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전날 사둔 초코 크로와상과 커피로 해결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서 지하철을 타러 왔다. 그런데 예정된 시간이 되었는데 오지 않았다. 전광판의 스페인어를 한 단어씩 번역하며 이해하니 기술적인 문제로 운행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언제 해결되는지 알려주지 않으나 지하철이 기차역까지 가장 빠른 길이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지상으로 올라와서 애타게 택시를 찾았다. 결국 탔다. 그리고 기사님께 짧은 영어로 다급하게 기차역으로 부탁한다고 얘기했다. 잔돈은 됐어요. 빠르게 내리고 달렸다. 역무원의 안내를 받고 1분을 남기고 기차를 탔다. 너무 늦지 않게 결단을 내려서 다행이다.

마드리드로 왔다. 우리나라 KTX와 비슷한 렌페(renfe)를 타면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음 여행을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아주 느린 기차의 와이파이가 기여하기도 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머릿속을 차지한 첫 생각은 '춥다'이다. 아무리 내륙이더라도 바르셀로나보다 위도가 낮아서 추울 거라고 생각 못했다. 알고 보니 마드리드는 해발 600m에 자리한 평지에 있다. 애초에 산 위에 있는 것이다. 모르면 신비하지만 알고 나면 당연한 사실이 세상에는 많다. 그런 점에서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오로라는 얼마나 신성하고 불가사의한 일이었을까. 모든 자연 현상이 그 원리를 알기까지는 똑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비가 내리기를 바라며 기우제를 지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다.

우선 무거운 짐을 내려 놓기 위해 숙소로 갔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행 첫날밤 이후로 처음 혼자 자는 날이다. 물론 혼자 자는 게 필요하기보다 시험 볼 일이 있어서 혼자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물론 이 시험은 잠을 이기지 못해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얻는 것도 없고 피곤하기만 한 밤을 보낸다. 한국 시간에 맞추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기도 했다. 경험해보자는 데 의의를 뒀으므로 행동도 그 수준에서 옮기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숙소 근처에 한식당이 있어서 반가웠다. 한식당의 이름은 '사랑방'이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여행 중에 한식을 먹지 않는 것이 일종의 목표 중에 하나이다. 과거에 유럽 여행을 할 때는 너무 한식을 찾았고 많이 해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벗어나 보기로 했다. 지금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이국적 음식의 느끼함을 잡는 좋은 수단이 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묵은 호스텔에 핸드폰 충전기를 놓고 왔다. 결국 하나를 새로 샀다. 고속 충전기를 놓고 일반 충전기를 사는 꼴이라니. 그래도 바르셀로나 호스텔에 연락을 하니 보관하고 있었고 나중에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친절한 곳이다. 호스텔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이라도 찍어둘 것을 후회했다. 충전기를 사면서 마트에서 파인애플 주스를 샀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실패한 것을 만회하고 싶었다. 대성공이다. 다만 저 하몽 과자는 너무 짜다. 결국 다 못 먹었다. 맥주 안주로 먹더라도 너무 짜다. 밥에 비벼먹어야 할 수준이다.

숙소로 오는 길에 봐둔 레알 마드리드 공식 매장을 방문했다. 경기장에 있는 매장과 가격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경기를 보러 가기 전에 사서 입고 가기로 했다.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를 새기고 경건한 마음으로 옷을 받았다. 멤버십도 가입하여 5% 할인을 받았다. 유니폼을 사들고 가는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산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인가 싶었다.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지만 낭비 같았다. 사실 어떤 면에서 낭비가 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기쁨이라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리 주저했던가. 나에게 쓰는 것을 아깝게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나에 대한 소비에 너무 관대하다.

경기 전에 동행을 구해서 보러 가기 전에 저녁을 먹었다. 동행의 장점과 단점은 분명하다. 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이 맞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론 좋은 분들이었지만, 사람을 만나다 보면 결이라는 게 있는데 조금 나와 달랐다. 인성검사를 할 때 불편한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말에 '그렇다'로 체크했는데 거짓말을 한 거 같다. 여하튼 '이런 분들도 계시다.'를 넓혀가는 게 중요하다. 그분들은 좋은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고 축구에 대한 열정도 높아서 내가 배울 점이 많지만 나에 비해 에너지의 양이 많은 분들이셨다. 밤에는 내가 일이 있기도 해서 시간을 더 함께 하지는 않았다. 오래 함께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동행의 장점 중 하나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입성했다. 내가 애정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관람했다. 이리도 기쁠까.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아주 추웠다. 그래서 마스크를 끼게 되었고, 몸은 움츠러들었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부풀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본다는 것이 참 좋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 선수들이 뛰는 팀에 가서 응원하는 것도 즐거웠고, 유명한 경기장에 가서 축구를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내가 오랫동안 응원하던 팀의 경기를 직접 보며 소리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유럽을 오기로 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다. 나는 이곳에 와서 경기를 보기 위해 유럽행 비행기표를 끊었고,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포효하는 모드리치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집중했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도 만났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경기장 안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나 역시 그를 찍어줬다. 경기를 기다리는데 그가 내 옆에 앉았다. 그 우연의 일치가 아주 반가웠다. 더 놀라웠던 점은 내가 교환학생을 다녀온 학교 출신의 학생이었다. 나에게는 선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홍콩 친구와 경기를 함께 즐겼다.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렇게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어차피 새벽을 보내야 하는데, 야식을 먹자 싶었다. 저녁에 먹은 것이 비싸고 양은 부족했다. 그래서 케밥을 포장해서 먹었다. 맛이 좋았다. 되너에 대한 비교군이 없었는데 이 집 잘한다. 다만 감자는 식어서 아쉬웠다. 다만 이걸 먹으면 안 되었다. 차라리 짧은 시간이라도 자고 일어나서 시험을 쳤어야 할 텐데, 야식을 먹고 버티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잠깐 눈을 붙이다 보니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결국 경험만 해봤다. 사기업은 온라인에서 이런 식으로 적성검사를 치는구나.

마드리드에 입성한 첫 날, 도시의 매력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과 선수들을 직접 봐서 행복했다. 그리고 지네딘 지단도 경기장을 방문하여 멀리서 직접 봤다. '직접', '내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이 분명하게 어떤 차이를 주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말할 수 있다. 즐거웠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Hala Madrid'를 외쳤다. 다음에는 응원가를 외워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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