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방이 깜깜했다. 룸메이트가 다 자고 있었고 얼마나 소음을 내도 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불도 켜지 않고 조심스럽게 세면도구를 들고 샤워장으로 간다. 준비를 마치고 역시 잠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길을 나선다. 나중에 물어보니 전혀 깨지 않았다고 한다. 보람을 느꼈다.

호스텔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전에 오늘은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벨베르 성으로 결정했다. 구글지도가 걸어서 1시간 걸린다고 알려줬다. 호기롭기 시작한 산책은 후회가 되었다. 해가 아주 뜨거웠고 지쳐갔다. 걷다보니 저 멀리 성이 보였는데 산 꼭대기에 있었다. 그 때 느꼈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마스크를 챙기지 않았다. 아침에 룸메이트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며 빠르게 나오면서 깜빡했다.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결국 계속 걸었다.

주민들이 걷기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높지 않은 산이다. 다만 찌를듯이 뜨거운 태양을 흡수하면서 가기 어려웠다. 정상에 오르니 경치가 좋았다. 성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4유로가 필요하다. 내고 입장을 했다. 혼자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시간관리가 자유로워서 여러 설명문을 충분히 읽을 수 있고 그 공간을 느끼기 좋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등산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으로 활자를 읽기 어려웠고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 성 위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고 잠시 쉬웠다가 곧장 내려왔다.

숙소까지 걷다보니 힘이 부족했다. 식사 시간이 되기도 하여 지나가다가 INDACO라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타파스를 판다고 해서 앉았는데 직원이 오늘의 메뉴를 추천했고 아란치니와 스파게티, 맥주를 달라고 했다. 맥주는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식당에 앉아서 주변 식당들을 보니 모두 오늘의 메뉴를 적어 놓았다. 메인 메뉴와 전식 그리고 음료를 제공하는 식이다. 점심 정도는 오늘의 메뉴를 먹어서 하루 열량을 공급해주는게 여행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낮술이 위험한 점은 더위와 갈증으로 벌컥벌컥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술을 못하는데 더위에 지쳐 벌컥 마시다 보니 집에 돌아갈 때 두통에 시달렸다. 식사는 맛있었지만 한 끼에 이렇게 많은 스파게티를 먹은 적은 없다. 나에게는 과한 양이었지만 2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 아깝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그나저나 내가 혼자 밥 먹는 것을 어떻게 알고 파리가 자꾸 겸상을 하려 했다. 끈질긴 노력을 막지 못해 결국 빵 한 조각을 내줘야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낮잠을 잤다. 지끈한 머리와 힘이 없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다리가 강력히 주장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룸메이트가 들어와서 잠이 깼다. 두통이 심했지만 다음 일정은 마요르카에 온 이유이므로 몸을 일으켰다. 버스를 타고 RCD마요르카 경기장으로 갔다.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뭐하는 곳인가 보니 나중에 선수들이 탑승한 버스가 들어왔다. 기념으로 마요르카 셔츠를 하나 샀다. 응원할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너무 일찍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국에서 야구장을 갈 때처럼 밖에서 과자 같은 군것질 거리를 사오는게 좋은 방법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큰 마트가 있으니 들르기를 추천한다.

이강인 선수가 선발로 뛰었다. 물론 경기는 지고 이강인 선수가 늦지 않게 교체되면서 흥미는 덜했지만 분위기가 놀라웠다. 주말에 열리는 지역 잔치처럼 온 가족이 와서 보기 좋기도 했고, 팬들은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격분하기도 하고 즐거워 하며 그들의 주말을 축구라는 이벤트로 가득 채웠다. 돌아가는 길은 사람이 워낙 많고 곳곳에 경찰들이 교통안내를 하면서 통제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트에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사서 호스텔로 돌아갔다.
호스텔에 돌아와 룸메이트들과 테라스에서 얘기를 나눴다. 부족한 영어로 대화를 따라가느라 힘들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얘기를 나눌 때 담배 피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서 담배 연기가 가장 힘들었다. 더 놀고 싶은 사람들은 떠나고 영국 친구와 방에 둘이 남아서 자기 전에 선물을 줬다. 출국날에 사온 휴대용 사진 인화기로 인화했고 만족했다. 한 번도 못 쓰고 귀국하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그렇게 2만보를 훌쩍 넘긴 오늘 하루도 끝이 났다. 내일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나는 새벽까지 고민을 하다가 정했다. 나폴리. 이전부터 고려했지만 우물쭈물하다가 비행기 값이 두 배가 되었다. 즉흥적인 여행은 즐겁지만 돈이 많이 든다. 여행 방식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팔마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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