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떠나고 3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몸무게는 속절없이 줄었다. 운이 좋게 취업은 했지만 마음 한쪽이 허전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생긴 여유를 누린다는 핑계를 대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 친구가 자취방에서 우울하게 과거만 회상하며 시름에 빠진 나를 부추긴 결과였다.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정한 것은 그녀와 행복한 추억을 쌓았던 독일 만하임에서 여행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다른 일정은 정하지 않았다. 정리를 하고 싶었다. 마무리를 위해서 처음으로 돌아갔다. 6년이 지나 돌아간 그곳은 변함이 없었다. 좋아했던 되너 집도 그대로였고, 기차역 앞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가까이 지나서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달라진 건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떠났다는 것뿐이라 슬펐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0대의 하루는 20대와 많이 다르다. 일상이 간단해진 만큼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빠르게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매일같이 과거를 추억했다. 가슴이 미어지는 속앓이였다. 못 마시는 술을 혼자 마시면서 1년 간 아무도 만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나의 다짐을 꾸짖었다. 나는 고집은 세지만 주변 사람의 말에 잘 동요하는 편이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보니 연애할 기회가 생겼다. 다만 깊게 만나지 못했다. 종종 20대의 연애를 돌아봤다. 여전히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연봉을 조금 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평생 한 회사에만 다니는 게 어딘가 억울하기도 했다. 조건에 맞는 곳에 이직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호기심이 생겨 만나기 시작했지만 먼 거리가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따금씩 20대의 연애를 돌아봤다. 그때처럼 불타는 사랑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흔들기도 했다. 무지개가 검다고 믿는 애정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는 건 애정이 있다는 뜻이다. 서로 힘을 합쳐 이겨내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열정뿐인 20대의 연애를 지나 어른스러운 만남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이직을 했다. 가족과 애인, 주변 사람도 중요하지만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민이 많았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생각했다. 나는 성장욕구와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금전적인 손해를 무릅쓰고 내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곳이라고 믿고 옮겼다. 선택의 결과는 먼 미래의 내가 알려주겠지. 옳은 선택은 없고, 의미 있는 선택이 되도록 하는 건 나에게 달려있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아직은 내 삶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정착해서 뿌리내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결혼도 준비가 되어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아직은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 애인이 납득해 줄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논의할 시간이 오겠지. 지금은 배우느라 바쁘고, 방해 없이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 좋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열렬히 사랑하던 그녀와 헤어진 지 꼬박 3년이 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돌아가신 부모님을 3년간 모시는 삼년상을 지냈다고 한다. 심오한 철학적 이유가 있고, 효도라고 믿으며 했겠지만, 떠난 이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지내고 보니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싶다. 떠나는 그녀를 붙잡을 능력과 됨됨이가 되지 못한 과거의 나를 탓하기도 했다. 나를 두고 떠나는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다. 경쟁자가 되어 그녀를 뺏어간 녀석을 저주하기도 했다. 사랑이 떠나고 뾰족하게 남은 감정과 추억의 돌멩이는 세월과 무심함에 깎였다. 종종 잊고 지내다 보니 반짝이는 보석이 되었다. 나의 그리운 청춘. 나의 애달픈 첫사랑. 어린 시절 저녁이 되면 집에서 풍겨오던 밥 짓는 냄새처럼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고, 그저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으로서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내 인생의 보석이 이별 후 3년이 지나서야 완성되었다.
옆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이 있다. 나는 더 아름다운 보석을 만드는 중이다. 그렇게 여러 보석을 만들어 둥글게 꿰고 나면 나의 인생이 되겠지. 내가 만난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이토록 인복이 좋을 수 없다고 믿는다. 당신이라는 우주를 마주한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행운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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