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산책로

여행을 잘하는 사람의 요건 중 하나는 주차비를 어떻게 아끼는지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한 시간에 4천 원 하는 주차장에 차를 놓고 산책로를 걸었다. 먼저 장한철 생가를 갔다. 가서 안내판만 찍고 생가를 안 찍었다. 생가 안에서 장한철 스토리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산책을 시작하면 딱 좋다. 길이 좋고 바다도 예쁘다. 산책로에는 30분에 15,000원 내고 1~2명 타는 투명카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난 안 했다.

장한철은 과거를 치러 한양을 가려다가 오키나와로 배가 휩쓸렸다가 돌아와서 '표해록'을 쓴 사람이다. 나중에는 장원에 급제하여 제주에서 관리도 했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자신의 삶이 후대에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적 자산이 된다는 것은 보람차면서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인 거 같다.

이 사람은 청산도에서 여인을 만나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제주에 가족이 있어 헤어지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적었다. 어디까지 로맨스이고 어디부터 불륜인가. 당시에는 가족을 책임지러 돌아온 성실한 가장이라 평가되니까 그런 얘기를 썼겠지. 이렇게 모든 윤리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 가지의 잣대로 평가하기에 인간은 적응이 빠른 동물이다. 칸트의 정언명령이 바뀌는 시대가 생각보다 빠르게 올지도 모르겠다.

협재해수욕장

날씨가 따뜻해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해변이 크지는 않지만 물이 깨끗하고 모래도 곱다. 더운 날이라 흠뻑 빠져서 수영이라도 하고 싶었다. 배운 지 오래돼서 다 까먹었지만.

곶자왈도립공원

제주에 와서 계속 바다를 봐서 다른 풍경이 보고 싶었다. 나는 바다보다 숲이 더 좋다. 곶자왈 도립공원은 정말 좋았다. 밀림에 온 것처럼 해를 거의 가리고 새소리로 감싸 안는다. 입장료는 1,000원이다. 아깝지 않다. 다만 다음에 오면 등산화를 신고 와야겠다. 등산화를 신지 않으면 정문에서 전망대까지 가는 1코스(왕복 1.8km) 외에는 갈 수 없다. 다른 길은 울퉁붕퉁하고 뱀이 나올지도 몰라서 그런 거 같다. 다음에는 150분짜리 코스를 걸어보고 싶다.

오설록 티 뮤지엄

녹차를 좋아해서 제주에 오면 오설록에 들르고 싶었다. 기념품점과 카페가 함께 있다.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선물을 사 가면 좋은 일정이다. 오설록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도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치는 특별하지 않았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의 특별한 가게이다. 오설록도 아모레퍼시픽 창업자가 만든 것이다. 여하튼 이니스프리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체험을 할 수 있다. 엽서 만들기는 금방 끝나서 가볍게 할 만하다. 비누 만들기는 키트를 사면 직원이 설명해주는 방식이다. 아이들과 함께하기 좋아 보였다.

피곤해서 숙소에 일찍 들어왔다. 혼자 다니니 주체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가는 장점이 있다. 물론 고독한 여행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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