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리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이 역시 없다. 어떤 경우에 하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유럽 간의 이동이어서 그런가 싶다. 내려서 공항버스를 타고 나폴리 중앙역에 내리면 지하철로 어디든 갈 수 있다. 나폴리의 특이한 점은 지하철을 탈 때 꼭 매표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매표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매표하는 시간까지 고려하여 미리 가야 한다. 처음에는 가능한 빠르게 숙소로 가고 싶었다. 이미 비행기가 연착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서두르지 말기로 했다. 어차피 괜찮을 거다.

숙소에 와서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아주 근사했다. 두꺼운 철문을 지나고 모든 출입은 손목에 차는 팔찌로 했다. 동네는 빨래 걸어둔 테라스로 가득 찬 사람 사는 냄새나는 곳이었다. 나는 짐을 두고 나폴리 경기장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탔는데 한국사람이 내 눈앞에 서있었다. 인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새로운 동행이 생겼다. 안 그래도 나폴리에 처음 왔을 때 마요르카와 다소 다른, 어두운 감성에 조금은 무서움을 느꼈다. 그래서 동행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나폴리 경기장은 그들의 전설이자 축구의 전설 마라도나를 이름에 새겼다. 마라도나 경기장은 정말 컸다. 내 입구는 정 반대편이어서 10분가량 걸어야 했고 줄도 길게 섰다. 입장표에 적힌 이름과 여권의 이름을 대조하고 들여보내 준다. 마요르카 경기장에서 내 자리를 잘 찾지 못했던 것을 교훈 삼아서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 주변에는 귀여운 어린이들이 있는 가족 팬들이 함께 있었다. 넉살 좋은 아저씨와 어린이들이 친절했다. 덕분에 즐겁게 경기를 관람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축구 문화가 놀라웠다. 이렇게 큰 구장을 가득 매운 팬들과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응원가가 감동적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팬 서포터스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덕분에 그들의 문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하프타임에 과자를 나눠준 아저씨와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함께 응원한 애들이 고마웠다.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우리나라가 왜 과거에 차범근,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등 한 명의 스타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지 알 거 같다. 해외에 나오니 그들이 주는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다. 대화거리가 생기고 나에게 우호적으로 대할 만한 소재가 생긴다는 점이다. 오늘은 손흥민과 김민재로 체감했다. 다만 담배 냄새가 힘들다 못해 적응되었다.

경기를 마치고 한국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3대 2로 경기를 이긴 그 뜨거운 밤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요 며칠 한국 사람을 아예 만나지 못한 나의 외로움을 위해서도 동행하고 싶었다. 지하철을 내려서 식사를 같이 했다. 생선구이가 맛이 좋았다. 5유로짜리 마르게리따 피자도 훌륭했다. 파스타는 칼국수 면처럼 두껍고 나에게는 많이 짰다. 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내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던 그 나이이기도 했다. 제대 후에 한 푼 한 푼 아껴가며 친구와 여행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여 밥을 사주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좋은 룸메이트들을 만나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나폴리를 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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