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먹고 남은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아침에 준비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갔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 알맞았다. 점심으로 기차역에 있는 슈퍼에서 빵을 두 개 샀다. 둘 다 맛있었고 특히 버터 크로와상은 훌륭했다. 영국이 잘하는 음식은 빵이다. 그래서 저녁에 같은 브랜드 슈퍼에서 빵을 또 사 왔다. 나는 밤을 새야 하므로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밤을 새울 수 있을지. 나는 장담할 수 없다. 어쨌든 아름다웠던 요크를 떠난다. 오기를 잘했다.

런던에 도착했다. 붐볐다. 유명한 킹스 크로스 역에 왔는데 구경할 틈이 없다. 그저 흘러가는 인파에 나를 맡겨야 할 뿐이었다. 호스텔로 왔다. 중심으로부터 떨어져있지만 지하철역은 가까웠고 주변이 조용해서 좋았다. 그리고 호스텔은 구조가 특이했다. 종종 길을 잃는다. 아무튼 내가 체크인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체크인을 해줬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방도 괜찮았다. 런던에서 거의 가장 저렴한 호스텔을 구한 것인데 이 정도라면 만족이다. 물론 평점 8점 이상만을 고집한다. 여행 중에 실패한 호스텔은 세비야 밖에 없다.

짐을 놓고 가벼운 몸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토트넘 핫스퍼의 경기장 화이트 하트 레인으로 출발했다. 환승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비를 조금 맞았지만 그 때까지는 괜찮았다. 경기장역에 내려도 비가 계속 왔다. 결국 양말이 다 젖었다. 컨디션이 급격이 안 좋아졌다. 나는 양말 젖는걸 왜 그렇게 싫어하지. 나폴리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굉장히 반가웠다. 20일 동안 각자의 여행을 즐기다가 다시 만나다니. 할 얘기가 많았다. 일단 경기장을 즐기기로 했다. 지금까지 라리가와 세리에의 경기를 봤지만, 토트넘 경기장은 특별한 면이 있었다. 문화센터라고 느껴졌다. 경기장을 입장해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고 다들 맥주를 들고 다니며 아늑한 경기장 안을 걸어 다니며 대화를 나눈다. 앉아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새로 지은 거라 그런지 달랐다. 나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가 경기장에 들어갔다. 그래서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졸음이 쏟아졌다. 양말은 젖었고 추위가 거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화면으로 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버텼다. 여행 중에 PL 경기를 더 볼 수 있다면 그랬을 것이다.

토트넘과 리버풀의 경기. 빅매치였다. 그만큼 경기도 흥미진진했다. 손흥민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특히 경기장은 6만석 규모로 관객의 함성이 울려 퍼지기 딱 좋았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와 캄프 누는 너무 거대해서 서포터스의 함성이 오히려 묻히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토트넘은 서포터스 구역에 층 구분이 없고 거대한 하나의 면을 이뤄서 소리가 퍼져나가기 좋았다. 그리고 사면에 스크린이 크게 있었다. 캄프 누는 한 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는 한 개도 없다. 경기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PL은 축구라는 운동을 넘어서서 오락의 성격을 잘 가미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인가.

경기를 마치니 6시 30분이 되었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Sunday Roast를 먹고 싶었다. 그러나 경기장 근처의 모든 펍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결국 대안으로 터키 음식을 먹기로 했다. 아주 잘 골랐다. 비쌌지만 그 값을 했다. 전식으로 내온 난은 불맛이 나서 맛이 좋았고, 식사로 시킨 Mixed Grill에 있는 모든 고기가 맛있고 질기지 않았다. 모두가 만족했다. 친구들이 나폴리에서 얻어먹어서 이번에 사주고 싶다고 했지만 그럴 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각자 결제했다. 결국 오늘 맥주를 두 잔 얻어 마시는 것으로 갈음했다.

배를 채웠으니 펍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다들 아는 노래가 나오면 떼창을 했다. '성'적인 요소는 없으며 다들 웃고 떠들며 축구를 토론하고 노래를 같이 부르는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가끔 아는 노래가 나올 때 특히 더 신이 났다. 그리고 사람이 좋았다.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든 인연이 이렇게 지속되다니.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다. 내가 나폴리를 가지 않았고 바로 마드리드로 갔더라면. 나폴리를 갔더라도 그 시간에 그 지하철을 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갖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라운지에 와서 글을 쓴다. 열심히 떠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룸메이트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불을 끄고 나왔다. 다시 들어갈 수 없다. 무엇보다도 새벽까지 잘 수 없다. 내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더라도 라운지에서 눈을 붙여야겠다. 누웠다가는 저번에 인적성 볼 때 늦은 것처럼 제 시간에 일어날 자신이 없다. 아주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오늘 새벽에 롤드컵을 다 봤다기 때문이다.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아주 흥미로웠다. 그리고 경기 시간은 나에게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일요일 오전 9시였지만 나에게는 밤 12시였다. 게임은 잘하지도 못하고 더 이상 즐기지 않으면서 경기는 보게 된다. 새로운 분야에서 팬을 하게 되는 건 특별한 기분이다.

런던에서의 하루가 저문다. 나는 아직 런던을 전혀 모른다. 오늘 밤을 잘 보내고, 내일 조금 알아보자. 거대한 도시라 아주 단편적이겠지만, 그래도 느끼고 갈 수 있도록 해보자. 다음에 다시 오고 싶은 곳인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나저나 영국은 정말 축구에 미친 나라인가. 우리나라는 연예인이 하는 콜라 광고를 첼시 선수 '마운트'가 하고 있었다. 반가웠다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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