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스텔의 침대는 정말 환상적이다. 내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이층 침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침에 씻고 오니 허리가 아팠다. 편하게 잘 수 없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숙소였다. 아쉽다. 그래도 하루를 늦게 시작하는 여유가 좋았다. 어제는 피곤에 지쳐서 본 풍경이 오늘 보니 아름답게 보였다. 유럽이 다 그렇지 뭐 라는 식상함이 가득한 어제의 평은, 오늘이 되니 아름다운 도시로 바뀌었다. 사람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어제 같이 바에 갔던 독일 친구가 스페인 광장이 본인이 가장 만족한 장소라고 추천했다. 그래서 스페인 광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운 광장이다. 광장이 넓어서 좋다고 평가하고 끝내기에는 건물의 정밀함이 놀라웠다. 미세한 부분에도 장식을 놓치지 않았다. 광장을 둘러볼수록 이런 곳까지 신경을 쓰다니.라는 감상이 든다. 광장을 둘러싼 물가에서 배를 타며 즐기는 사람도 있다. 평화롭다. 말을 타며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도 많다.

광장 중앙에는 플라멩코 공연을 한다. 어제 라이브 바에서 본 공연보다 제대로 된 공연이었다. 이제는 어디 가서 플라멩코를 봤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제대로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리가 판소리와 유사했다. 노래와 춤이 주는 감상은 서글픔이다. 플라멩코의 유래와 의미는 모른다. 그저 그들의 소리에서 ‘한’이 느껴졌다. 쉼 없이 발을 구르는 무용수의 고됨을 넘어선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세비야에는 마차가 도로를 달린다. 그리고 관광지를 마차 위에서 즐길 수 있다. 다만 이 마차가 도시의 경관에, 도시의 관광 산업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말이 풍기는 냄새가 불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저녁에 만난 사람 중에서 이를 택시처럼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줬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일리가 있다. 어차피 도로를 함께 쓰는 거 그런 서비스도 있으면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할지도 모르겠다.

세비야에서 어느 관광지를 가려고 해도 세비야 대성당은 지나야 한다. 그러다 보니 특별함이 무뎌진다. 무엇보다도 외관은 멋지지만 내부는 유별나지 않다. 특히 이미 유럽에서 여러 성당을 봤다면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집 앞 공원을 지나듯 스치고 메트로폴 파라솔을 갔다. 물론 이곳에서도 입장하지는 않았다. 그저 특이한 건축물을 구경했다. 때로는 목적을 알 수 없는 이런 건축물이 사람을 끌고, 관광상품이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면서 구경하는 재미를 준다. 미묘한 건축의 세계이다.

많이 걸었더니 쉬고 싶었다. 호스텔에 돌아오는 길에 토르티야 샌드위치를 샀다. 빵을 잘라서 데우고, 만들어둔 토르티야를 데운다. 그리고 빵 사이에 토르티야를 넣는다. 아무런 양념도 없고 그게 전부다. 그래도 제법 먹을만하다. 오늘도 이렇게 탄수화물 덩어리를 섭취했다. 그리고 호스텔에서 낮잠을 잤다. 이제는 체력이 안 되나 보다. 눈을 떠서 티켓팅을 위해 노력했지만 내 카드가 먹통이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결국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성공해줬다. 결국 내 일정은 이제 거의 다 완성이 되었다.

호스텔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 지금까지의 여행 중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 아주 맛이 좋은 식당을 예약해두셨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즐겼다. 동행을 구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식사였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동행을 구하긴 해야겠다. 버섯 리소토, 연어 구이, 돼지고기 타다끼 모두 짜지 않고 맛이 훌륭했다. 감사한 일이다. 원래 있던 동행에 내가 끼게 되었지만 받아주셨으니.

그리고 먹부림을 이어갔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160년 된 유서 깊은 가게에서 파는 추로스와 빠로스를 먹고 맥주까지 마셨다. 추로스는 달아야 한다. 다시 생각해도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 추로스 트럭이 없었던 것은 서운하다. 여하튼 이번에도 좋은 인연을 만났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살면서 만날 일이 없었을 사람들을 만난다. 혼자 여행을 하면 외로움에 울적해지는 순간들이 온다. 그래서 무작위적인 만남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신비하고 감사하다. 아무래도 표준 정규분포를 그리는 거 같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여행이 끝나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일정한 신뢰 수준 하에서 감사한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스페인 광장, 아주 맛있는 음식. 세비야도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