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조식은 알차게 챙겨 먹고 아르헨티나 친구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에서 헤맸다. 안내판이 친절하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쉽게 알 수 없었다. 처음에 줄 선 곳에서 검사하더니 밑에 층으로 내려가라 했다. 밑에 가니 올라가라 했다. 그러다가 결국 직원이 나를 직접 안내해줬다. 시스템은 친절하지 않지만 사람은 친절하다. 그렇게 기차에 앉아서 나는 세비야로 출발했다. 기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잠을 자니 도착을 했다.


세비야역이 생각보다 크다. 조금은 시골 느낌이 날 거라는 착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와서 숙소에 짐을 놓고 길을 나섰다. 사실 세비야라는 도시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것은 알지만, 왜 유명한지는 모른다. 여행만큼은 사전에 계획은 세우지 않더라도, 그 지역에 대한 지식은 알고 오는 게 좋다. 그래서 나는 걸었다. 유명한 곳이 어느 쪽인지는 알지만 반대로 걸었다. 내게는 내일도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색깔이 예뻤다. 그러나 이건 유럽 어디를 가나 느낄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보다 보니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 평일 낮에 여유롭게 길을 걷는 건 한국에서도 기분이 좋을 것이다. 조금은 여행이 지쳤나 보다.


걷다가 식당을 들어갔다. 지나가다가 보니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안에 자리가 쾌적하게 있었다. 앉았는데 직원분이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셨다. 언어 장벽을 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무언가 하나를 시켰다. 나는 감자가 먹고 싶다는 것만 얘기했고, 그 직원이 추천을 해줘서 좋다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메뉴 이름은 revuelto였다. 번역하면 스크램블인데, 신기한 점은 감자튀김이 들어간다. 갓 튀긴 감자튀김을 식용유와 달걀, 양념된 저민 고기와 볶는 요리이다. 맛이 나쁘지 않다. 맛있게 먹었다. 다만 귀한 감자튀김이 이렇게 변형되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이 요리가 1만 4천 원이나 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어려웠다.


배고픔을 채웠으니 한참을 걸었다. 여러 명소들은 있었지만 굳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숙소에 거의 다 왔는데 젤라토 가게가 보였다. 깔끔하고 사람도 조금 있었다. 그래서 들어갔다. 맛 두 가지에 3.2유로. 15분 만에 다 먹었다. 돈 쓰기 쉽지만 만족스러웠다. 망고도 맛이 좋았지만, 치즈케이크가 더 맛있었다. 베스킨라벤스 뉴욕 치즈케이크처럼 씹히는 것은 없지만 아이스크림 자체가 치즈향이 나면서 우유 향도 나면서 달았다.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노부부가 와서 네 가지 맛을 주문하길래 나눠 드시기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각자 네 가지 맛을 주문해서 각자의 컵을 들고 드시는 것을 봤다. 내가 배포가 너무 작았구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힘이 났다. 조금 더 걷는 김에 마트에 갔다. 그리고 그렇게 찾던 하몽 맛 프링글스를 샀다. 제로콜라와 하몽 맛 프링글스라니 완벽한 저녁이었다. 맛은 여전히 좋았다. 이걸 한국에 사가고 싶은데 내 배낭에는 자리가 없다. 6년에 한 번 먹는 꼴이라니.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다. 글을 쓰고 하루를 정리하고 딱히 계획은 없었다. 세비야의 야경이나 구경을 해볼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방으로 돌아갔다.


독일에서 온 룸메이트를 만났다. 저녁에 바를 갈 건데 거기서 작게 플라멩코 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같이 가겠냐는 제안을 받고 1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결국 '와이 낫'을 떠올렸다. 같이 가기로 했다. 가서 샹그리아를 마시며 쉬다가 공연을 봤다. 기대한 공연은 아니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탭댄스 공연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나름대로도 의미 있었다. 새로운 경험 아니겠는가. 그 공간이 아주 더웠다. 손님으로 하여금 더 많은 술을 마시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을 다 보고 조금 앉아 있다가 피곤했고, 네덜란드 친구와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씻고 누웠다.


돌아오는 길에 본 세비야 대성당의 야경은 멋있었다. 내일 낮에 다시 가봐야겠다. 침대가 낡아서 너무 삐꺽 거린다. 몸을 조금만 뒤척여도 침대 자체가 흔들린다. 나는 아무래도 많이 뒤척이는 편인데 아래층 거주자에게 민폐가 될 거 같다. 세비야의 특별함은 모르겠다. 그저 나는 쉬고 있다. 조금은 머나먼 나라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돈을 많이 쓰면서. 부산에서 날씨 좋을 때, 남들 일하는 평일에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 하지만 작은 특별한 공연이 다른 하루를 만들어줬다. 남은 여정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주저하지 않기를. 다만 조금씩 지쳐가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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