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평소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새벽인 줄 알았다. 하늘이 어둡고 달은 밝았으며 거리에 가로등이 켜져 있다. 아침으로 어제 사둔 귤을 먹고 나설 채비를 했다. 좁은 샤워실이 익숙하지 않다. 버스 시간과 무관하게 나왔다. 뭐라도 둘러보자는 마음이었다.
숙소 근처에 버스터미널이 있다.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그 위에는 넓은 공원이 있다. 버스 타러 가는 길에 있는 빵 파는 가게들을 지나기 위해 노력했다. 뭐라도 살 뻔했다. 버스 티켓은 버스에서만 살 수 있고, 카드로 가능하다. 하차할 때 카드를 찍으면 요금이 청구되는 구조이다. 내릴 때 얼마 나왔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결국 버스비가 얼마 나왔는지 모른다.
여행지를 가면서 어디를 가야겠다는 마음은 없다. 그저 그 날 내가 접수하는 정보와 나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어제 만하임을 떠나고 느낀 것은 나는 외로움을 아주 많이 탄다. 그렇다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성격도 아니다. 그저 가라앉을 뿐이다. 마요르카에 와서 자면서 든 생각은 만하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정주하기를 좋아하고 익숙한 것에서 행복을 찾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도전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나 자신은 그러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한다.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

발데모사는 해발고도 400미터에 있어서 산을 따라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버스터미널에서 203번을 타고 가면 해안 절벽을 곡예하면서 간다. 이 좁고 높은 도로를 52인승 버스가 간다는 게 신기했다. 속도도 빠르다. 기사님의 월급은 많아야 한다. 마을이 알록달록하지는 않다. 산에서 얻은 돌로 만든 듯한 여러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다. 매력적인 동네다. 가운데 수도원이 있으며 쇼팽 박물관이 있다. 12유로를 내면 타워라고 일컫는 다락방도 구경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간만 잘 맞추면 미니 피아노 공연을 볼 수 있다. 작은 강당에서 15분 정도 피아노 연주를 하는데 감동적이었다. 음악은 모르지만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기분이었다.

발데모사 관광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소예르 항구로 갔다. 버스에서 보는 수평선과 마을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소예르 항구에 내려서 바다를 찾아가는 것은 금방이다. 배들이 많이 정박해있다. 그리고 해변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을 데우고 있었다. 물결은 한없이 잔잔했다. 해는 아주 뜨거웠다.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날씨와 물이라면 물놀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선글라스가 없었다면 눈이 힘들었을만한 따가운 태양 아래 산책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물이 이렇게 잔잔한 이유는 입구가 아주 좁은 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영 주변에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여러 식당을 지나가며 메뉴판의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굶어야하나 싶을 때쯤 크레페 집을 찾았다. Beach House Port Sóller에서 하몽 크레페와 써니 스무디(오렌지, 키위, 망고, 파인애플)를 시켜서 먹었다. 크레페는 아주 맛있었다. 이 주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집이다. 치즈가 풍부하며 하몽이 감칠맛을 더하고 치즈와 하몽 외에 간을 하지 않아서 딱 좋았다. 스무디는 설탕을 넣지 않고 과일맛만 남아서 바다와 잘 어울리는 상쾌함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몸이 일광욕을 원하지 않았다. 일일 햇빛 수용량을 초과했다는 듯이 몸이 녹아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러 갔다. 하지만 2분 차이로 놓쳤고 돌아가기에는 번거로워서 그냥 버스 정류장에서 그늘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즐기며 한 시간을 기다렸다.

시내로 돌아와서 어제 밤에 봤던 마요르카 대성당을 다시 보러 왔다. 가는 길에 지도를 잘못 봤다. 그래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젤라토를 하나 사 먹었다. 아이리시 크림이라는 맛을 골랐는데 이게 무슨 맛이지. 크림은 크림인데 약간 커피맛인가 견과류 맛인가 나쁘지 않았다. 금방 녹아서 빠르게 먹었다. 대성당은 밤에도 보고 낮에도 볼 가치가 있다. 멋진 외관이 선명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9유로를 내고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드높은 실내가 있다. 견고한 기둥과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스테인리스 창문이 존경심을 자아낸다. 스테인리스 창문은 실내를 밝히기도 하지만 그 스스로를 빛내기도 한다. 여러 조각상이 있는데 그중에 가우디가 감독한 조각상이 있었다. 다른 작품과는 유별났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더 눈에 들어와서 설명을 보니 가우디였다. 바르셀로나를 가야 하나.

저녁은 마트에서 우유랑 빵을 사서 대충 먹었다. 호스텔 식당에서 대충 먹고 방에 들어왔는데 새로운 친구가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방이 꽉 찼다고 한다. 삼이라는 영국 친구가 나를 데리고 놀아줬다. 고마웠다. 어린 친구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형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밤 시간을 옥상에서 영어를 쓰며 마요르카의 좋은 날씨를 즐기며 보내게 되었다. 독일 친구도 있어서 얘기를 나눴다. 다른 룸메이트들도 와서 얘기를 나눴다. 다만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영어라도 제대로 할 줄 알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호스텔의 기분을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결국 나 스스로 탈피하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극복해내는 사람이다.
다들 언제까지 놀지 모르는 옥상 테라스를 나와서 오늘을 정리한다. 2만보를 걸었다. 밤공기는 제법 쌀쌀해졌다. 너무 많은 빛을 수용해서 에너지를 다 썼다. 그래도 사람과 소통하는 것은 불편하면서도 에너지를 준다. 신기한 동물이다. 선택적으로 외향적이고 싶은 이기적인 족속이다. 외롭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원할 때는 혼자 있고 싶어 한다.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다. 마요르카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좋은 날씨와 잔잔한 해변, 도심의 번잡함까지 갖추고 있다. 다만 나와 잘 맞는가. 나의 에너지는 얼마나 미세한가. 배터리 용량이 너무 적다. 기술이 좋아져서 배터리 용량이 커지고 있다는데 내 용량은 어떻게 키우나. 돌아가면 운동해야지 라는 의미 없는 다짐을 한다. 외로움과 번뇌로 시작했던 하루는 걸음과 햇빛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고 사람으로 채우고 빼기를 반복하여 영의 상태로 마무리한다. 남기는 것도 버리는 것도 없는 하루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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