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나 설레는 이른 아침에 울리는 도마 소리에 기분이 좋았다. 따뜻한 음식이 기다린다는 것만큼 기쁜 것이 많지 않다.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아침 식사였다. 요리는 말할 것도 없고 빵도 맛있어서 결국 한 그릇 더 먹었다. 좋은 호스텔이다.

속옷 세탁이 밀려 있어서 세탁을 맡겼다. 다음 스케줄을 생각할 겸 왠지 세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 같은 생각에 샤워를 마치고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룸메이트 친구가 주방에 다른 친구들 있다고 가자해서 따라갔다. 그렇게 오늘의 여행 그룹이 형성됐다. 미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그리고 내가 함께했다. 모두와 친구가 되는 재무분석가 미국인, 19살로 에너지가 넘치는 오스트리아인, 예술 감독을 전공한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은 하루의 대화를 통해 알아갔다.

본인들의 계획을 짜다가 나에게 함께하겠냐는 질문에 아마 진심이 아니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냥 좋다고 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순간에 내키는 대로 하는 방식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도시를 구경하지 않은 나를 위해 룸메이트가 함께해줬다. 우리가 산책하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외출을 준비했다. 그렇게 오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커피다. 카푸치노의 고장에서 먹는 카푸치노의 맛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길거리에서 파라솔 밑에 앉아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가져다주는 커피를 먹는 재미가 있다. 영화 '업'에 나오는 주인공을 닮았다. 잠시 여유를 갖고 Porto di Pozzuoli(포추올리)로 갔다. 얘기를 나누며 산책 산책 그리고 산책이었다. 다만 이탈리아에서 화장실을 쓰려면 카페를 가야 했다. 커피를 한 잔 시키고 화장실을 가는 식이다. 특히나 여행자에게는 중요하다.


한참을 걸었다. 사람이 아주 없었다. 그래서 좋기도 했지만 식당은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스트리아 친구가 식료품점에서 재료를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인가 했다. 결국 실천했다. 우여곡절 끝에 동네 작은 마트를 찾았다. 그곳에서 빵을 비롯하여 살라미, 모차렐라, 루꼴라, 가지 절임, 말린 토마토 절임, 페스토를 사서 해안가 콘크리트 위에 앉았다. 각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자유를 느꼈다. 이게 무슨 여행일까. 직접 만든 샌드위치는 맛이 좋고 파도 소리도 좋았다. 계획 없이 늦게 일어난 사람들끼리 모여 떠나서 만든 순간이 나를 가장 자유롭게 했다.

우리가 이 해안가에 온 목적은 해 질 녘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몰을 보기 위해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해가 지는 것을 지켜봤다. 조금씩 해가 내려갔다. 그 변화를 온전히 느꼈다. 초단위로 변하는 해의 크기와 주변의 빛깔을 해가 자취를 감출 때까지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안녕.

조금 더 걸어서 지하철 역을 찾았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였고 창문마저 열려 있었다. 문제는 닫히지 않았다. 터널의 먼지도 온전히 마셔가며 돌아왔다. 호스텔에 들어오기 전에 젤라토를 먹었다. 스페인에서는 한 가지 맛에 2.5유로였는데, 본고장에 오니 두 가지 맛에 2.5유로다. 스페인에서 사치를 부렸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서 오늘 함께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을 위한 사진을 인화해서 선물했다. 모두 좋아했다. 그리고 새로운 룸메이트 중 한 명인 독일 친구와 오락실 게임을 즐겼다.

'와이 낫'이 만든 여행의 맛이 풍부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새로운 곳을 가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며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남는 생각을 지우지는 못한다.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떠났고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다만 나를 채워가고 있다는 게 좋았다.

포추올리 항구 인근

그리고 깨달은 것은 언어적 문제와 별개로 나는 사람과의 소통에서 에너지를 얻다가 어느 임계점을 지나면 그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역 U자형 곡선과 같다. 이것은 내가 여행에서 겪는 언어적인 장벽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대화를 나눌 때 어느 수준을 지나면 대화를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여럿이 얘기를 하다가도 혼자가 되려고 한다. 일종의 내 에너지를 지키기 위한 자기 보호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를 굳이 바꾸려 하기보다 나를 인정하고 스스로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나를 조급하게 만들수록 나는 부족한 사람이 되고 쪼그라들게 된다. 어깨를 펴고 나를 그 자체로 인정할 때 내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자기 존중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면 내가 만드는 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나폴리에서 유명한 여행지를 가지 않았지만 많은 생각과 좋은 추억을 얻어 즐거웠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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