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까지 포함하면 39개월에 달하는 군생활을 마쳤다. 20대 중반의 나이는 3년 3개월이 지나서 30대를 코앞에 둔 아홉수가 되었다. 장교로 복무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때로는 선물도 살 수 있는 월급이 나왔고 혼자 사는 공간도 주어졌다. 또한 근무경력 덕분에 취업하는 행운까지 깃들었으니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인복이 넘치는 3년이었다. 나에게 좋은 어른의 본보기가 되어주시는 분들이 많았고, 나를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또한 좋은 동기들을 만나서 서로 도우며 우애를 다졌다.
민간인이 되는 그 순간은 기분이 좋았다. 설명할 수 없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다만 나는 일종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찬바람을 견뎌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배운 것들이 내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반추한다. 나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내 책임을 다했을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뜨거운 여름에 모래 바닥 위에서 땀을 흘리며 근육에 경련이 일도록 버텨낸 나의 근성은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루하루를 친절하고 성실하게 살면 기회가 온다는 것도 느꼈다.
어릴 적 나는 내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대라는 시간은 나의 평범성을 받아들이기 좋은 기회였다. 존재의 평범성, 관계의 평범성 그리고 평범의 비범성까지. 군생활이 무탈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변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나의 역할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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