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이 심해서 약을 사러 나가면서 혹시 모르니 온천천을 걷자 싶었다. 산책이 두통을 치료해줄지도 모르니. 장마철마다 범람하는 이 천을 걷고 있으면 범람한 내 감정을 조금은 빠르게 잠재울 수 있다.

온천천에서는 많은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다. 턱걸이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서 노래를 듣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서로가 전부인 듯 꼭 붙어서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 친구와 고민을 나누려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사람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뛰는 사람, 염세적인 태도로 아무 힘 없이 걷는 나.

온천천 산책로는 남산역쯤에서 시작해서 수영강 산책로까지 이어진다. 수달이나 오리 등 여러 야생 동물을 구경할 수 있다. 봄에는 벚꽃이 많아서 사진을 찍으러 많이 온다. 때로는 지역 행사를 열어서 포장마차가 길게 줄지어 있기도 한다. 시민들의 좋은 여가 장소가 되고 있다.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는 물에 내 스트레스와 두통을 던졌다. 바다로 흘러가 버리길. 수증기가 되어 비로 내려 돌아오겠지만 당분간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약은 사지 않고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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