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가 목적이 있는 삶이라는 기독교 서적을 읽어보라고 주신 적이 있다. 흥미가 생기지 않아 읽지 않았다. 좋은 삶을 살고 싶은데, 그럴듯한 인생을 살다 가고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조금 달라졌을까.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푸른 뱀의 해, 을사년에는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고민을 한다.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안 그래도 부족한 영어 실력이 점점 퇴화되고 있다. 일기를 써야겠다. 일기를 남겼다면 좋았을 시간이 있는데, 기록하지 않아서 아쉽다.

얼마 전에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난 조카를 만났다. 소파에 누워있는 그 아이의 눈망울을 보니 참 행복했다. 투명하고 맑은 그 눈빛에 몸이 녹았다. 나의 작은 몸짓에 휘어진 눈가와 터져 나오는 어색한 웃음이 이토록 아름다울까. 원인을 알 수 없는 울음을 그쳐보겠다고 아이를 안았다. 금세 잦아든 소리와 함께 내 품에 안기어 창문 밖을 바라보는 이 생명체가 어찌나 사랑스럽던가. 언제가부터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는데, 이 녀석을 보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내 피붙이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단 말인가. 무럭무럭 빨리 크면 좋겠다. 어릴 때 형들이 내게 장난을 쳤듯, 나도 너에게 장난을 치고 싶다.

공부를 해야겠다. 학위도 더 이어가고 싶지만 아직 그럴 연차가 아니니, 외부에 교육도 받으러 다니고 책도 읽으며 변화를 따라가야겠다. 업무와 관련된 서적도 읽으며 나란 사람의 역량을 키워야겠다. 채용 업무를 하다가 기획 업무를 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맡은 일을 제 때 실수 없이 처리하는 것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문제점을 파악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과는 제법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사무실에서 글이 써지지 않아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겠다. 사무실에서 접하는 정보만으로는 나의 한계를 높이기 어렵다. 그래서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공부를 하는구나 싶다.

관리를 해야겠다. 사회인이 된 이후로 피부과에도 돈을 쓰고 운동도 꾸준하다면 꾸준히, 게으르다면 게으르게 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노화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예전과 같은 체력은 운동을 해도 나오지 않는다. 얼굴의 주름은 거슬린다. 자연스럽게 늙는 게 멋지다는 생각은 어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노화는 어색한 일이다. 거부하고 싶다. 떨어지는 체력과 잃어가는 생기 속에서 나는 계속 매력적인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 욕심 때문에 관리를 해야겠다.

여러 계획은 있지만 원대한 목적은 없다. 계획을 세우고 보니 내가 그저 타인에게 호감을 사고 매력을 느끼며 일을 잘하는 멋진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오로지 개인적인 목적만이 남아 있다. 이마저도 실현하기 힘든 세상이지만, 이러한 목적이 갖는 하찮음도 알지만, 나로 살다 나로 가는 것이기에 이쯤이면 되지 않나 싶다. 부모님은 내가 이러길 바라지 않았지만, 이런 부채의식을 가지면서도 결국 나의 뜻대로 살아갈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의 내 목적을 그러하고, 다음의 목적은 바뀔 수 있을 테니. 멀리 보지 말고, 푸른 뱀의 눈망울처럼 영롱한 눈빛으로 지금을 맞이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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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에 일간지의 학생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1년 간 활동하며 인터뷰 기사를 한 편 썼고 신문사의 학생신문에 칼럼 비슷한 글을 기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글을 쓰며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고3이 되기 전까지 매월 나라걱정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주제는 다양했으며 여러 사안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했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지만 대학을 앞두고 수시를 쓰는데 좋은 소재가 되었다. 정작 대학은 정시로 갔으니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요즘 이런저런 걱정이 든다. 탄핵안이 가결되던 토요일에 국회 앞에 갔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추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옹기종기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 '토요일밤에'를 때창하기도 하고 '소원을 말해봐'를 부르기도 했다. 각자의 읭원봉을 들고 왔다. 빈손으로 가서 잠시 머물다가 떠난 나였지만 내적신남을 느꼈다. 정파에 따라서 옹호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온 미디어가 나라를 걱정한다. 민주화 이후에 쌓아온 국제적인 신뢰도는 많이 무너졌으며 성장 동력을 잃어온 국가에 치명타를 입혔으니 걱정할만한 상황이다. 

걱정이 일이 되었다. 우울함이 밀려온다. 이제는 개인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가. 과학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 내가 지금 직장에서 이렇게 일을 하면서 살면 되는 것인가. 출산율은 떨어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나라에서 내가 지금의 안정성을 노후에도 누릴 수 있을까. 얼마나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 있을까. 그렇다고 이 곳을 벗어나는 것이 현명한가. 지금처럼 일하는 방식으로 나는 언제까지 쓸모있는 사람이 될까.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대비하여야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지금 회사를 선택하면서 포기한 다른 회사의 성과급 이야기를 듣고 작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회사의 성과급이 내 예상보다 적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 돈인가.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지만, 나이가 들수록 '돈' 그 자체에 영혼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밤마다 해외 주식을 들여다보며 얼마되지 않는 돈의 등락으로 망상에 빠진다. 아버지는 근로소득이 아닌 소득을 부끄러워하셨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경제관념이지만, 어쩌면 나의 정신상태를 맑게 하기 위한 좋은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을 모르는 유한한 삶이지만 노후를 대비하며 사는 걱정 많은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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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가 되어 퇴근한 어제를 뒤로하고, 부드러운 긴장감만 남은 금요일의 점심시간에 듣는 노래가 감미롭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하루는 없지만 만족하기란 어렵다. 천장에서 불어오는 적당한 온도의 바람. 불 꺼진 사무실의 나른함. 평소보다 빨리 퇴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미소 지었다. 무두절이 주는 행복인가.

요즘 나를 모르겠다.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인지. 퇴근하면 지쳐 집 청소하는 것을 잊었다. 늘어지기 바쁘고 어쩌면 정신을 세우고 사는 것을 거부하는 모양새다. 흘러가는 대로 나도 흘러가는 게 좋은가. 고민하기를 피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 때 살걸이라고 하는 그 때 살걸'이라는 주식 농담처럼. 무한궤도에서 뜀박질한다. 나는 무엇을 그리는가. 그리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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