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차를 적응하지 못해 새벽 3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서 하루를 고민했다. 무엇을 할까. 배는 고파졌다. 문득 친구가 맛있다고 추천한 국밥집이 떠올랐다. 식사시간에 가면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줘서 그렇다면 아침밥으로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뜨지 않은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환승해야 할 버스가 꼭 한 정거장을 먼저 지나가서 결국 다음 환승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7시 30분이 되기 전이었지만 식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고깃국의 쿰쿰한 맛이 살짝 나면서 다진 양념으로 간이 되어 있는 국물은 밥도둑이었다. 거기에 김치와 깍두기가 둘 다 맛있어서 건더기와 같이 먹으니 또 밥도둑이었다. 결국 공깃밥을 추가했고, 다른 아저씨를 따라 국물을 조금 더 주세요 했는데 처음 준 것처럼 많이 줬다. 과식을 했다.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다. 잘 되는 이유를 알고 식당을 나왔다.

수변공원으로 왔다. 기온이 적당한 저녁에 오면 사람들이 앉아서 회와 소주를 먹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곳을 아침에 오니 거치 파도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파도에서 떨어져 나온 물 입자가 퍼져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 밤에는 몰랐는데, 수변공원은 물과 아주 가까운 곳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킹 장소가 있다. 외지인들의 관광 장소가 되면서 지역주민들의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하는 이곳은 내가 원하는 수준의 소음을 넘어서 오지 않지만 그래도 정감이 있는 곳이다.

수영강을 건넜다. 광안대교의 밑바닥을 봤다.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기분이 좋았다. 달리기 하는 사람도 많았다. 강을 건너니 사람들이 횡단보도 앞에 줄지어 있었고 차가 아주 많았다. 나도 그 행렬에 끼었는데 알고 보니 근처에 있는 큰 교회에 가는 무리였다. 빠르게 피하고 싶었다. 탕자가 된 지 10년. 친구는 이제 돌아온 탕자가 될 때가 되지 않았냐 물었다. 나는 거절했다. 그 주변에 부산 유스호스텔 아르피나가 있다. 이 시설이 부산도시공사 소유라는 정보를 가끔 입수하는 데 그때마다 새롭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기억나지 않는다. 1층에 식당이 있었던 정도만 기억난다. 인생에는 한 번만 가보고 말 곳 들이 많다. 매 번 그 경험에 진심이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시간 넘게 걸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마린시티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혹시나 책을 읽을까 싶어서 챙겼다. 커피는 디카페인으로 시켰다. 맛이 없다. 무알콜 맥주나 제로 탄산처럼 숙명적인 것인가. 너무 쓰다. 그래도 목이 말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책은 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잠이 오기도 했고, 친구들과 전화기 너머로 수다를 떤다고 바빴다. 서울에서의 번개 모임이 생겨서 갈까 했지만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서 포기했다. 10분만 빨리 정해졌다면 갔을 텐데. 카페 안에 점점 사람이 많아졌다. 도망가자.

동백섬을 걸었다. 이곳은 정말 좋은 산책로다. 나무가 울창하고 길이 깨끗하다. 공기가 시원하고 맑았다. 해를 가릴 정도로 성장한 나무들로 가득 찬 공원은 필히 좋다. 시민공원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이모가 부산시민공원을 가보시고는 100년은 있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동백섬은 해운대해수욕장과 이어져있다. 그리고 돌출된 부분이 있어서 바다를 감상하기에는 더 좋다. 짧은 산책에 아주 알맞다.

동백섬 한가운데에 최치원 동상이 있다. 동백섬을 여러 번 왔지만 이곳은 처음이다. 아주 약간, 2분 정도의 등산을 하면 나오는 곳이다. 최치원을 이곳에서 모시는 이유는 '해운대'라는 이름이 그가 자신의 호를 따서 붙였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말기에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관리가 되어 승승장구하던 그는 29세에 돌아왔다. 그러나 귀국해서는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였다. 어린 나이부터 정사를 판단하고 국가를 이끌어간 과거의 사람들이 신기하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유별난 이가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구나 싶다. 동백섬에 간다면 가볼 만하다. 공중화장실이 있다.

해운대해수욕장으로 갔다. 해운대해수욕장의 멋은 평평한 모래사장을 따라 시선이 이동하다 보면 살짝 경사진 언덕이 등장하고 그 경사면을 따라 자리 잡은 낮은 건물들이 주는 운치였다. 그 시선의 흐름을 차단한 드높은 건물이 아쉽다. 물론 미래에 모든 건물이 다 높아져서 새로운 풍경을 자아낼지 모른다. 그때는 저 높고 고압적인 건물이 낡고 초라해지겠지. 광안리에 비하면 해운대는 모래사장이 길고 넓다. 오늘은 물놀이는 춥더라도 누워서 햇빛을 쬐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해운대해수욕장을 지나 미포로 가기 전에 유명한 대구탕 집이 있다.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참에 갈까 싶어서 식당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었다. 궁금해도 이 정도의 정성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바로 옆에 호랑이젤라떡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사람이 많았지만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스찰떡의 고급진 버전이다. 구운 피스타치오를 사서 먹었다. 내 앞에 있던 아저씨가 지인에게 추천한 메뉴여서 골랐다. 나와서 먹고 있으니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친구와 얘기하면서 역시 여기는 소금 우유가 제일 맛있어.라고 하셨다. 피스타치오는 맛은 좋았지만 살짝 인절미 맛이 났다. 다음에 먹는다면 나도 소금 우유가 먹고 싶어졌다. 다음 기회에.

점심을 고민하다가 평양냉면으로 정했다. 서울에서 먹은 기억이 좋았다. 부산에서도 그 맛이 날까 싶었다. 고급진 고깃집에 들어가서 냉면만 하나 시켜서 먹는다는 게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아무렴 어떤가. 오늘은 여행자 마음으로 돌아다니자 싶었으니 여행할 때처럼 해보자. 이 식당의 비용은 50%가 인건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홀 직원이 많았다. 이렇게 과하게 친절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냉면은 실망스러웠다. 면의 메밀 함량이 높아서 툭툭 끊기고 메밀의 쓴 맛이 났다. 국물은 육향이 적어 감칠맛이 부족했다. 그에 비해 같이 나오는 동치미는 감칠맛이 너무 풍부해서 동치미를 한 입 먹고 나서는 냉면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맞지 않은 냉면 한 그릇이었다. 피곤하다. 어느덧 일어난 지 12시간이 되어간다.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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