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친구와 아침을 같이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해변을 걷고 싶다고 했다.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좋다고 했다. 날씨도 해가 들어 걷기 좋았다. 사실 수영하기도 좋은 날씨였다. 나는 해변에 가서 모래 위를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친구가 신발 벗고 맨발로 걷자고 했다. 사람이 여행을 오면, 특히 외국에 나오면 태도가 부드러워지거나 흔쾌히 응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제주도에 갔을 때 바다에 발을 담그자던 친구의 권유는 그렇게 거절했는데 말이다.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다가 발에 물이 묻기도 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아이들은 파도와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자신들의 옷을 다 젖는다. 그러면서 세상에 근심 걱정 없는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그마저 기분 좋았다. 친구는 여행이 끝나면 시험공부를 해야 할 것을 걱정했다. 그래도 대학생은 좋은 신분이 아니겠는가. 나는 부러웠다. 멍을 때리며, 내 피부가 많은 자외선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느꼈다. 선글라스는 챙기길 잘했다. 나는 그만 걷고 싶었고 그 친구는 계속 해변을 따라 걷는다고 했다. 잠시 이별하기로 했다. 이런 이별은 쉽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La Paradeta는 해산물이 진열되어 있고 원하는 해산물과 양을 정하면 조리해서 주는 시스템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신세계였다. 그래서 유럽 여행을 통틀어서 가장 맛있는 집에 손꼽을만했다. 오늘은 작은 오징어 다리 튀김, 맛조개 구이, 홍합찜을 시켰다. 기억이 미화된 것인지, 식당이 변한 것인지, 누구랑 먹는지가 중요한 것인지 아쉬웠다. 나에게는 환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고 한국에 와서도 바르셀로나에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홍보대사처럼 이 식당을 추천하고 다녔다. 얼마 전에도 신혼여행으로 바르셀로나에 간다는 선배한테 추천했는데 취소해야 할까. 물론 여전히 맛있는 식당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호들갑 정도까지는 아니다. 랍스터를 안 시켜서 그런가. 제일 맛있었던 건 해산물을 기대하며 먹은 식전 빵과 라들러이다. 함께하는 이가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무엇보다도 결정적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많은 것이 부족했다. 좋은 기억을 확인하는 여행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왔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원래 이랬나 싶다. 26년에 완공된다고 한다. 6년 전에 왔을 때는 성당이 완공되면 다시 오기로 했는데 그전에 미리 왔다. 약속은 유의미할까.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면 두 주인공은 10년 뒤에 피렌체에 오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 얼마나 이상적인 스토리인지. 문득 궁금했다. 그 사이에 각자 다른 연인을 만났으면서 다시 만날 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무의미한 공상은 치우기로 하자. 제일 슬픈 건 성당 앞에 추로스 트럭이 없었다는 점이다.

호스텔로 돌아오면서 마트에서 내일 아침의 양식을 구매했다. 그리고 헤어졌던 몽골 친구를 다시 만나서 간단히 저녁거리를 사 와서 호스텔에서 먹었다. 그리고 마드리드로 먼저 떠나는 친구를 배웅했다. 혹시 못 만날지도 모르니 사진을 줬다. 본인이 다니는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공부하다가 어려움을 겪으면 '아이고'라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런데 마드리드로 떠나야 하는 그 친구가 그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나도 꼰대가 되었는지 잔소리를 하게 된다. 어릴 때 깊은 한숨을 많이 쉬던 내게 어머니는 늘 좋지 않은 습관이니 고치라고 하셨다. 이제는 하지 않는다. 종종 숨이 차서 하게 된다. 어머니는 그 마저도 운동이 부족하다고 잔소리하실 게다. 잔소리할 대상이 많아서 바쁘시니 착한 아들이 되어야 할 텐데.

오늘은 발에 바닷물을 허락한 특별한 날이다. 새로운 해변을 갔기에 가능했을까. 과거에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한 곳은 실망을 안겼다. 나만의 순간으로 바르셀로나를 기억하는 좋은 변화일까. 어둠이 내리고, 바르셀로나의 식사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의 대화가 백색소음으로 들어온다. 여러 소리를 겹쳐 직조한 장막이 과거 회상을 가로막는다. 낮에 발바닥의 피부로 느낀 따뜻한 모래의 부드러움이 미소 짓게 한다. 결국 필요한 건 변화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변화가 없었다. 새롭지 않으면, 과거보다 좋아질 수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