 평소에 생각도 안 하던 군번을 예비군 훈련 가서 떠올리면 바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절대 외워지지 않는 숫자도 있다. 사주 볼 때 필요하다는 태어난 시각은 외우지 못한다. 나에게 중요한 숫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한 번 쓰고 나면 까먹는다. 학창 시절 외웠던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는 이제 생각나지 않는다. 계좌번호도 신기하게 하나만 외울 수 있고 새로 만든 주거래은행의 계좌번호는 외워지지 않는다. 예전에 쓰던 비밀번호도 이제 생각나지 않는다. 잊었다. 잊지 않았다. 내 전공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큰일이다.
나는 오늘도 두서없이 글을 끄적였다. 내 특기다.
특기
2025. 8. 5.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