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하늘 아래로 내리는 햇살을 맞는다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미소가 나온다
부산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상쾌한 날씨
10년 넘게 공을 찬 친구들과 축구하며 땀을 흘린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 몸을 식힌다
선선해진 바람을 느끼며 터덜터덜 걷는다
행복은 간단하다
부산에 와서 친구를 만나면 된다

어느덧 마음의 고향이 된 도시
술 한 잔에 과거의 허물을 하염없이 벗긴다
터져 나오는 웃음과 스쳐가는 향수
청춘의 땅이자 사랑의 하늘이었다
네 축구가 어땠느니 네 연애가 어땠느니
사장님의 친절함과 어른이 된 우리의 넉살
아이스크림 소리에 택시를 타려던 친구가 뛰어온다
이 밤은 우리의 시간이구나 이곳은 우리의 잔치구나

행복은 간단하다.
부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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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듯 물기를 머금고 세차게 분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흐름에 몸이 감긴다.
나를 놓아주라. 잡은 적이 없다.
옷깃을 당겼다가 놓았다는 느낌은
거친 바람의 어깨가 밀친 충격이다.
뒤통수라도 보려니 자취를 감췄다.
태풍이냐 슬픔이냐 추억이냐 그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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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 사랑을 시작한 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에 불과하지만 세상이 창조된 날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생일도 그렇다. 생명은 이미 태어났고 그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365일이 지날 때마다 기념한다. 연인이 된 지 100일이 되고 1000일이 되면 99일이나 999일과 물리적으로 노화되었다는 것 외에 변화하지 않았지만 10의 제곱수를 경건하게 받아들인다.

헤어짐도 그렇다. 때가 되면 치르는 제사도 헤어짐을 위한 기념일이다. 연인이 헤어지고 얼마가 지나야 잊는다는 개인의 규범도 자신의 도덕적 가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윤리적 고집은 무가치하기도 하지만 사회의 질을 높이는 좋은 기질이다. 상대를 향한 배려, 나를 위한 쉼처럼 여러 기능을 한다.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기보다 의미를 찾기 나름이다.

오랜 사랑 뒤에는 헤어짐이 벅차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것을 새 사랑이 뒤엎어 적신다. 모든 사랑은 사라질 수 없다. 기억해야 할 기념일이 초기화되며 다른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시간은 선형이 아니다. 흩어진 사건들이 보내는 진동이 때때로 다가와 추억할 뿐이다. 옛사랑은 이따금씩 잔잔하게 신호를 보내지만, 나를 가슴 뛰게 하는 눈앞의 사랑은 매일같이 크나큰 진폭으로 두드린다.

해가 저문다. 오늘의 해가 마지막 빛을 발한다. 한 달 전의 밤. 2년 전의 눈물. 5년 전의 더위. 10년 전의 배. 살아 있었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날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한다. 시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연애, 이별, 군입대, 여행처럼 내가 기억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의미 있을 뿐이다. 감각을 느끼고 상념을 쌓아가면 경험한 것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희미해지겠지만, 돌고 돌아 다시 그 자리에 있을 테니. 아주 가끔 허리를 펴고 밤하늘을 뒤져 찾는 나만의 별자리가 만들어진다. 나의 의미를 새긴다. 이 또한 팽창하는 우주를 따라 멀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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