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부산. 화창한 날의 부산. 새로 생긴 맛집. 한결같은 친구. 변함없는 나의 감정. 부산으로 회사를 옮길까 싶었지만, 결국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다. 급여도 업무도 바뀌지 않고 지역만 바꾼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많이 고민했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온다면 가치가 있겠지만, 대전과 부산은 둘 다 나의 고향이기에 무차별했다.
부산이 주는 아련함.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해는 뜨거웠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비를 맞으며 한 축구는 즐거웠다. 대전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나는 주말을 정리한다. 집에 가면 빨래를 해야지. 내일은 출근을 해야지. 아무 이유 없이 창밖 풍경을 보고 씩 웃어보자. 그리고 코로 숨을 천천히 내쉬어보자. 짧은 의식적 행동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아련함에 살짝 미소를 더하니 괜스레 소중한 추억이 된 듯하다.
아련
사치
즐거운 주말이 지나가고, 월요일이다. 날씨가 좋았다. 밖에서 축구하기에 적절한 서늘한 토요일이었고, 등산하기에 적합한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열심히 뛰다 보면 힘들지만 몇몇 잘하는 순간을 기억하고, 친구와 공을 주고받는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으로 고단한 평일에 찾아오는 여가를 채우겠지. 김밥을 싸서 낮은 산에 올라서 저 멀리 옛날에 다니던 학교를 바라보며 배를 채우면 평화롭다. 이런 주말이라서 평일이 더 힘들까. 일이 지독하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다. 가장 일이 많은 선배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져서 걱정이 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을 보면, 몇 년 뒤의 내 모습을 보게 된다던데, 나도 그런 미래를 맞닥뜨릴까. 우울하다.
내게 한달이라는 여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얼 할까. 여행을 가야지. 어디를 갈까. 또 유럽에 가고 싶다. 만하임에 가서 되너를 먹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어쩌면 평생에 다시 못할 수도 있겠지. 올해 승진을 해야 되는데, 왜 나는 점점 지쳐갈까. 승진 빨리 하려고 회사를 옮겼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돈을 조금 더 벌겠다고 정든 조직을 떠나는 것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형은 완고했다. 그 돈 보다 네가 받는 스트레스의 값이 더 클 것이라고. 혼자 훌쩍 떠나고 싶다. 2016년에 가고 2022년에 가고 2025년이 되었다. 2022년에 떠났을 때 유럽에서 가능한 오래 머물걸...
부산에 가고 싶다. 다시 돌아가면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처럼 싸우는 듯한 대화에 적응하기 힘들 거 같다. 지금은 사투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원래도 잘 못했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산에 머물면서 나는 행복했던 거 같다. 20대여서 그랬을까. 물론 힘든 시간도 있었다. 20대의 어려움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닌 거 같다. 지나와서 미화된 것일까. 온천천을 따라 걷던 밤이 떠오른다. 돈이 없던 시절. 가진 건 두 다리뿐이었던 그 시절. 말랐지만, 그만큼 지구력이 좋았던 걸까.
요즘의 안정감은 참 감사하다. 일이 바쁘고 내가 지치는 것과는 별개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잘 지내시고, 형제들은 건강히 지내고, 나도 큰 걱정 없이 산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몰아치는 일을 하다 보면 저녁이 되고 회사에서 밥을 먹고 일을 하다 퇴근하고, 냉장고에는 엄마가 준 김치가 기다리지만 나는 먹을 시간이 없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나 무료함이 걱정이라면, 그건 사치다. 돈으로 사치를 부릴 수 없으니, 이런 사소한 넋두리로 사치를 부려본다. 호사스럽다.
제목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은 밤에 퇴근한다. 묘한 생동감을 느낀다. 가려던 병원은 일 때문에 가지 못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온다. 작은 성취감을 누린다. 오래 지속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래서 소중한 것인가. 또다시 이직을 생각하고, 나의 앞날에 대한 고민이 깊어갈 때 에너지가 생기는 일이 반복된다.
내일은 서울 출장을 간다. 돌아오면 금요일 저녁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상사의 기분에 따라 나의 기분이 달라지는 게 회사 생활의 어려운 점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자세가 곧 배려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쓰고 싶은 키워드가 있었는데, 잊어버렸다. 다시 여행기를 쓰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친다. 주말에는 비가 온다. 조기축구는 하지 않으려나. 분명히 출근길에 운전하면서 떠올렸던 제목이 있는데,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쉽다. 그냥 웃어넘기자. 그게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